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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표 Jul 14. 2024

스무 살 새내기 동아리 회장

보드게임 동아리 창설과 운영 이야기

안녕하세요. 국민대학교 입학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어느 때보다 연말의 벅차는 분위기가 더 깊어져가는 2020년 12월의 겨울, 기쁨을 강요하는 듯하는 한 여자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로만 듣던 '수시납치',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수시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에 지원이 가능함에도, 수시에 합격하여 정시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속어. 그것을 내가 당한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험 생활을 1년 더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어쨌든 인서울 대학 아닌가?'라는 생각을 끝으로 국민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100% 만족하는 대학은 아니었으나 대학 생활만큼은 100% 만족하겠다는 생각으로 과대표에도 지원해 학생회에 소속된 상태로 개강을 기다렸다. 하지만 코로나의 파도가 대학 생활까지 퍼져나갔다. 1학기가 전면 비대면으로 결정되니 만족스러운 대학 생활은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동아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술과 보드게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이다. 웬만한 대학은 최소한 둘 중 하나의 동아리는 있었다. 내가 수능으로 가고 싶었던 대학 중에서는 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국민대학교 동아리 현황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헉? 보드게임, 마술 동아리 비스무리한 동아리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합 동아리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맞지만, 그때는 왠지 학교 내에서 동아리를 하고 싶다는 나름의 고집? 이 있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대학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리스트를 훑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크게 스쳐갔다. 


어? 내가 만들어볼까?


보드게임 동아리 첫 포스터

 동아리를 만든다. 스무 살의 새내기가 말이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과연 이 선택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다. 내가 동아리를 만들고 운영할 정도로 마술을 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마술은 탈락, 보드게임은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보드게임 동아리 창설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동아리를 만들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더 지니어스>와 같은 지능 게임의 분위기와 방향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았다. 이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마자 나는 '에브리타임'이 켜진 휴대폰을 덮어 두고 노트북을 열었다. 파워포인트로 조잡한 동아리 포스터를 만들고, 네이버 폼을 열어 바로 동아리원을 받을 준비를 하였다. 디자인에 센스는 없었지만, 그때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에브리타임'에 모집 공고를 올리고 나니 새벽 2시였다. 원래는 매우 졸려야 할 시간이었지만 피에서 도파민이 끓는 느낌이 들어 머릿속에서는 잠보다는 흥분이 먼저 느껴졌다. 


 다음 날, 일어나고 운전면허 연습을 위해 학원으로 향하는 중에 네이버 폼을 열어 신청 현황을 확인했다. "참여자 1/10" 무려 10명, 10명이나 나의 동아리에 관심을 가져주다니.... 앉은자리에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 후 틈이 날 때마다 네이버 폼에 들어갔다. 점점 신청자가 늘어나더니 금방 30명이 넘어갔다. 내가 이 많은 인원을 모두 만족시키며,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1차 모집자는 35명 제한을 두게 되었다. 그렇게 동아리가 점점 형태를 갖추며 1차 모집을 성황리에 종료하였다. 많은 21학번 동기들과 1~2학번 차이나는 선배님들부터 살짝은 무서울 정도로 고학번의 선배님들까지 나의 동아리에 참여하고 싶어 하셨었다. 시작이 너무 좋았던 걸까? 코로나로 인한 모임에 제한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드게임을 대면으로 하기 힘든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한 대책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보드게임 시뮬레이터가 인기가 많아지고 있었고, 이와 별개로 나는 고등학교 때 이벤트를 다수 진행해 본 경험이 있었다. ('부반장은 못 말려' 참고) 


 보드게임 시뮬레이터는 사실 온라인 게임이다 보니, 솔직히 오프라인 보드게임의 만족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는 우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모르는, 하지만 대학이라는 접점으로 연결된 사람들과 디스코드(통화)를 연결하여 각자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진행하는 것은 은근히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눈앞에는 오로지 노트북 하나만 있었지만 마치 가상현실 속에서 보드게임을 하듯이 몰입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보드게임, 혹은 <더 지니어스> 게임의 룰을 변형한 여러 이벤트를 진행하여 상품을 주기도 했다. 

동아리에서 진행한 이벤트들


 확실히 관심사가 보드게임인 사람들이 모이니 이벤트의 참가율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나는 신이 나서 나의 사비로 여러 이벤트들을 남발하듯이 개최했고,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그리고 여름 즈음에 코로나 규제가 완화되면서 오프라인 모임도 4인 정도로 진행하기도 했다. 다들 즐거운 시간을 오프라인 모임에서 보내고 헤어지고 나니 이 보드게임 동아리가 영원할 것 같았고, 나는 보드게임 동아리의 몸집을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K_BGM에서 국민의 숲으로 동아리 개편

 하지만, 그 마음과는 반대로 보드게임 동아리 운영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먼저 이벤트 참여율이 운영 불가능한 수준까지 점점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학기로 들어서면서 내가 시간이 없었다. 평일에는 마술 회사와 대학 공부를 병행해야 했고, 주말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하루 10시간 이상씩 했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이벤트나 대회, 그리고 모임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1학기에 내가 했던 것처럼 해달라고 다른 누군가에게 위임하기에는 또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점점 이벤트와 모임 주기가 길어지다 내가 2022년 들어 자퇴에 가까운 휴학을 신청하자 완전히 동아리는 사라졌다. 


 보드게임 동아리의 시작은 내가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찬란했었다. 그 찬란함에 속아 정말 열정적으로 동아리를 운영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국민의 숲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오로지 나 혼자, 동아리 입회비 없이 사비로 운영하려고 했었다. 그러니 쉽게 지쳐갔을 뿐만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된 동아리에서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니 그대로 동아리는 끝이 났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나를 희생했지만, 결국 어느 정도의 역할의 분배는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아리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들어오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봤어야 했었다. 그들은 생소한 이벤트가 아니었을 것이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보드게임 플레이만이 줄 수 있는 상호작용이 필요하자 않았을까. 익숙했던,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먼발치에서 갈망만 해야 했던 사회적 상호작용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기 넘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20살의 동아리 운영에 적극적으로 따라와 준 여러 동기, 선배님들에게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에 국민의 숲을 운영하는 잠시라도 즐거웠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동기를 계속 받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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