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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숙 Dec 11. 2024

19. 울타리 너머

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글·그림 마리아 굴레메토바, 옮긴이 이순영/북극곰


작가 마리아 굴레메토바 (Maria Gulemetova)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러스트 에이터, 어머니가 예술사를 전공한 사학자여서 그림책이 가득한 가정에서 자란 환경에 자연스레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불가리아 소피아 예술 아카데미에서 텍스타일을 공부하고, 앙글리아 러스킨 대학원 과정에 참여 후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 줄거리

  소소는 안다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한다. 소소는 안다가 시키는 대로 입고 놀고 움직인다. 안다의 사촌이 온 날 소소는 밖으로 나갔다가 산들이라는 산돼지를 만난다. 그 뒤부터 소소는 산들이를 기다린다. 사촌이 돌아가자 안다는 소소와 노는 걸 재미없어하며 자기 멋대로 군다. 소소는 옷을 벗어 던지고 달려 나가 울타리 너머의 산들이와 들판을 질주한다.     


작품 들여다보기

  표지는 돼지로 보이는 주인공이 외롭게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저 멀리 넓은 들판 가장자리에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는 게 보인다. 울타리 너머에는 푸른 산이 보인다.     

  면지에는 넓고 화려한 정원을 가진 저택이 그려져 있다. 등장인물들이 사는 집이리라.


  속표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은 돼지 소소가 찻잔 세트를 들고 간다. 소소에게 찻 심부름을 시켜 소년 안다와 소소가 함께 차를 마신다. 안다는 말을 많이 하고 소소는 듣기만 한다. 

     

  영어 원서는 제목이 ‘Beyond the Fence’이다. 소년의 이름은 ‘Thomas’이고, ‘소소’는 ‘Piggy(새끼 돼지)’, ‘산들이’는 그냥 ‘a wild pig(멧돼지)’라 쓰여 있다. 

  독자들은 ‘안다’와 ‘소소’가 영어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번역자가 소년의 이름을 ‘무엇이든 다 안다’는 뜻의 ‘안다’로, ‘소소’는 ‘소소하다’, ‘하찮다’는 뜻으로 붙인 듯하다. ‘안다’는 소소가 소년을 보는 관점으로, ‘소소’는 소년이 작은 돼지를 보는 관점으로 붙인 이름인 걸 알 수 있다.

  

   안다는 소소한테 어울리는 옷이 뭔지 알았어요뭘 하고 놀면 좋을지도 알았고요.  


소소가 입을 옷도, 둘이 함께 할 놀이도 안다가 다 정하고 소소는 따르기만 한다. 안다 혼자 움직이고 소소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 수동적인 모습이다. 둘은 서로 마주보며 놀지 않는다. 늘 안다가 주인공이고 소소는 그저 관객이다.


  어느 날 안다의 사촌이 놀러 오자 안다는 사촌하고만 논다. 그의 안중에 소소의 존재는 없다. 완전히 소외된 소소는 집 밖으로 나갔다가 산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멧돼지를 만난다. 

 

   산들이를 만났을 때 소소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이처럼 네 발로 선다.   

   

  “만나서 반가워. 그런데 그게 뭐니?”

  산들이가 물었어요.

  “아, 이거? 옷이야.”

  소소가 대답했지요.

  “숲에서 달릴 때 불편하지 않니?”

  “아니, 난 달리지 않거든.”

  “세상에! 달리면 얼마나 신나는데! 한번 해 봐. 같이 달릴래?”

  “그러고 싶지만 난 돌아가야 해. 나중에 다시 와 줄래?”

  “그래.”     


  소소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 중요한 장면이다. 지금껏 안다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며 그가 시키는 대로 사람 흉내를 내며 살아왔다. 안다는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소소의 존재를 무시한다. 멧돼지를 만난 후 소소는 자기가 사람이 아니고 돼지임을 깨닫는다. 사람처럼 불편한 옷을 입어 달리지도 못한다는 것도 비로소 인식한다. 산들이처럼 달리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은 사람처럼······


  그때부터 소소는 산들이를 기다린다. 창밖을 내다보다가 집 밖에까지 나와 애타게 산들이를 기다린다.

  다시 찾아온 산들이는 덫에서 빠져 나오느라 며칠 걸렸다고 한다. 덫은 저택의 울타리에 설치해 놓은 것이었으리라. 덫은 멧돼지 같은 외부 침입자를 막기 위한 폭력적인 장치이다. 소소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산들이는 이번에도 소소에게 함께 달리자고 한다. 소소는 울타리 너머로는 갈 수 없다고 한다. 안다에게 매여 있는 몸이다. 산들이는 그런 소소를 이해해 준다.


  다음 날 사촌이 돌아가자, 심심해진 안다는 소소에게 심술을 부린다. 소소가 노는 것을 훼방하며 자기가 하는 연극이나 보라고 한다. 소소는 즐겁지 않다.


  저녁 내내 떠드는 안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소는 자신의 생각에 골몰한다.


  다음 날 해질녘, 안다와 소소는 왕과 어릿광대 역할 놀이를 한다. 늘 그래왔듯이 안다를 위한 놀이다. 불현듯 소소는 안다의 말을 끊는다.  잠깐만."

 하고

  소소가 집 밖으로 나와 옷을 벗어 던지고 들판으로 달려 나간다. 사람처럼 옷을 입고 사람처럼 서서 걷던 것이 옷을 벗음과 동시에 네 발로 달린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이 멍청이는 어디 간 거야?”     

  안다가 소소를 찾는다. 좋아해서가 아니다. 안다에게 소소는 그저 심심함을 달래 줄 놀잇감이다. 안다가 소소를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대한 이유는 그를 ‘멍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소는 울타리를 넘어 사람이 다듬지 않은 드넒은 야생의 들판을 산들과 함께 달린다. 돼지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사람처럼 서서 걸으며 사람처럼 입고 먹고 사람이 시키는 대로 살던 소소는 산들이를 만나고서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그리고 돼지로서의 진짜 삶을 찾는다. 


  소소가 떠난 저택의 모습이다. 넓은 시야로 보니 울타리 속 저택이 아주 작다. 좁은 울타리에 갇혀 외롭게 살면서도 제가 대단한 줄 알고 다른 이를 업신여기며 사는 인간이 사실은 얼마나 작고 불쌍한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정체성을 찾은 소소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자유 없이 살던 삶을 버리고, 울타리 너머의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삶을 택했다.

  울타리는 제약구속차별억압을울타리 너머의 세계는 그런 것들이 침범하지 않은자유와 행복이 충만한 셰계를 상징한다.       

  안다와 소소의 이야기는, 스스로를 우월하게 여기는 자에 의한 차별과 억압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것을 과감히 끊어내고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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