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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알갱이 Jun 13. 2024

박윤구발 유서

1

내내 뒤척이다 든 잠에서 깨고 또 아침을 맞았다. 잔잔히 들려오는 뉴스에도 윤구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문득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털며 잔상을 지워버린다. 사건의 전후 많은 게 달라졌고 많은 게 그대로다. 오래 묵은 먼지와 자잘한 것들에 버스럭거리는 방바닥을 저벅저벅 걷고 있는 박윤구는 참으로 어수룩한 인물이다. 퍼런 빛, 검은빛을 띠는 우울한 낯은 그의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우욱하고 무력한 감정이 위액처럼 복받치자 윤구는 서랍을 뒤져 항우울제, 항불안제 따위를 찾았다. 일단 입에 주워 넣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며 많은 것들을 삼켜버렸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울었다. 비통한 표정도 없고 눈물도 없이 고요하게 맑은 낯으로 울었다. 시간이 흐르니 우울도 효율적으로 일하게 되는 건가 하고 윤구 스스로 자조했다. 즈잉지잉지잉지잉 핸드폰 진동에 정신을 차리고 내용을 확인하니 스팸 전화와 광고 문자 몇 통만이 덩그러니 있다. 이것마저 없으면 윤구의 하루에는 스스로 만드는 것 이외의 소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소리조차 내지 않고 우는 사람이니 아무런 소음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적막을 더없이 견디기 어려워할지 모르지만 윤구에겐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들이다. 그의 삶에 사람이란 존재가 쉬웠던 적이 있을까. 떠올리면 끔찍한 기억들 뿐이라 괜한 기억의 상기에 숨이 턱 막혔다. 악의, 인간이 가진 악한 의도, 목적과 방향성, 그것들이 윤구에겐 보였다. 스스로도 인지 못하는 것들을 윤구는 알 수밖에 없었다. 악의를 가진 인간과의 조우, 그 후 자연스레 보이고 들려 알게 되는 것들. 윤구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별거 없는 고통들로 점철된 그의 삶은 언제부터 불행의 가속도가 붙었을까. 그가 생겨나게 된 지점을 한 번 살펴볼까 한다. 배워 먹지 못한 집안에서 권한 없는 책임에 목매여 살던 아버지는 중매 한 번에 결혼을 마쳤고 그렇게 어머니를 만났다. 신혼여행서부터 어머니는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해댔다고 하고 아버지는 근근한 벌이에 술이며 여자며 밖으로 돌았다고 한다. 성병에 걸린 어머니는 패악질에 더욱 페달을 밟으며 자신과 배 속의 아이, 주위의 모두를 들들 볶았다. 윤구는 그렇게 썩은 탯줄과 검은 양수에서 병신처럼 자랐다. 태명을 묻는다면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이 새끼, 저 새끼, 병신새끼, 버러지 등이니 이 중 하나를 고르면 될 것이다. 꼴깍꼴깍 죽을 듯 죽을 듯 윤구는 미약한 울음을 내며 태어났다. 뿌옇고 붉어 맑게 뵈는 것이 없고 역한 피비린내와 물때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은 그 탄생의 현장이 윤구의 삶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태에서 덜 만들어진 건지 윤구는 보고 듣고 걷는 것 모두 성치 못했다. 어미는 이걸 두고 제대로 된 병신도 못 되는 애매한 병신이라고 두고두고 욕했다. 아마 제대로 된 병신에게만 주어지는 국가의 혜택과 수급비 따위가 탐이나 그랬을 것이다. 근근이 막일판을 전전하는 아비의 벌이로 윤구네는 간신히 살아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여간 억셌던 게 아니다. 어미는 자꾸만 이상한 생각들을 만들어냈다. 세균이 창궐한다며 부엌 싱크대를 뜯어내고 바닥 장판을 벗겨 시멘트를 파냈다. 온갖 쓰레기는 집안을 메웠고 세탁 안 된 옷들이 방방 가득 쌓였다. 괴상한 벌레와 곰팡이 따위가 집을 좀먹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속에서도 윤구는 냄새나는 교복을 찾아 팡팡 털어 입고 라면 따위로 끼니를 해결했다. 우중충한 얼굴 만면과 기색은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아 사람들 속에선 겉돌기 일쑤였다. 고 1 시절 윤구 주위 자리에 있던 한 아이는 그에게서 나는 쾌쾌한 냄새를 된장 썩은 내라고 칭했다. 들릴 듯 말듯한 수군댐이 아닌 대놓고 들으란 말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윤구도 파라락 얼굴이 붉어졌다. 툭 고개를 떨구곤 잠시간 비참했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윤구에게 허락된 삶인데. 매일 악다구니 속 난리를 치며 폭력을 행사하는 어미이기에 윤구네 집은 동네 유명지였다. 창피와 수치에 참아지는 고통이 아니기에 윤구는 매를 맞으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고 어미는 이에 더 날을 세우며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제 아이를 해치는 데에 휘둘렀다. 경찰도 교사도 이웃도 아는 쟤가 걔지? 의 주인공인데 된장 썩은 내 따위가 대수겠는가. 단지 윤구의 소원이라면 사고사든 질병사든 고통 없는 즉사로 평안해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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