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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Nov 15. 2024

무임승차

나는 여자 택시기사다.

2022년 10월 10일 오후 8시였다. 택시 콜이 울렸다.

강원도에서 경기도 가는 장거리 콜을 잡았다.

장거리를 잡으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누가 빼앗아 갈까 봐 혹은 취소될까 봐.


우선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 간혹 장난이거나 목적지를 잘못 입력하는 손님도 계시기 때문이다.


(기사): “여보세요. 택시기사입니다. 혹시 경기도 가시는 거 맞나요?”


(손님): “네 맞습니다.”


(기사): “조금만 기다리세요. 2분이면 갑니다”


손님은 기다렸고 남성 한 분이 앞자리에 탑승하셨다.


(기사): “안녕하세요”


(손님): “기사님. 돈은 얼마든지 더 드릴 테니 안전하게만 가주세요.”


멘트에서 어설픔이 느껴진다. 뭔가 찝찝한 이 기분은 뭘까. 미성년자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돈을 미리 받고 가야 하나. 몇 초 간의 고민이 시작된다.


사실 장거리 콜은 늘 기사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도착한 후 돈을 못 받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손님에게 목적지를 왜 가는지 슬쩍 떠보기도 하고, 행색을 살펴보기도 한다. 때론 이런 행동이 잘못된 걸 알지만 불안이 있기 마련이다.

선불을 요구하면 기분이 나쁠까 싶어 말하기도 사실 불편하다.


자자 다른 걸 찾자.


우선 최신 핸드폰과 깔끔한 옷차림이 보인다.

택시비를 못 받으면 핸드폰을 담보로 생각하고 출발한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가지고 운행을 시작한다.

슬슬 말을 걸어 손님을 떠보기 시작한다.

작전시행. 블랙박스가 잘 작동되는지 슬쩍 눌러본다.

잘된다.

나이는 20대 초반이라고 한다,

한 동네 살던 형이 성공해서 돈이 많아 술을 사주기로 했다고, 그것 때문에 이동한다고 하신다.


(기사): “아 그러시군요. 좋은 형이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손님은 잠들었다.

우선 사설이 없어 믿고 가본다. 사설이 많다는 건 보통 불안을 숨기기 위함이 크다.


한 시간 넘게 달렸을 무렵, 잠에서 깬 고객은 갑자기 돈 많은 형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묵직한 목소리로 “예, 형님. 삼십 분 후면 도착합니다.”라고 말한다.

엇, 연기다. 이 손님은 배우 하긴 글렀다.


역시 3년 차 택시기사의 촉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후 9시 20분, 도착하기 30분 전 고속도로였다.


(손님): “기사님. 천천히 가주세요. 하루 이체 한도를 다 써서 돈 많은 형이 돈을 내주기로 했는데 10월 11일 오전 12시가 돼야 돈을 드릴 수 있어요."


속으로 생각한다.

“아, 시작됐군. 핑곗거리가.”

“성공해서 돈이 많은 형이 술도 사주고 택시비도 지원해서 가는 건데, 성공한 형아의 하루 이체 한도가 70만 원이고, 오늘 다 써서 이체가 안된다고?”


“WHAT?!!!”


“그래. 사람의 성공은 돈이 다가 아니니깐. 그 형아가 검소하신 분일 거야. 침착하자.”


일단 고속도로라 경찰을 부르기도, 내리라고 하기도 위험하다. 우선 믿어본다.

그래도 할 말은 하자.


(기사): “고객님. 근데 다 와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형님에게 빠른 입금처리 부탁드린다고 이야기를 해보세요.”


전화를 건다.


(손님): “형님. 이체 부탁드립니다. …네, 네, 네.”


(기사): “해주신다고 하시나요?”


(손님): “네. 해주신대요.”


(기사): “도착하셔서 카드결제 하셔도 됩니다.”


드디어 2시간 20분의 여정이 끝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310,600원의 요금이 나왔다.


손님이 형님에게 전화를 건 뒤, 잠시 기다리자 어둠 사이로 성공한 형님의 실루엣이 보인다.

몸에 문신이 있는 성공한 형님이 오셨다.


(성공한 동네 형님): “왜 안 내려”


(기사): “계산이 안 돼서 못 내리십니다.”


우리 성공한 형님께선 손님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한다.

(성공한 동네 형님): “하루 이체 한도를 다 써서 12시 지나면 입금해 드릴게요.”


(기사): “그건 곤란합니다. 지금 해주십시오.”


자, 이제부터 기싸움이다.


난 159cm 정도의 키에 마른 몸을 가진 작은 체구의 여성이다. 하지만 하나 살아있는 게 있다.

바로 강한 눈빛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눈빛이 보통이 아니라며, 강단 있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우리 형님은 단호한 나에게 아이컨택을 시작하신다. 암묵적으로 눈 피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내가 이겼다. 갑자기 형님이 슬쩍 사라진다.


우선 근처 cctv가 있는 곳을 스캔한다. 사각지대는 피하고 도로명이 적힌 곳을 찾자.

