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 않아, 절대로. 과연?
집에 전화기가 생겼다. 인터넷을 바꾸면서 집에 전화번호를 만들었다. 아직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쥐어주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그래도 급한 연락을 위한 방안으로 선택한 것이 집에 전화기를 놓는 것이었다. 원하는 끝번호도 얻었고, 아이들도 (크게 감흥이 있어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본인이 원할 때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아이들은 가족들의 전화번호부도 만들어 전화기 옆에 놓았다. 아빠와 엄마의 번호는 알고 있겠지만, 외우기 힘든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고모, 외삼촌, 외숙모의 번호까지 쪼로록 적어두었다.
오늘 아빠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얼른 나가야 하는 일이 있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비었다. 아이들에게 곧 있으면 아빠가 집에 올텐데 엄마는 지금 마트에 가봐야 하니 30분만 둘이 있으라고 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를 하라고 하고는 30분의 빈 시간을 전화기를 믿고 나갔다. 출발한 지 10분 후, '행복한 우리집♡'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아....... 언제 와?"
"응? 엄마 이제 나왔는데?"
"노브랜드 간 거 아니야..?"
"아..아니야, 차타고 가는 마트로 왔어!"
"그냥 노브랜드 가지 그랬어. 없으면 없는대로 사오지."
"아.... 아빠 좀 있으면 올거야. 아빠 어디까지 왔는지 전화해볼래?"
"응, 알았어."
그렇게 아빠에게 아이들의 매달림을 넘기고 마트 장을 보고 있는데, 또 '행복한 우리집♡'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아.....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오빠 친구랑 하는 파티가 내일이야, 내 친구랑 하는 파티가 내일이야?"
"아, 오빠 친구랑 하는 파티가 내일이고, 현이 친구랑 하는 파티는 다음주야."
"맞지? 내가 맞지? 오빠 거봐, 내말이 맞잖아!"
"궁금증이 풀렸어?"
"응! 끊을게!"
그렇게 궁금증을 푼 딸래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또 10분 후, '행복한 우리집♡'에서 전화가 왔다. 이제는 아빠가 집에 왔나보다. 오빠와 아빠는 그날 해야 하는 책상타임을 시작한 모양이다. 공부는 같이 하기 싫고 혼자라 심심해진 딸래미가 또 필요에 의해서 전화를 했다.
"엄마.... 근데 있잖아"
"응, 왜?"
"나 오빠 알림장 하나 써도 돼?"
"응? 오빠 알림장? 새거 말하는거야, 사놓은거?"
"응. 그거 나 하나 가져도 돼?"
"당연하지. (뭐 때문에 또 그걸 쓰겠다는 건지...분명 첫 몇장 쓰곤 연습장이 되겠지..그래도) 당연히 되지!"
"응, 알았어!"
그리고는 다행히 아빠가 케어를 잘 해주었는지 더 이상의 전화는 없었다. 집에 들어가니 고맙게도 잠들어있는 아이들이었다. 집 전화를 놓은지 약 일주일이 되었는데, 오늘 가장 많은 통화를 했다. 점점 더 그 빈도가 많아지려나. 아니 둘째 딸은 아직 집에 혼자 있을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오늘이 특별한 날일 듯은 하다.
갑자기 연결된 과거의 한 장면, 아니 한 장면이 아닌가. 나의 생각의 흐름에 연결된 과거의 상황이 있다. 신랑이 외출했을 때, 분명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 하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언제 올지 기약이 애매할 때. 나도 그랬다. 전화를 하던 카톡을 하던 신랑에게 '언제와?' '언제끝나?' '출발했어?' '얼마나 걸려?' 그랬었다. 사랑하는 마누라에게 10분마다 오는 안부연락. 집에서 나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사랑하는 마누라(?)의 연락. 그리고 오늘 외출한 나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딸래미의 전화. 연결이 된다. 그날의 나는 오늘의 딸래미, 그날의 신랑은 오늘의 나. 그래 나는 오늘이 처음이니까, 그리고 그게 아주 귀여워 죽겠는 막내딸의 전화니까 10분마다 걸려오는 귀찮은 이 전화가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반복되면...음... 가끔 모른척 휴대폰을 뒤집어 덮을 수도 있을까?
혹시 신랑아, 너는 그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