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게 익숙하지는 않습니다. 남들에게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면 혹시나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부담감도 내려놔야겠죠? 누구나 모든 걸 잘하지는 않으니까요. 또 언제까지나 못하는 것을 잘하는 척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처럼 남에게 들키면 부끄러운 분야도 있지만, 남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서툰 면이 있습니다. 바로 그림입니다. 초등학생 때는 앉아서 그림을 자주 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뾰족한 산을 그리고, 좁은 시냇물을 그리고, 모서리에 해를 그리고, 잔잔한 구름 서너 개를 넣고, 오두막과 나무를 만듭니다. 군데군데 풀도 심어주고요. 그렇게 A4용지를 채우고 나면 배산임수 형태의 그림이 완성됩니다. 늘 어떤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의 이상향 같은 곳입니다. 안타깝게도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요즘은 그림 그릴 일이 자주 없지만, 수업 중 설명을 위해 간혹 변변찮은 실력을 선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체기관 눈이나 달리는 말, 나무의 뿌리와 가지 등을 그릴 때면 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웃기려고 의도한 건 아닌데, 아이들이 웃어주니 나름 뿌듯합니다.
부족한 그림 실력을 선보이는 일이 왠지 모르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 풍경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대견하고, 찬찬히 그린 그림을 살펴보고 감상하다 보면 세상에서 유일한 작품이라는 생각까지도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망상이 조금 과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최근 드로잉을 해보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림 실력이 부족한 걸 알기에 재밌게 배워보고자 했습니다. 준비물도 챙겼고요. 줌으로 설명을 듣고 혼자 실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머리로 그리기와 손으로 그리기의 차이를 알아가고, 독특한 방법으로 두 번 그림을 그렸습니다.
첫째는 주로 사용하는 손의 반대로 그림 그리기, 둘째는 종이를 보지 않고 그림 그리기입니다. 두 방식 모두 낯설고 서툰 방식으로 그림을 완성시켜 나가기 위함 같습니다. 두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봤습니다. 무엇을 그린 것 같나요?
바로 물컵과 그 뒤를 지나는 노트북 선입니다. 물컵만 그리자니 물컵을 관통하는 듯한 노트북 선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서툰 분야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분야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면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비교적 능숙한 것, 잘하는 분야. 그렇게 저마다 삐죽삐죽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