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북한에서 오셨네요. 그럼 혹시 달래 섬 아세요?” 내가 질문했다. "아니요? 라는 대답만 들었다. 아직 달래 섬을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초순의 고향은 삼팔선 이북 달래 섬이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백령도로 시집 와서, 이후로 한번도 가 볼 수 없었던 고향,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을까! 어쩌다 새벽에 구석 한켠에 기대어 우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너무나 슬퍼 보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북한에서 탈북해 온 사람을 만나면 달래섬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 습관이 생겼다. 그녀의 고향이 북한 어디쯤 위치해 있는 지, 혹여라도 친척 소식을 알 수 있을까 하여 물어보았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왜병이 들이닥쳐 그녀의 남편을 강제로 끌고갔다. 남편 없는 시집에서 온갖 구박과 고된 농사와 집안일에 시달리다 그녀는 결국 죽을 결심을 하고 식초 한 병을 다 마셨다. 그런데 잉태한지도 몰랐던 흔적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피덩이 되어 흘러 내렸다. 그녀는 얼마나 놀라고 마음이 아팠을까!
원자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했다. 전쟁도 끝나고 일본군도 제 나라로 물러갔다. 하지만 초순의 첫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외침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동족상쟁의 비극, 6.25 전쟁이 터졌다. 전쟁은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한많은 삼팔선이 그어졌다.
그녀가 고된 시집살이 하고 있을 때, 백령도로 피난 왔다가 삼팔선으로 인해 부모와 처자식과 생이별한 사람과 중매로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그렇게 새롭게 가정을 이루고 일남 오녀를 낳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초순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는 초순이 열두 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초순은 막내라 결혼한 큰오빠와 살게 되었지만, 초순의 올케는 눈칫밥을 주었다. 눈칫밥을 먹으며 살던 초순을 이번에 시어머니가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며 갖은 구박을 하였고 종처럼 부렸다. 그랬던 시집살이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라고,
‘부모 복 없는 년 남편 복도 없다더니’ 중얼거리기며 괴롭고 힘들 때마다 남편 몰래 담배와 술로 시름을 달랬다. 초순과 그녀의 딸들은 늘 두려움과 초조함과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녀의 남편은 술에 취하면 망난이와 다름없었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망난이가 칼을 들어 목을 치기 전까지 칼춤을 추는 그때 긴장이 최고조로 이르는 것 처럼 그녀의 남편이 술에 취해 짐승처럼 날뛰는 순간이 오면 그녀의 딸은 그녀를 붙잡고 “도망가 제발 도망가요”. 소리쳤다. 그녀는 끝내 도망가지 않았다.
다음날 그녀의 남편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찍 일어나 농사일을 했다. 술에 취하지 않은 그는 너무나 조용하다. 술 취했을 때 말고는 그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할 정도로 그는 말이 없었다. 그녀가 버텨주었기에 일남 오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성장했고 각자의 삶을 찾아갔다. 명절 때나 생신 때 그녀는 딸에게 선물은 받으면 “해준 것도 없는데” 하며 미안해 했다. 딸은 그 소리를 너무 싫어 “왜 해준 것이 없어. 그런 말씀 마세요.” 그녀는 “그래 알았다. 하고는 언제나 미안해했다.
세월이 흘러 일남 오녀 중 장녀인 큰딸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먼저 백령도를 떠났고 이후 아들도 둘째 딸도 셋째 딸도 백령도를 떠나고 어린 두 동생만이 그녀 곁에 남았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넷째와 막내까지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이후 그녀는 홀로 남편을 감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녀는 농사일이 마무리된 겨울에나 일 년에 딱 한 번 딸들을 보려고 육지인 인천에 나올 수 있었다. 그녀의 딸들은 그녀가 염려되고 보고 싶어도 뱃길이라 쉽게 들어가고 나올 수도 없었다. 딸들이 휴가 때 들어가면 일 년에 두 번 서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바다 건너 먼 육지에 사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90세에 한 많은 삶을 풀지도 못하고 하늘로 갔다. 그녀는 하늘에서 행복할까? 그녀의 딸은 매일 기도한다. 그녀가 그곳에서는 행복하기를.
달래 섬을 검색해 보니, 월래섬이라고도 불리는 황해도 남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달래섬은 백령도에서 가장 지척에 있었지만 멀고도 먼 가볼수 없는 엄마의 고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