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제일 즐겁던 어린이, 끝내는데만 급급한 어른이
"쏼라 쏼라, 어쩌구 저쩌구 미루니, 어쩌구 저쩌구, 미루니, 미루니~ 미루니~"
사실 처음에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 노래를 깔깔대며 불러댄지는 꽤 되었었다. 멜로디와 가사의 흐름이 흘려듣기에도 뭔가 B급 동요의 맛이라 껄끄럽지 않았지만 워낙 즐거워하며 불러대는 통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더랬다.
아마도 출처는 큰 애의 친구였을 것이다. 그 친구는 3살 많은 5학년 형이 있었고, 그 형이 아마 그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을까? 물론 그 형아도 바깥 어딘가에서 들어왔겠지. 영상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널리 퍼지는 유튜브 구전동요, 아니 동요는 아닌가. 그래, 유튜브 구전 SONG 이라고 하자. 어쨌든 이 노래를 우리 집 7살 딸래미도 신나서 부르고 있으니 이는 이제 아이들의 노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얼마전에 찾아보니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이 가수가 이 노래를 안무와 함께 하는 영상도 있었다. 많이 유명해지셨구나.)
그런데 어느날 가사가 내 귀에 딱 꽂혔다. 아니, 이런 가사였다고?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룬이,
완벽하지 못할까봐 지금이, 내일의 나에게 일단 미루지. 그러다가 돼버렸지 미룬이.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룬이,
시작이 제일 즐겁던 어린이는 끝내는 데만 급급한 어른이 되지도 못했지 나는 미룬이.
-미룬이, 이제규-
미루는 이유가 시작이 무서워서라고? 완벽하지 못할까봐 미루는 거라고? 그것이 반복되다가 된 '미룬이'
시작이 제일 즐겁던 어린이가 어른이 되었음에도 겨우 끝내는데만 급급한 어른이거나 아님 그 조차도 미루고 있는 '미룬이'가 되었다고?
와, 이거 너무 인생을 담고 있는 가사 아닌가요. 그 때부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굳이 찾아볼 생각까지는 하지 않고(이것도 미뤘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부를 때 조금 더 관심을 가졌다. 다음 가사도 심히 공감이 갔다.
널부러진 양말밭 건너 옷 걸린 숲을 지나서
설거지 동산의 향기를 모르는 척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어 미룬걸 보는 건 일단 미룰래
내일의 난 더 어른이니 (지금의) 나보다는 용기 있겠지
약해빠진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기 위해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 '나중에 볼 영상'에 저장해놔
더 이상은 못 미뤄, 지금이 그 때야
이것만 보고 힘내서 시작할거야, 라는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일단 치킨을 먹는 나는
-미룬이, 이제규-
양말밭과 옷 걸린 숲, 설거지 동산의 향기라니. 누가 우리집 미룬이로 살다 가셨나요. 우리집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미룬이를 보고 쓰셨나요. 우리집 충전기에 꽂혀있는 휴대폰의 알고리즘이 이제규님 휴대폰과 연동되어 있는 거 아니죠?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내일의 나를 믿어보는 약해빠진 정신승리는 미룬이 어른이의 핵심역량인가요.
이 노래를 깔깔대며 부르는 우리 아이들은 이 가사의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살짝 궁금해졌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미룬이'라는 단어에 찔린 약해빠진 나란 '어른'이 미루다 미루다 '미룬이'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았을 뿐이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즐겁던 어린이. 맞아, 그랬었지. 나도 그랬었고 지금의 아이들도 해보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내가' 하던 우리 아이들이 떠오른다. 시기의 아이들이 대부분 걸린다는 '내가병'. 그 '내가, 내가'는 시작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의 당당한 도전정신, 나는 할 수 있는 아이라는 자신감이 바탕이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 아이들이 커가며 완벽하지 못할 자신에 대한 두려움에 시작하기를 꺼려하고, 나의 잘난 점보다 부족한 점을 더 부각하여 느끼는 미룬이가 되어가는 것일까.
B급 유튜브 구전SONG이라며, 왜 저런 이상한 노래를 저렇게 오래토록 신나게 깔깔대며 부르는 거냐며 흘려들었던 내가, 지금은 그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반성하고 있다니.
여기서 더 나아가 서동과 선화공주의 서동요까지 생각이 나아가고 있다니. 서동이 아이들에게 퍼트린 민요, 서동요. 그 서동요로 인하여 선화공주는 쫓겨나고 그로 인해 서동은 계획대로 선화공주와 결혼을 했다. 노래의 힘이란. 역사적으로도 노래, 시, 민요와 같은 구전 문화를 통해 민중의 생각을 움직인 예는 꽤나 많았다. 구체적인 사례가 떠오르지 않아 챗GPT를 소환해 물어보았다. 챗GPT가 알려준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글 한개를 쓰는데 이런 부수적인 활동들이 잇따르니 글쓰는 시간이 길어진다. 뇌의 흐름대로 쓰느라 주제가 이렇게 진행되어도 되나 싶다.)
-조선 후기의 아리랑. 독립운동가들이 집회나 시위를 할 때 불렀으며, 조선의 억압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민중의 저항의식을 고취시켰다.
-프랑스 혁명과 '라 마르세예즈'. 혁명군이 부른 행진곡으로, 프랑스 혁명의 열정을 담은 가사를 통해 민중의 애국심과 투쟁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흑인 민권 운동과 'We Shall Overcome'. 인종차별 철회와 평등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더 알려주었지만 여기까지.(챗GPT 대단해. 고마워.)
노래는 단순히 듣는 즐거움을 넘어 집단적인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챗GPT가 알려주었다. 그렇다. 노래는 이런 힘이 있는 문화였다. 내 기준 B급 멜로디라며 귀를 닫고 듣지 않았던 나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미룬이'. 나는 '미룬이'가 되지 않겠다 다짐한다. 시작이 제일 즐겁던 어린이의 초심을 다시 가지려고 한다. 내일의 나에게 미룬 용기를 오늘의 내가 다시 갖고 시작하고자 한다. 치킨을 먹고서 시작하지 않고 해내고 난 다음의 나에게 상으로 바삭한 치킨 닭다리를 셀프 선물하겠다.
그럼 그 때의 나에게 '해냄이'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들려줘야지. 요즘 시대는 AI한테 명령만 잘하면 노래도 잘 만들어주니까 이것도 한 번 해볼까? (지금 안하고 또 미루는 건가ㅋㅋ 지금은 미루는 게 아니고 진짜로 자야되는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