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글:모니카 페트, 그림:안토니 보라틴스키, 옮긴이:김경연/풀빛
1951년 독일 하겐 시에서 태어났다. 문학을 전공한 그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행복한 청소부’, ‘바다로 간 화가’ 등 잔잔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안겨 주는 작품들로 하멜른 시 아동 문학상과 오일렌슈피겔 아동 문학상을 비롯해 독일의 여러 아동 및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내는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오스트리아 아동 및 청소년 문학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을 수상했다. 모니카 페트의 <행복한 청소부>, <생각을 모으는 사람>, <바다로 간 화가> 등의 작품에 그림을 그렸다.
매일 이른 아침 부루퉁 씨가 거리에 나선다. 생각을 모으기 위해서다. 낡은 외투에 베레모를 눌러 쓰고 배낭을 멘 차림이다. 그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생각들의 소리를 듣고는 재빨리 그것들을 배낭 속에 넣는다. 거리에서 생각들을 다 주워 모으면 불룩해진 배낭을 메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작업실 바닥에 큰 보자기를 깔아 놓고, 모아 온 생각들을 그 위에 부은 다음 엉켜 있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풀어 선반에 정리한다. 종종 도망가는 생각들이 있을 땐 기어이 찾아 낸다. 다 정리한 다음에는 생각들이 잠시 쉴 수 있게 두 시간 정도 그대 로 놓아두었다가 대바구니에 모두 담아서 밖으로 들고 나와 화단에 심는다. 다음날 새벽 노을 속에서 화단에는 온갖 색깔의 꽃들이 반짝인다. 꽃으로 피어난 생각들은 아주 작은 알갱이가 되어 바람을 타고 사람들 집집마다 들어가 사람들의 이마에 내려앉아 새로운 생각으로 자라난다.
이 책은 글과 그림 모두 상징으로 되어 있다. 생각을 모은다는 것부터가 상징이다.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그림이야기책의 하나인데, 이 책의 상징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이해하거나 감상하는 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숨은 의미를 푸는 핵심은 ‘생각을 모은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생각을 어떻게 모으는가?’이겠다.
주인공 부루퉁(원서에는 Mr. Grumpy)은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거리에 나선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생각을 모으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생각들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휘파람을 분다. 그러면 생각이 날아와 배낭 속으로 들어온다.
부루퉁은 생각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어떻게 생각의 소리를 들을까? 그것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이다. 말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말에 그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다. 생각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부루퉁은 곳곳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듣다가 그 중에 새로운 말이 들리면 그것을 재빨리 메모한다. 사람들의 말을 수집하는 일이 곧 생각을 모으는 일이다. (피터 H. 레이놀즈의 그림이야기책 ‘단어 수집가’와 `비교해 보면 좋겠다.)
그는 좋은 생각을 표현하는 말들만 수집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들어 있는 말이라면 모두 수집 대상이다. 예쁜 생각, 미운 생각, 즐거운 생각, 슬픈 생각, 슬기로운 생각, 어리석은 생각, 시끄러운 생각, 조용한 생각, 긴 생각, 짧은 생각...... 그에게는 생각을 표현하는 모든 말이 다 중요하다.
그가 지금껏 들은 적 없는 말, 또는 사용해 보지 못한 새로운 표현을 마주할 때마다 휘파람을 분다. 그것은 기쁨의 탄성이다. 그는 그 말들을 기록한다. 머릿속일 수도 있고 메모 노트일 수도 있다. 그가 메고 다니는 배낭이 기록을 뜻한다.
“어떤 생각은 천천히 날아오고, 어떤 생각은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오다가 아저씨에게 쾅 부딪치기도 해.”
“어떤 생각은 배낭 주둥이를 금방 발견하지만, 어떤 생각은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한단다...... 생각마다 하는 짓이 달라서 미리 짐작할 수가 없어.”
사람들의 말과 그 의미에 대한 부루퉁의 반응과 느낌을 나타낸 부분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들 가운데 그 의미가 서서히 깨달아지는 것도 있고, 번뜩 이해되는 것도 있다. 어떤 말은 수집하기가 쉬운 반면에 어떤 말은 어려운 것도 있다.
“오랜 세월 생각들을 만난 아저씨인데도, ...... 생각들이 저마다 그처럼 다를 수 있다는 데 놀란 것이 수백 번도 넘는단다.”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말이 저마다 다르다. 놀랍도록 다르다고 작가는 말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생각은 다 다르며 그것을 표현하는 말도 다 다르다. 사람들이 모두 다른 만큼 생각도 표현도 다 다르리라.
