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간의 글쓰기 여정> DAY 24 산책
DAY 24 산책_최근 인상 깊었던 산책 장면에 대해 써보세요.
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균형 잡힌 식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급식이 있는데도 도시락을 챙긴다. 너무 맛있어서 과식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는 턱선이 날렵했는데 한 해가 지나고 나니 토실토실해졌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니, 급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거라고요!
예전에는 급식을 먹고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없다면 선생님들과 교정을 산책했다. 슬슬 걸으며 학교의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제는 도시락을 싸들고 자리에서 먹으니 교무실을 나가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게 귀찮아졌다. 창밖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산책을 시작했다.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하는 실무사님께서 산책을 나가자고 하셨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 나갈지 말지 망설이던 찰나에 반가운 말씀이었다. 실무사님, 예전 모시던 부장님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사람은 당황하거나 화가 나면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붉게 푸르게 변한다지만, 나무는 아니다. 한 자리에서 사시사철 묵묵히 우리를 지켜봤다는 듯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을 잎으로 표현한다. 나무의 진심이 우러나온 가을의 풍경은 꽤 근사하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후끈한 야구 한국시리즈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선후배 상관없이 글러브와 공을 가지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상대방이 빠른 속도를 좋아하면 실력껏 던지고, 상대방이 느린 속도를 선호하면 배려하는 마음을 담아 던진다.
어떤 열매인지 몰라 부장님께 여쭤봤다. 산수유라고 하셨고, 옆을 지나가던 교감 선생님께서 산수유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가셨다. 어른들은 꽃과 열매만 보고도 이름을 맞힐 수 있으며, 자라는 줄기의 모습을 보고도 어디가 불편하겠거니 심정을 헤아린다. 참으로 신기하다.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급식실 앞 작은 공간에 고추와 가지, 호박을 심으셨다. 노란 호박꽃이 피었다.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는 모습을 오랜만에 관찰하게 되었다. 저런 가는 호박이 통통하게 살을 찌울 때면 꽃은 말라비틀어져 있겠지. 꺼끌꺼끌한 호박잎에 밥을 싸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름다운 꽃을 가졌고 열매와 잎을 모두 주는 호박에게 약간 미안해졌다.
천수국과 산국이라는 꽃이다. 눈과 코, 모두를 즐겁게 하는 이들을 보자니 돗자리를 펴고 싶어졌다. 꽃이 가득한 곳에서 돗자리를 펴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이때 닭강정이 빠질 수 없지.
오랜만에 학교를 산책했다. 식후 계속 앉아 있는 것보다 10분, 20분이라도 걷고 들어오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겸사겸사 시작한 산책이었지만 나무의 진심도 보고, 결실의 신비로움도 경험했다. 그토록 바랐던 가을이 벌써 떠날 채비를 한다. 바람이 더 쌀쌀해졌다. 다음 주 오전 기온은 한 자릿수란다. 찰나 같은 가을이 지나가기 전 산책을 더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