육아와 사색_32 어차피 엄마의 일은 짝사랑이다
일주일에 세 번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나간 지 5개월이 넘었다. 처음 아이를 맡길 때 연로하신 시부모님께서 이런 어린 아기를 잘 돌봐주실 수 있을까, 아이는 아이대로 분리불안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별 일 아니지만, 고백하자면 어제 살짝 잠을 설쳤다.
보석이는 그동안 엄마 외 다른 사람을 특별히 따른 적이 없었다. 아빠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졸리거나 배고파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아빠가 안아주면 납치라도 당하는 아이처럼 나를 향해 손을 뻗치며 죽어라고 울었다. 아빠가 재미나게 놀아주고 있어도 내가 저를 쳐다보고 있는지 힐끔거리고, 내가 호응을 하면 더 잘 뛰고 더 크게 웃으니 남편은 '엄마가 좋은 게 당연하지.'라고 말하면서도 섭섭해했다. 아이와 아빠와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하지만, 아이가 간절하게 나를 찾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고 은근히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아이가, 요즘 퇴근을 하고 시댁에 들어가도 나를 멀뚱 쳐다볼 뿐 반응이 없다. '누구시더라..?'하고 한참 고민하는 표정으로 할아버지 품에 그대로 안겨있다. 오히려 보석이 때문에 찬밥 신세였던 강아지가 반가워 짖고 난리다. 머쓱해진 내가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면 그때서야 애앵~ 하면서 화장실로 엉금엉금 기어 오긴 한다. 시부모님은 엄마가 돌아왔을 때 보석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항상 관심이 많은데 엄마가 와도 본체만 체 하는 걸 재미있어하시는 눈치다.
할아버지를 마다하고 할머니에게만 안아달라고 한 지는 한참 되었다. 평소 시아버지는 안아 재우기, 응가 치우기 등 힘쓰는 일을 전담하고 시어머니는 먹이고 놀아주는 걸 포함해서 아이를 전반적으로 돌봐주시는데 아이가 할머니에게만 가려하니 시아버지는 짝사랑하는 이의 표정으로 "치사하다!"라고 외치시곤 했다. 농담 식으로 "할머니가 몰래 엄청 맛있는 걸 주시니?"하고 보석이에게 물으면 시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몰래 주는 거 없다고, 고구마를 항시 줘서 그런가 보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엄마인 내가 있어도 할머니를 계속 찾는다. 어제 퇴근하고 갔더니 낮잠에서 막 깨어났는지 계속 칭얼댔는데, 나에게 안겨서도 할머니를 향해 안아달라 손을 뻗고 울었다. 시어머니가 안아주자 아이는 잠잠해졌다.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나도 그렇지만 시부모님도 뭐가 이러냐고 신기해했다. 집에서 남편이 느꼈던 섭섭함이 이런 거였을까. 아니 그래도 나는 엄만데, 내 섭섭함이 좀 더 크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나를 찾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이는 당연히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엄마인 내가 제공해주지 못한 걸 할머니가 제공해준 게 무엇일까. 시어머니는 목소리가 매우 하이톤이고 말씀이 많으시다. 과묵한 남자 셋과 살고 있는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대화를 주도하는 스타일인데, 나로서는 좀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이에게는 언어 자극이 되는 게 사실이다. 퇴근한 남편과 이야기해보니 시어머니가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시는데, 과장된 목소리로 몸을 콕콕 찌르면서 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깔깔 대고 웃으며 재미있어한다고 한다.
반면 내가 책을 읽어줄 때는 그렇게까지 재미있어하는 것 같지 않다. 내 나름대로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책 읽어주고 스킨십 하며 상호작용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아이의 눈높이에서 재미있게 놀아주는 편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육아서에도 아이들은 흘러가는 듯한 소리보다는 억양이 센 소리, 재미있는 리듬이 담긴 소리에 잘 반응한다고 쓰여 있다. 지금부터라도 목소리 톤을 높이고 익살스러운 소리를 내는 걸 연습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다 옆의 내 자리에 가만히 누웠다. 일주일 중 반절이 되는 긴 시간인데 다른 보육기관이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에서 이렇게 넘치는 사랑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아이가 거기에 완전히 적응해서 엄마에게 매달리지 않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강아지까지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니 사회성도 보완할 수 있다. 나는 덕분에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확인하고 나서 괜히 심난해졌다. 물론 아이가 크면 엄마는 당연한 존재가 되고 예쁜 유치원 선생님을 동경하는 날도 올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 겨우 돌인데 벌써 '엄마'의 입지가 절대적인 게 아니라니.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슬픔, 배신감, 하지만 그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이 복잡하게 몰려왔다. 조금 더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면 고부간에 흐르는 미묘한 물밑 경쟁에서 패배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잠에 들었는데 어떤 귀중한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자리에서 물을 엎지르는 등 연달아 실수를 저지르는 꿈을 꾸었다. 내가 엄마로서 잘 기능하고 있는지 불안한 마음에 꾼 꿈일 것이다.
정신없는 꿈을 꾸느라 알람보다 30분 늦게 일어나 허둥지둥 씻고 아이 짐을 꾸렸다. 아이를 시댁에 데려다 놓고 출근해야 하는데, 지각할 것 같다. 급한 마음으로 부엌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으니 아이가 일어나 혼자 놀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아이가 있는 방 문을 열었다. 자고 난 아이의 피부는 평소보다 더욱 뽀얗게 빛난다. 인형처럼 앉아 담요를 물고 놀던 아이가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다. 그 보송보송한 분홍빛 볼에 입을 맞추고 작은 몸을 격하게 끌어안았지만 아이는 내 귀걸이를 만지는데만 열중한다.
그래, 어차피 엄마의 일은 짝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