그는 생각들로 배낭이 묵직해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 종일 수집한 생각의 말들로 그의 머리와 가슴이 꽉 차 있는 상태이다. 그는 말들의 정리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서 잠깐 생각을 형상화한 그림들을 짚어 보자. 이 책에 계속 등장하는 작은 생물체들은 생각을 상징하는 그림들이다. 생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다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생각마다 모양과 색깔과 움직임이 다르다.
부루퉁은 수집해 온 생각들을, 즉 의미를 가진 말들을 그 성격에 따라 분류한다. (말들을 분류하는 것도 ‘단어 수집가’와 비슷하다.)
“생각들은 가려내기가 쉽지 않아 혼동하기 일쑤거든 ......”
말을 분류하는 일은 쉽지 않다. 먼저 말소리에 따라 묶고 그것을 다시 말의 성격에 따라 나눈다. ‘개성 있는 생각을 나타내는 말’, ‘고운 셍각을 나타내는 말’, ‘고지식한 생각을 나타내는 말’... 이렇게 말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리를 끝낸 후 아저씨는 생각들이 잠시 쉴 수 있게 선반에 그대로 놓아둔단다. 그래야 잘 익은 과일처럼 달콤한 즙이 많아지거든.”
그는 수집한 말들을 분류하고는 다음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시간을 갖는다. 말들에 대한 생각을 익히는 시간이다. 말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이며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이다.
말들에 대한 생각이 충분히 익었을 때 그는 생각들을 들고 밖으로 나와서 화단에 심는다. 화단에 생각을 심는 행위는 무엇을 뜻할까? 문학 작품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글쓰기 작업, 창작을 상징한다. 작가는 밤새 글을 쓴다. 밤은 그가 창작이라는 고된 작업에 몰두해 있는 시간을 뜻한다.
다음날 새벽 여명 속에서 화단에는 특별한 색깔의 꽃들이 피어난다. 꽃들은 모두 다르지만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다. 부루퉁은 피어난 꽃들을 감상한다. 날이 밝아지면 꽃들은 작은 조각들로 부서져 작은 멜로디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는 귀에 손을 대고 전율을 느끼며 그 소리를 듣는다.
밤이 지나고 밝아온 새벽 여명의 시간은 작품이 드디어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창작의 노동이 끝나고 세상에 나온 작품을 만나는 시간이다. 그가 쓴 작품이 꽃들로 피어난다. 작품의 파동이 꽃 향기처럼 음악처럼 세상에 퍼져 나간다. 작가가 전율 같은 희열을 맛보는 순간이다.
꽃으로 피어난 생각들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 집집마다 들어가 사람들이 이마에 내려앉아 새로운 생각으로 자라난다. 작품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가져다준다. 작가가 모아서 분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생각들이 시로 완성되어 독자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작가가 작품으로 만들기 전의 생각들은 줄곧 어둡고 좁은 공간에 묶여 있는 그림으로, 작품을 통해 세상에 나온 생각들은 밝고 따뜻하고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상징화하였다. 생각이 작가에 의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작가는 부루퉁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 없다면, 생각들은 줄곧 되풀이되다가 언젠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어느 도시건, 어느 마을이건 나같이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 있답니다.”
예술은 새로움, 독창성이 생명이다. 예술 창작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하는 행위이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며 그 재료가 언어이다. 작가들은 독창적인 세계를 참신한 언어로 빚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모으고 조립하며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작가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같은 말만 하고 같은 생각만 한다면 사람들의 생각은 퇴보하고 언어는 고갈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컴퓨터에게 맡기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오늘날, 작가의 우려가 가슴에 와 닿는다.
다행히도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작가가, 시인이 존재해 왔다. 말을 모으고 생각을 모으고 그것을 심고 꽃으로 피워내는 언어예술가들 말이다. 언어문학은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지리라 믿는다.
부루퉁은 작가다. 시인이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표현을 위해 한편으론 끊임없이 말들을 찾으며, 한편으론 문학 작품이라는 세상을 짓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을 줄 때 가슴 떨리는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부루퉁과 같은 시인과 작가들이 있는 한 사람들의 생각은 계속 퍼져 나갈 것이고 말들은 더 아름답게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