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임용고시에 통과했다. 시험을 준비할 때는 붙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덜컥 붙어버려 급하게 건강검진받고 증명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교직 생활. 정말 붙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활동지를 만들 줄 몰라요
수업 시간에 사용할 활동지를 만들어야 한다. 교과서의 내용으로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고,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담기 위해서 활동지 제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앉아서 글만 읽었지 한글 작업을 하거나 PPT 만드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학교 재학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결과물을 만들었다. 지금에서야 그때 결과물을 바라보니 민망하고 처참했다.
빠른 활동지 제작과 수업 준비를 위해 한글과 윈도우 단축키를 외우고, 미리캔버스와 캔바를 익혔다. 교사가 무엇을 알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담을지도 상당히 중요하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수업을 해보니 시청각자료의 유무는 주의집중과 흥미 유발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활동지와 PPT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담으려고 노력했다. 교직 첫 해에는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했다. 매일 12시간 정도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꽤 오랜 시간을 수업 준비에 투자했다. 한 번 제대로 익혀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시간을 할애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에듀테크 배우기
갑자기 학교에 '교육정보부'라는 부서가 신설됐다. AI정보교육 중심학교라는 사업으로 AI정보실도 만들었다. 그러면서 학교 내에서 AI교육을 선도할 선생님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교육정보부장이 된 선생님은 교직 첫 해의 옆반 담임 선생님이셨다.
업무를 꼼꼼하게 처리하시고 수업에 대한 열정도 굉장히 뜨거우신 분이다. AI정보교육 선도교사를 모집하려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하셨다.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당연하죠!"
전문적학습공동체 시간에 선생님들께서 돌아가면서 에듀테크 및 인공지능 활용 수업을 준비하시고 공유했다. 첫해에는 ZEP을 활용한 메타버스 연수를 작게 진행했다.
전문적학습공동체) 메타버스(ZEP) 활용 방안
교육정보부장님의 격려와 응원으로 무사히 연수를 마쳤다.
올해는 캔바 관련된 연수를 담당했다. 1차시에는 기본적인 캔바 사용법과 AI를 활용한 미지와 영상 생성, 문장 생성, 사진 편집을 소개했다. 2차시에는 학생 개인과제 및 모둠 과제를 소개했다. 개인별로 포스터,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모둠별로는 PPT 만들기, 화이트보드를 활용한 협업 과제를 소개했다.
전문적학습공동체) 캔바 연수 자료
선생님들에게 연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직접 수업을 구상하고 실천했어야 했다. 실제로 해봐야 어떤 점이 어렵고, 어느 부분을 강조해야 하고, 어떤 안내가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에서 직접 활용했다.
교과) 반의어 탐구생활 마인드맵 제작하기 활동
창체동아리 [스마트디자인반]을 개설하여 캔바 사용법을 집중적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학교를 다닐 때 PPT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서러움을 아이들이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창체동아리) 스마트디자인반
개인 역량을 위해, 수업 활용을 위해 캔바를 비롯한 다양한 에듀테크를 배우고 있다. 직업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다른 연수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배우려고 한다. 배움이 확장되고 깊어질수록, 아이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아이들과 관계 맺기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마주하기 두려울 때가 있다. 가끔은 조회시간에 들어가는 게 너무 긴장돼 배가 아팠던 적이 있다. 30명 넘는 아이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더 경직되고 말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아침이라 비몽사몽 해서라는 생각으로 넘겼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한 책에서 내 문제점을 마주하게 되었다.
루이스 코졸리노의 <애착 교실> 책의 제목에 이끌렸고, 내용을 읽어보니 아이들과 애착, 즉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교실에서 교사는 가정의 부모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데, 학생은 말의 내용보다 교사가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수업 참여도가 달라진다는데. <금쪽같은 내새끼>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님의 쓴소리를 듣는 듯했다.
몸에 좋은 약이 몸에 쓰다고 하니, 책을 다 읽고 꼭 실천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높임말 학급 문화를 소개하는 선생님의 글을 보았다. 관계 맺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따르고 싶은 선생님, 시간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선생님, 누구보다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준 선생님은 분명 삶의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 내가 되고 싶은 교사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 선생님께 하소연하듯 댓글을 남겼는데, 장문의 대댓글을 남겨주셨다. 늘품샘, 같은 학교였으면 제가 지독하게 따라다녀서 신물이 나셨을 겁니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아이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많은 영감을 주신 선생님이다.
커리어라는 말은 교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커리어라고 하면 한 직장에서 몸을 불태우고 다른 직장으로 연봉을 올려 이직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교직에서는 경력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저경력에서 허우적대는 지금, 즐겁다.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