불빛이 켜진 곳, 혹은 근처 가게가 영업 중인 곳.


찾았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정차한다.

이제는 답이 없다. 미리 검색해 놓았던 근처 지구대에 전화를 건다. 도로명을 이야기하고 무임승차로 신고를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이번엔 예정에 없던 새로운 등장인물이 출연한다.

긴 옷을 입었는데도 손목 사이로 문신이 보인다, 입에 담배를 물고 침을 뱉으며 걸어온다.

딱 봐도 더 강한 척하는 놈이다. 일부러 조수석 창문 사이로 손을 뻗는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내 문신도 자랑하고 싶어 진다.

옷을 벗어야 하나? 순간 유치한 생각이 든다.

자, 이번에도 기싸움이 시작된다. 이번 친구는 전 친구보다 눈빛이 강하다.

아이컨택이 아닌, 그냥 가라는 듯 노골적이게 눈을 부라린다.

나는 절대 피하지 않는다. 그들의 멘트는 한결같다.


(문신 2): “왜 안 내려?”


(기사): “돈 안 주시면 못 가십니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역시나 토씨 하나 안 틀리다. 그놈의 하루 이체한도! “


(문신 2): ”경찰에 신고하게 하면 어떡해. “


난 이 두 친구에게 눈싸움을 이긴 듯하다. 친구들은 고집 세 보이는 나에게 상대가 안 되겠는지 결국 택시에서 못 내리는 친구를 버리고 도망간다. 손님은 더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도주일 경우 심각한 상황이 된다고 미리 안내를 드린다.


(기사): ”자, 그럼 핸드폰을 여기 위에 두고 다녀오세요. “


손님은 싫다고 하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아직도 경찰은 도착하지 않은 상태다.


(기사) ”저는 택시비를 받아야 귀로 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


갑자기 성난 눈빛으로 변한다. 아마도 최신 아이폰 14이기 때문일 거다.

손님은 내 핸드폰을 왜 두고 가냐고 한다. 이런,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타인의 재산은 쉽게 생각하면서 아이폰 신형은 귀한가 보다.

그러더니 결국 "좆같은 말을 한다"며 차 문을 세게 닫고 도주한다. 그리고 2분 후, 저 멀리서 경찰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사): ”도주했습니다. “


인상착의를 이야기하고 경찰이 손님을 잡으러 간다.

추격전인가? 참았던 담배를 꺼내 분노를 삼킨다.

이런 상황에서는 존칭이 힘들다. 욕도 참았다. 왜? 손님이니깐. 난 끝까지 이성을 놓지 않았다.


경찰을 믿고 차분히 기다린다.

잡았다. 끌려온다. 표정은 이미 뭐 됐다는 표정이다. 그래 맞아. 이제 뭐 됐어.


경찰에게 앞뒤 상황을 설명한 후, ”오늘 현장결제 안 되면 이건 끝나는 사건인 거 아시죠? “라고 말한다. 돈을 받지 못하면 접수를 하겠다고 했다. 결국, 돈은 나올 리 없고, 길거리에서 진술서를 적는다.


알고 보니 나이도 가짜. 돈을 주신다는 형님은 가상 인물. 함께 연기를 펼쳤던 인물들은 미성년자 동네 친구들.


  무임승차는 경찰접수를 안 하면 아무 의미도 없고, 접수를 하더라도 돈을 받기도 어렵고, 법적 처리는 솜방망이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택시에 무임승차한 사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에 처해집니다(「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9호」)라고 나온다.


앗, 내 요금 피해 금액은 310,600원… 벌금이…?


무조건 사기죄가 성립되어야 한다. 신상정보 확보 후 10월 13일 자정까지 입금하겠다던 그 돈은 현재까지도 깜깜무소식이다.

기대도 안 했다. 애초에 하루 이체 한도는 그냥 다 거짓이었던 것이다.


사실 난 과거에 장거리운행 후 40만 원을 못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난 피해자임에도 내가 바보 같고 한심했다. 그때의 무임승차는 선처를 해주었다. 아니, 사실 민사로 가라는 형사의 말에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두 번 태웠다는 이유였다. 한번 이용했던 손님이라 사기죄 성립이 어렵다고 했다.


담당자 운이 없었던 건지…


결국 난 포기를 했고, 두 달 이상 트라우마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이런 일을 겪으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두 달 후, 안타깝게도 같은 회사 기사님께서 똑같은 손님에게 무임승차를 당했다.


그때 내가 강하게 나갔더라면, 시간에 쫓기기 싫어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 기사분은 이런 일을 안 겪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11월 4일, 나는 지금 이 글을 적는다.

강원도로 사건인계가 지금 됐기 때문이다.


내일 또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간다. 난 오늘 진술서를 미리 적는다.


돈 안 받아도 좋으니 제발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사기죄 성립과 제 택시비보다 많은 벌금이 나오게 해 주세요!


과연 이번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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