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수목원
어릴 적부터 여행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서라도 여행을 가곤 했다. 처음엔 동네 뒷동산에서 시작해 중학교에 가서는 버스를 타고 땅끝마을까지 가는 용기도 내어 보곤 했다. 다행히 집에서는 내가 어디를 가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큰 걱정을 하지 않아서 마음껏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여행을 하던 나에게도 교사가 된 이후로는 쉽게 여행을 가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매달 한 번씩 가는 토요현장체험학습을 운영하고, 방학이면 3박 4일 동안 경주며 담양이며 우리 반만의 수학여행을 다니면서 진정 나만의 여행은 다니지 못했다. 거기다 결혼과 동시에 여행보다는 가족에게 충실하게 되었다. 점점 여행은 일상다반사에서 연중행사가 되어 버렸고, 혼자만의 사유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자마자 개교한 학교에 발령을 받다 보니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잘 모르는 학교의 행정업무까지 도맡아 하다 보니 더더욱 나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하루하루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업무처리반이 되어버린 느낌.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아이들 속에서 함께 지내는 게 꿈이었던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은 바로 부장이라는 타이틀이었다. 반복된 과로로 인해 쓰러지면서까지 내 일을 꼭 해내야 하는 강박이 있었던 나는 점점 스스로를 업무라는 틀 안에 가두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도 경력이 쌓이며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학급에 온전히 관심을 둘 수 있게 되면서 산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생겼다. 그렇게 매년 한 곳의 국립공원 산들을 올랐던 과거를 생각하며 오른 관악산은 더 이상 산을 좋아했던 내가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평지에서부터 조금씩 연습을 한 후에 오를 수 있는 산이 되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숲을 찾으려 했다.
처음 아이들과 함께 간 물향기수목원은 매년 아이들과 함께 가는 코스가 되었다. 숲은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올해 연구년을 하며, 과거 추억의 장소에 한 번씩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과의 추억이 담긴 물향기수목원을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좀 더 과거의 추억이 담긴 곳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든 사진을 디지털화해 버린 나의 앨범 폴더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어릴 적 사진부터 지금까지의 무수히 많은 사진들을 보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간 광릉수목원이 생각이 났다.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나들이처럼 갔던 그곳. 무엇이 좋은지 그 이후로도 매년 갔던 곳. 항상 같은 친구들끼리 4년간 같은 날 그곳에 갔던 빛바랜 사진들이 보인다.
‘그래 한번 더 가봐도 좋을 것 같은데,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잖아.’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일까?’
한번 생각에 잠기니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다. 추억을 기억하는 과거로의 초대장을 받은 것처럼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에 다시 가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친구들에게 연락해 같이 가보자고 할까? 시간이 안되면 나 혼자라도 추억을 다시 친구들에게 전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숲으로 향한다.
- 추억을 담은 웅장한 그릇
일부러 버스를 타고 출발해 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무언가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나만 돌아왔다. 아무것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엄마는 찾았을까?”라는 대사가 기억이 났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다시 돌아 온 집에서 엄마를 추억하고, 과거를 추억한다. 나 또한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가는 것이니 천천히 가보고 싶어졌다.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광릉수목원에 가는 건 쉽지 않다. 여러 번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 타야만 한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쉽게 한 번에 갈 수 있지만 여행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되기에 스마트폰에게 물어 물어 찾아가 본다. 산을 좋아했던 나에게 이곳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곳이다. 오르고 오르며 땀범벅이 된 채로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내가 이곳에 있음을 알리는 게 산이라면, 숲은 고요한 발소리만 남기고 숲의 여운을 그대로 느끼는 게 다르다면 다르다.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동물 소리, 바람 소리를 참 좋아한다. 어떤 새가 우는지 항상 궁금해서 숲에 가면 찾아보면 게 일상이 되어 수리산생태도감을 3년간 매주 올라가며 책을 낸 적이 있다. 당시 생태전문가이신 분이 ‘함께 해볼래?’ 해서 시작한 매주 산행은 처음엔 ‘그냥 힘들다.’였다.
“같은 나무라도 이름이 달라요. 이건 잎에 따라서 전나무, 소나무가 되고, 이건 열매에 따라서 다르죠.”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잘 몰라 건성으로 대답하면서도 산의 싱그러움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리산 생태도감 식물 편과 동물 편을 제작하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동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이름이 뭐였는지 궁금해하며 찾아보게 된 게 말이다.
거의 30년 만에 찾아온 광릉수목원은 그대로였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이곳은 참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박한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준다. 길도, 하늘도, 작은 풀벌레, 나무들도 그 모습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는 걸 보며, 어릴 적 친구들과 첫 여행이라며 좋아했던 고교생으로 돌아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혼자 숲에서 시간 보내는 아저씨 일지 모르지만, 나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18살의 고교생일 뿐이다.
그림책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서 톰만이 아는 정원은 과거 그 동네의 정원이었고, 도시개발로 사라져 버린 곳이었다. 그곳을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았던 톰이 30년 전의 정원을 혼자 거닐며, 당시의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드는 것처럼 이곳은 30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나에게 알려 준다. 기억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갔던 곳들을 찬찬히 걸어가며 추억에 잠긴다. 톰이 정원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추억을 담아내듯이 말이다.
이름 모를 풀꽃이 나를 반긴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으리란 걸 믿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래간만에 온 나에게 ‘한참을 기다렸어. 이제 좀 여유가 생겼나 보네.’ 잠시 풀꽃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게 너무 늦지 않게 온 거지. 우리 친구들과 함께 왔던 거 기억나?”
“그럼 기억하지. 그런데 오늘은 왜 혼자야?”
“어쩌다 보니 다들 바쁘다네. 다음에 꼭 같이 올게.”
바람이 참 좋다. 친구들과 함께 기대었던 나무를 찾아 슬쩍 기대어 본다. 언제나처럼 나무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기댐을 스스럼없이 안아준다. 나는 기대고 있는데 나무는 나를 안아주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삶은 이처럼 스스럼없이 기댈 줄 알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매년 한 번은 다시 와야겠다. 황톳물 드린 손수건 한 장 다시 만들려 와야겠다. 친구들아!! 그때는 같이 와보자..
<함께 하실래요.>
<숲> 강은교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당신의 추억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 너무 삶이 고단할 때 한 번쯤 그런 장소로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요? 지금도 늦지 않은 추억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한번 같이 가 보실래요.
<광릉수목원>
경기도 포천시 호흘읍 광릉수목원로 509번지에 있습니다. 광릉수목원보다는 이제 국립수목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세조가 즐겨 찾던 사냥터였던 이곳은 세조의 능인 광릉이 위치하면서 사방 15리의 숲을 능 부속림으로 지정하게 되었고, 6.25 전쟁 이후 시험림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는 곳입니다. 동물들이 희생되었던 사냥터에서 540년 간 온대활엽수극상림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숲입니다. 동물들과 식물, 그리고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아 추억을 남기고 기억을 되살리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