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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숙 Nov 02. 2024

15. 매미

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15. 매미

                                        글·그림 숀 탠. 옮긴이 김경연/ 풀빛


작가 숀 탠


  1974년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주의 프리멘틀에서 나고 자랐다. 혼자 그림 공부를 해서 16살 때부터 공포 소설, 공상 과학 소설에 삽화를 그렸다.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1992년 국제미래출판미술가상을 수상한 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애니메이션 <월-E>와 <호튼>의 컨셉 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쓰고 그린 작품 《잃어버린 것》으로 볼로냐 라가치 명예상을, 《빨간 나무》로 CBCA 명예상을, 《도착》으로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받았다. 《여름의 규칙》 《도착》 《뼈들이 노래한다》 등의 작품이 있다.   

  

작품 줄거리


  매미는 고층 빌딩에서 데이터 입력하는 일을 한다. 17년 동안 쉬는 날도 없고 승진도 없다.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한다. 동료들은 매미를 업신여기며 못되게 군다. 매미는 집이 없어 사무실 구석에서 기거한다. 때가 되어 은퇴한 매미는 계단을 오르고 올라 건물 옥상 끝에 선다. 매미는 머리부터 둘로 갈라지며 변태한 몸이 나온다. 날개를 활짝 편 매미는 친구들과 함께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라 숲으로 돌아간다. 매미는 가끔 인간들을 생각하며 웃는다. 

    

작품 들여다보기



  표지를 넘기면 바로 이 그림이 나온다. 출입문도 창문도 없는 회색 빌딩이 가득 차 있다. 암울하고 꽉 막힌 모양이 무덤 같다. 현대사회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그 빌딩 속 작은 공간에 매미 사원이 일한다.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일이다. 아파도 쉬지 못한다. 실수도 없이 ‘톡 톡 톡!’ 자판 두드리는 일을 십칠 년 동안 반복한다.     

  사람이 존중 받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다. 사람은 기계의 일부다. 매미는 사회에서 약자를 대표한다. 매미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생존을 위해 기계의 일부가 되어 매일 단순한 일을 반복하며 산다. 개인으로서의 존재감이 없다. 


  톡 톡 톡!’이라는 의성어가 페이지마다 반복된다자판 치는 이 소리는 그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다


  매미에게는 승진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온갖 차별 대우를 받으며 늘 밤 늦게까지 일한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매미가 일하는 사무실이다. 빌딩 외형과 마찬가지로 차갑고 딱딱하고 비정한 회색이다. 이 또한 기계화된 현대 회사들의 상징적 모습이다. 인간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규격화된 콘크리트 칸막이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배열되어 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도 매미를 업신여기며 학대한다. 매미는 약자들 중의 약자이다. 이 그림은 자기보다 더 약한 자에게 폭력성을 드러내는 인간의 일면을 고발하는 그림이다.

  매미는 집도 없다 회사 사무실 벽 틈에서 산다. 회사에서는 모른 체한다. 사원들을 혹사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복지는 외면하는 악덕 사회이다. 

  드디어 매미가 은퇴할 때가 왔다. 입사한 지 십칠 년만이다. 수고했다는 인사도 없다. 책상을 치우라는 말만 한다. 참으로 비정한 사회이다. 



   매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어둡고 차갑고 높은 계단을 한 발 한 발 오르는 매미의 뒷모습이 고독해 보인다. 혼자 견디고 감당해야 할 마지막 힘든 여정이다. 



  드디어 다 올랐다. 옥상 끝에 다다른 매미는 머리 중앙부터 서서히 갈라지며 새로운 몸으로 부활한다.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숨죽여 살던 지금까지의 약한 몸을 버린다. 찬란한 날개를 가진 강하고 뜨거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젠 억눌림 당하고 소외 받던 과거의 매미가 아니다. 이때를 위해 그토록 긴 세월을 견뎌 왔다. 



  매미는 높이 비상한다. 친구들도 많다. 모두 함께 그들의 고향인 숲을 향해 힘차게 날아간다. 



  뒷면지의 그림이다. 매미들의 고향인 숲이다. 마침내 돌아간 그곳, 깊고 푸르고 자유롭고 생명의 근원과도 같은 아름다운 세계이다. 앞면지에 그려진 회색 빌딩 숲과 대조를 이루는 그림이다.  

    

  매미는 알에서 애벌레로 부화한 뒤 땅속에서 나무 수액을 빨아 먹으며 보통 7, 8년 정도 산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땅속에서 17년이나 사는 매미도 있다.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우화한 매미는 여름 한철 있는 힘을 다해 짝을 불러 짝짓기를 한 후 알을 낳고 죽는다.


  이 책에서 콘크리트 칸막이 안에 갇힌 채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매미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 당하는 약자를 상징한다. 생존을 위해서 부당한 대우와 억압을 감수하며 산다. 그러나 그에게도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 아주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딘다. 인고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때가 되면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라 자유가 있는 삶으로 비상한다. 

  우화한 매미는 초록 생명이 가득한 숲으로 돌아간다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숲은 불평등과 억압이 없고 모두가 존중하고 존중 받으며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세상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을 상징한다.

      

  꿈을 이룬 매미는 지금 숲 속에서 행복하다. 가끔 인간들이 떠오를 땐 웃음이 나온다. 나를 무시하고 짓밟았던 인간들, 무덤 같은 빌딩에 갇힌 채 꿈도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 그게 삶인 줄 알고 사는 불쌍한 인간들을 향한 비웃음이다.    

 

가끔 인간들을 생각한다. 

웃음을 멈출 수 없다. 

톡톡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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