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추진력 넘치는 부반장의 이야기
기상 뉴스가 보도되기도 전부터 몸소 역대급 더위를 느끼던 고등학교 1학년의 여름방학. 통합사회의 '금융 자산' 부분을 공부하다 갑작스레 반장이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나서는 것을 그렇게 즐겨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반장이 갑작스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반에서 시행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시스템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무더위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2학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2학기가 찾아오자 나의 최근 관심사는 학급 임원 선발임을 많은 반 친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에서 굉장히 외향적이고 인기 많은 '인싸' 친구가 이번 반장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나와 대결을 선포하듯 퍼뜨렸다. 원래의 나였다면 비관적인 생각 속애서 위축되었겠지만, 이번 반장 선거는 자신 있었다. 보통 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는 친구들이 누구를 뽑나 생각해 보면 좀 더 친한 사람을 뽑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공약이나 연설에서 오는 특별함이나 끌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친분이라는 다른 잣대를 사용할 수밖에. 나는 반장이라는 직책에서 듣도 보도 못할 참신한 공약을 나의 무기로 가지고 있었기에 친분이라는 잣대는 이번 선거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생각했다.
학급 임원 선발 날을 기다리고 의식할수록 그것은 초, 중학교의 9년간의 경험과 달리 너무나도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게 더욱 갈고닦을 시간을 주고 있음을 깨달았어야 했을까? 시간이 지나 임원 선발 날이 다가왔고, 많은 반 친구들은 '인싸' 친구가 반장이 되는 것으로 예측, 아니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에 호응하듯 그는 자신의 '인싸력'을 한껏 뽐내며 반 친구들이 빵빵 터지는 연설을 이어갔다. 연설을 이어갈수록 유권자들은 계속 더 뜨거워졌다. 뜨거워지는 분위기와는 반대로 오히려 나는 안심이 되었다. 알맹이가 되어야 할 공약의 내용이 거의 비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내가 준비한 공약을 하나, 둘 풀어나갔다. 청소 시스템의 대대적 개편이나 다른 공약들도 충분히 혁신적이었으나 가장 핵심적이었던 것은 '그 시스템'인 금융 시스템이었다. 각자 은행에 계좌처럼 가상의 일정한 돈을 가지고, 선생님들의 수업 태도 평가를 기록해 그것에 따라 일정한 돈을 입금받거나 벌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뿐 아니라 가상의 돈으로 주식, 채권, 예금, 적금 등 여러 금융 상품에도 투자하여 당시 '통합사회'의 내용까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혁신적이고 매우 급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분위기를 살짝 보았는데, 다들 잠잠한 분위기였다. '이게 안 되나?'라는 생각에 반 친구들에게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 때쯤 개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나를 찍은 표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더니 바로 '인싸' 친구의 표가 나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칠판 위 잡고 잡히는 추격전을 이어가더니 우린 같은 곳에 멈춰 선 채 개표가 종료되었다. 무승부가 난 것이었다. 그 후 우리 둘만 투표를 진행했지만 무승부가 나왔고, 다짐 한마디를 덧 붙인 후 투표를 다시 진행해도 무승부가 나왔다. 그만하라는 듯한 학교 종소리가 날카롭고 매정하게 울렸다. 결국 승부의 행방은 우리를 다음 날로 이끌었다. 다음 날이 밝고 아침조회 대신 새로운 선거가 이루어졌다. 결국 한 친구의 마음을 지키지 못해 아쉽게 한 표차로 반장에서 낙선하게 되었다. 물론 곧바로 이루어진 부반장 선거에선 반장 선거의 임팩트로 바로 당선이 되었다.
바로 그날 반장 친구와 나의 공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공약 하나하나마다 빈틈을 파고들었다. 특히 금융 시스템에는 원수라도 졌는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뜻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내가 여름 방학부터 기획한 시스템이다. 여기서 무너지면 너무 아쉬운 것을 넘어 부반장이라도 된 이유마저 찾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알아서 하라는 그의 말에 나는 그 시스템을 개시했다.
쉬는 시간마다 복잡한 함수로 엮인 엑셀을 열어 화려하게 꾸며진 시트 위에 금액을 적어 나갔다. 처음에 호기심을 갖는 학급의 절반 이상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3~4명을 제외한 반 친구들은 시스템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시스템에 부정적인 몇 명(특히 반장)에게 휩쓸려서 그런 것일까? 나는 실패 원인을 그저 반 친구들에게 돌리며 시스템을 2달도 운영하지 못하고 정리하게 되었다.
부반장으로서 열정만 너무 앞섰던 1학년은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흘러갔다. 금방 2학년 학급의 문을 여는 날이 오게 되었다. 새로운 학급이었다. 나의 이벤트에 많은 참여율을 보일 것 같은 적극적인 친구들. 나는 다시 한번 반장 선거에 나가 주기적인 이벤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시 부반장이 되었다. 이번 반장은 달랐다. 내가 기획한 이벤트에 그 어떤 부정적인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묵묵히 '오케이 해 봐"라는 말만 던져줄 뿐이었다. 나는 물병 던지기 대회, 오목 대회, 간식 이벤트 등 복잡한 시스템 없는 독립적인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열었다. 하지만 참여율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하나만 걸려라'라는 생각으로 이벤트를 남발했지만, 그 하나가 걸리지 않았다. 이벤트에 성과도 없고, 과목 공부에서는 공부대로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에 다닐 정도였으니 2학기의 반장은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2학년이 지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공부에 미칠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학급을 만나는 개학은 항상 설레는 기분뿐이었다. 하지만,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웬 이상한 역병이 생각보다 큰 파도를 몰아치며 우리의 개학마저 휩쓸어갔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학교 생활이 그리워지고 나의 생활기록부에 어떤 것을 적어야 할까 걱정이 되니 반장이라는 직책에 욕구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비대면 반장 선거가 진행되었고, 나는 반장으로서 내세울 수 있는 게 결국 이벤트 같은 참신한 공약을 내세울 뿐이었다. 이젠 진짜 필연인 건지 또 부반장이 되었다. 나는 개학을 기다리며 당연히 공부를 하며, 그 와중 틈틈이 학교를 가면 진행할 이벤트를 기획하고 준비하였다. 이벤트를 준비할 때면 항상 망상에 가까운 상상에 빠져 기쁘고 설레는 기분뿐이었다.
결국 5월이라는 시기에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슬슬 코로나 학교 생활에 적응해 가며 준비한 이벤트를 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간단한 이벤트들이라 반장에게는 설명조차 없을 때도 많았다.
보통 참여하는 데에 1분도 걸리지 않는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열었다. 어렵거나 복잡하지도 않고, 대회처럼 귀찮지도 않은 이벤트들이었다. 지난 이벤트들의 실패 요인을 분석했기보다는 고3이라는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더 컸다.
나는 고3이라는 이유에 많은 참여율을 기대하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벤트에 참여해 재밌고 참신하다는 긍정적인 댓글들을 남기고 가니 신경 하나하나가 짜릿할 정도의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3년 동안 고민했던 성과를 보상받듯이. 놀랍게도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도 오르며 고등학교 3년 중 오히려 가장 행복한 1년을 보내며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참여하기 쉽다는 이유가 성공의 비결이었을까? 사실 나도 정확한 성공 비결을 확정 짓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3년 동안 꾸준히 이벤트를 추진하고 실패하며 나도 모르게 그 일에 노련해지고 있었다. 그저 재미라는 쾌락을 추구하며 시작한 여러 이벤트들은 나에게 경험이라는 큰 가치를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