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억에 남을... 카모강 안녕
(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호]
교토!
이틀 후면 교토에 온지 꼭 한달째 되는 날이다.
매번 이곳저곳 여러 도시를 다니며 한달살기를 하고나서 떠나려면
늘 아쉬움과 함께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 교토를 떠나려니 그런 생각에 더해 이런저런 상념들이 교차한다.
그 이유는 벚꽃이 피기 직전에 도착해서 카모 강과 다카세 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평생 보아도 다 못볼듯한 벚꽃을 이번에 보았음에도
막상 떠나려니 서운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한편,
올해(23년)초부터 올 봄의 한달살기는 벚꽃이 휘몰아 피는
천년고도 교토에서 보내기로 작정하고 준비중이었는데,
느닷없이 정부가 3월초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이라는 걸 발표해서
당사자들뿐 아니라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시기에
하필 일본으로 떠나와 한달살기를 시작해 그간 마음이 어수선했던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토는 참으로 교토스러웠다.
경주가 경주스럽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니조 성이 있는 니조 거리의 한 호텔을 숙소로 잡아
비가 많이 왔던 날,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같이
교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유명 관광지는 물론, 오밀조밀한 뒷골목을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했다.
오래된 계획도시 특성상 반듯하게 구획 지어져,
터가 좁은 대지에 집들을 지은 때문에
정원이 없음에도 집 앞 아주 작은 땅에도 꽃이나 나무를 심거나
자그마한 연못을 만들어 예쁘게 가꾼 모습도 보기 좋았다.
교토를 떠난 뒤에는
금각사, 은각사, 청수사 등 유명한 사찰들보다
카모(鴨川) 강이 오래도록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강 넓이가 크지도 작지도,
수량이 많지도 적지도,
깊이가 깊지도, 얕지도,
강변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강이
교토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천천히 흘러내려가고,
약속이나 한 듯,
많은 사람들이 카모 강변에 앉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이나
빨갛게 물드는 저녁놀을 바라보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스러웠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조용한 위로와 일상의 쉼표,
교토가 교토이게 해준 카모강이었다.
그런가 하면,
저멀리 비와(Biwa,琵琶) 호수로부터 물을 끌어와
시내 곳곳에 운하를 만들어 물을 흘려보내고 있어서
교토 거리를 걸으며 바쁜 도시의 리듬과는 다르게 운하가 주는
운치와 느린 서정에 어느새 젖어들곤 했다.
언젠가 다시 교토로 와서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두번쯤 바뀌는 걸 보고 싶다는 꿈같은 상상도 해본다.
벚꽃이 피기 직전에 교토에 도착해,
활짝 핀 벚꽃을 원없이 본 다음,
운하에 떨어져 물길에 흐르는 꽃잎을 보았는데,
이제는 다카세 강 옆의 수양버드 나무에 비치는
코모레비*의 흔적들을 보고 떠난다.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가리키는 일본어.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히]
교토 한달살기를 한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주저없이 이런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평화로움, 편안함, 안정감, 깨끗함,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미, 절제미, 조용한 친절, 과거로의 추억... 등등등
그런 교토가 얼마전 난카이 대지진과 관련하여 위험지역에 포함된다고 하니
걱정이 많이 되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더군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적, 정치적으로 수많은 긴장과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별개로,
교토에서 만난 다정했던 사람들과 벚꽃 눈부셨던 아름다운 장소들은
따뜻한 기억과 참 좋았던 감정으로 계속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