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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Feb 22. 2020

젖떼기에 관하여

육아와 사색_33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를 읽다가

 육아, 특히 신생아 돌보기에 대한 지침이 참 많은 시대다.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검색 등으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침들이 절대적으로 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이 제법 통일된 의견을 보이는 문제조차, 몇십 년 전만 해도 같은 직종의 전문가들이 정반대의 방법을 권유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의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가루 같은 알레르기 유발 음식을 돌 전에 피하라고 했으나, 지금은 돌 전에 미리 노출시키는 게 알레르기 유발을 줄인다고 조금씩 먹이라 한다. 당대에는 절대적으로 보이는 지침이 새로운 연구 결과나 통계가 나오면 이렇게 바뀌곤 하는 것이다. 경험적 육아 정보도 문화마다 상이하며, 시간에 따라 유행처럼 변하기도 한다. '캥거루 케어'나 '패밀리 침대 사용' 같은 유행을 봐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는 수유에 대한 지침이다. 우리 부모님 시절에는 '분유가 모유보다 영양 상 뛰어나다'는 게 상식이었다.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는 영양을 최적으로 맞춘 값비싼 분유를 먹이는 게 더 아이를 위한 것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반면 지금은 예비 엄마들을 대상으로 '모유 수유는 아기에게 완전한 영양 공급이다. 가능한 길게 - 2세가 넘도록 - 지속하도록 권장된다.'라고 어찌 보면 다소 강박적으로 느껴질 만큼 교육이 이루어진다. 


 나 역시 그런 최신 지침에 맞는 교육을 받고 모유 수유를 적어도 아이 돌이 될 때까지 계속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실전에 부딪쳐보니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일단 6개월이 지나면서 먹는 양이 급증하고 마시는 것 외에 씹어 삼키는 고형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전체 식이에서 모유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방금 먹은 소고기나 닭고기 이유식을 먹은 입으로 내 가슴이라는 식탁을 찾는 게 조금 웃기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가 나면 젖꼭지를 물릴 위험도 신경 쓰였다. 게다가 키가 훌쩍 커지고 자기 몸을 움직일 줄 알게 된 아이는 수유 중 수시로 내 품에서 탈출했다. 어쩌면 아이는 모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상태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모유를 오래 주겠다고만 생각하는 건 완고한 고집일 수 있다. 아이가 8-9개월이 되던 무렵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마침 근무를 시작하여 단유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무리 없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슈타이너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대략 생후 약 9개월부터 12개월 사이에) 위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을 시기가 되면, 아이는 스스로 자유로워져서 자기의 개성을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한테는 이 시기가 젖을 먹던 세계로부터 자유를 얻기에 알맞은 시기라고 비슷하게 느낄 것이라는 뜻입니다. 틀림없이 이 시기에 아기는 음식을 먹으려 할 것입니다. 심지어 식탁 위에 있는 음식에 손을 뻗기조차 할 것입니다. 생후 7년 간 아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유전적인 힘을 극복하고 재편성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는 일입니다. 유전적인 힘들은 젖이나 분유를 먹는 시기에는 특별히 강한 힘들이기 때문에, 걸음마하는 아기가 너무 오랫동안 젖을 먹으면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젖떼기에 관하여 p.252 


 단유 시기가 언제가 좋으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는 자신의 개성을 따른 시간표를 가지고 있고, 전문가들의 지침보다 아기의 시간표는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표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이를 직감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엄마의 판단뿐이다. 물론 엄마의 평가와 판단이 말처럼 쉽고 명료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엄마의 내면은 누구보다도 다급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치열한 고민을 포함한, 아기의 발달에 반응하고자 애쓰는 엄마의 노력밖에 왕도는 없다. 


 젖떼기를 순탄히 넘겼지만 앞으로도 젖병 떼기, 대소변 가리기 등 다음 과제가 계속 이어진다. 넘치는 정보에 일단 뛰어들어, 시대가 지나도 불변할 것으로 보이는 양질의 정보를 선별하고, 그 방법이 아이의 개성에 맞는지 조금씩 시도하고 물러서기를 수차례 반복해서 그 과제를 마칠 때쯤에야 비로소 내 아이에게 맞는 방식을 찾았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가 매일 쏟아붓는 에너지에 비하면 겉으로 보이는 육아라는 노동은 얼마나 작은 빙산의 일각인지! 엄마의 시간표는 오늘도 정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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