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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리 Aug 21. 2024

일상다반사 8월 21일(수)

연구년일기

오래간만에 비가 온다. 새벽에 마른 청둥이 치더니만 억수 같은 비가 내린다. 잠깐은 시원하지만 금세 몸이 끈적이며 습도가 올라가니 그렇게 상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날이다. 그래도 비가 오니 세상이 세수한 듯 깨끗해 보여서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지는 아침이다. 내일이 처서이다 보니 가을을 재촉하는 비라고 생각하니 조금 있으면 낙엽 밣으며 한껏 가을남자가 분위기를 낼 상상을 해본다. 갑자기 내린 비는 연구년 중간보고회 시작시간 마저 늦췄다. 집에서 겨우 10분 거리의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30분이 걸리니 다른 분들은 더 늦게 올 수밖에 없는 날이다. 10시부터 시작하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왠지 창밖에 비 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 9시에 도착해서 연구사님을 아주 조금-다른 분들이 더 일찍 오셔서 다 해놓으시는 바람에-도와 드리고 보고회 장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인정하는 부분도 많고 생각할 부분도 많은 책을 읽다 보니 진도가 빨리 나가기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과 괜스레 시비를 붙고 책과 논쟁을 버리고 있어 다른 사람이 보면 혼잣말을 무지 많이 하면서 화도 내고, 웃기도 한다며 이해불가 사람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할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래도 일찍 와서 아무도 없는 보고회장이고 조용하고 시원한 곳에서 아침대용으로 나누어 준 떡과 함께 있다 보니 어느 때보다도 책을 읽는 곳으로는 최적이다.

오늘은 연구년 모임 중 처음으로 내가 맡은 일이 없는 날이다. 어쩌다 보니 공동연구팀장이고, 처음에는 사회자로 진행을 맡다 보니 계속 앞에 나아서 뭔가를 했었다. 9분의 선생님의 중간보고 발표와 공동연구 협의회를 하는 날이다 보니 직접적으로 나설 것이 없는 부분도 있지만 좀 내려놓고 싶어서 중간보고회는 다른 분께 양보했다. 사실 양보라기보다는 외면이라는 표현이 어찌 보면 더 맞지만 말이다.

지난 7월 30일에 공동연구팀 선생님들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가야 했었다. 갑작스럽게 개인적인 일로 참석하지 못했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모임보다 더 큰 일이기에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해서 소식만 듣고 말았는데, 오늘 한 분이 받은 자료와 함께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많은 공감과 함께 '일본군위안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특히 왜 이런 박물관이 설립되어야 하고, 전쟁과여성인권에 대해서 연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며 그때의 소감을 전해 주셨다. 소감을 들으니 다음에 혼자서라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관장님이 특별히 설명의 시간을 내어 주셨다.


9분의 중간보고를 들으며, 이주배경학생에 대해서도, 기초기본교육과 안전교육, 인성동화, 상담에서의 수퍼바이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열띤 발표를 들으며 내 연구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중간보고 이후로는 공동연구보고서 작성을 위한 공동연구팀 협의회가 있다.

공동연구 보고서는 이제 한 달 반 정도 남아서 일정을 잡고 어떻게 쓸 건지를 정하였다. 모두 정약용이 저술한 500권의 책 중에서 하나씩을 골라 학생들과 프로젝트 수업하는 수업안과 활동지를 제작해 오기로 했다. 정약용의 작품 중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는 누구나 아는 책들이며, 대표적인 책들이다. 그 외 여유당전서와 아방강역고, 편지에 대해서 제작해 보기로 했다.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3월부터 다져 온 연구팀의 팀워크는 확실히 좋아서 바로바로 수업안 형태, 활동지 디자인, 이후 일정까지 짤 수 있었다. 10월에 발표이니 잘 구성해 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이후 일정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이번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보고회가 있어서 좀 여유가 있었는데 다음은 좀 멀 듯하다. 경기도 각지에서 오신 선생님 200여 분이 모이니 남쪽에서도 한번, 북쪽에서도 한번, 동쪽에서도 한번 이렇게 돌아가면서 한다. 다음엔 북쪽이니 늦지 않게 열심히 달려가 봐야겠다.

집으로 오는 동안 운영하고 있는 연구회 대면모임 날짜를 정하고, 모임 장소인 스터디카페 예약하는 걸 총무와 협의해서 결정했다. 항상 이동하면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워크홀릭이 다시 발동했나 보다. 좀 여유를 가지라고 그렇게 나에게 말하지만 참 말도 안 듣는 나이다. 집에 와서 슬기로운 초등생활이 EBS 다큐영화로 24시 정도에 방영한다고 해서 지금 기다리고 있다. 분명 볼 수 있을 것이다. 잠들지는 딸아이 때문에 안들 것 같은데 대신에 빨리 자야 된다고 TV 시청을 못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럼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꼭 오늘은 보고 말 테다...


주) 오늘의 일상다반사 연구년 일기는 교사로서 발령을 받고 매일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수업일에만 씁니다.-20여 년간 쓴 교단일기를 2024년에도 써보고자 하는 마음에 쓰고 있는 일종의 일기입니다.

주) 연구년 : 교사에게는 교사로서 근무하는 동안 생애 딱 한번 연구년이라는 걸 신청해서 할 수 있습니다. 신청했다고 모두가 되는 건 아니고 계획서통과, 면접 통과를 해야 하는데 최소 15년 근속해야만 신청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1년 간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매달 모임이 있어서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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