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향한 작은 한 걸음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한국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이 났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부모님은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미국에서 처음 마주한 영어는 생소하고 무거운 벽처럼 느껴졌다. "Would you like to drink water?" 같은 간단한 문장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외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 영어 선생님은 나의 어설픈 영어를 듣고 말했다.
"너 같은 영어 실력으로 미국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은 어린 내게 충격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내가 영어를 배워 이곳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의문은 곧 도전이 되었다.
언어와 학문을 동시에 처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버거웠다. 학교에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덕분에 나와 비슷한 레벨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영어 외에도 다양한 과목들을 수강해야 했고, Social Studies, Science, Algebra 같은 수업들은 영어 단어 하나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과목의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영어로 된 교과서와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령 Social Studies 시간에는 역사와 지리를 배워야 했는데, ‘democracy(민주주의)’, ‘industrialization(산업화)’ 같은 단어들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몰랐다.
수업 시간 동안 나는 마치 강의가 다른 언어로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Science 수업에서는 더 복잡했다. “Photosynthesis(광합성)” 같은 전문 용어들은 머릿속에서 쉽게 연결되지 않았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가장 큰 난관은 Algebra(대수학) 수업이었다. 수학은 숫자로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영어로 된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였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문제의 지문을 이해해야 했고, 영어 독해가 안 되면 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그저 따라가기 급급했다.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채 공책에 낙서만 하던 날도 많았다.
ESL 수업에서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대만에서 온 친구였다. 영어는 우리 둘 다 서툴렀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오히려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매일 쉬는 시간마다 영어로 말장난을 하거나 몸짓으로 소통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손짓과 웃음으로 채워나가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게 고백을 해왔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음을 전한 친구를 보며 당황했지만, 나는 결국 거절했다. 우리의 우정이 소중했기에 조금 더 신중하고 싶었지만, 거절 후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서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거리감이 생긴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다시 학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여름방학 동안의 SUMMER 특강에 참가해 영어 실력을 더 키우려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친구들과는 출발점이 너무도 달랐다. 나는 여전히 단어의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이해해야 했지만, 그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교과 내용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친했던 대만 친구가 중학교를 1년 더 다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도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아... 나도 1년 꿇을 걸 그랬나?"
그때 나는 고등학교에서의 과목들이 너무 어려워 순간적으로 좌절감을 느꼈다. 새롭게 배워야 하는 English (영어), Biology(생물학), 그리고 Calculus(미적분) 같은 과목들은 단순히 영어 문제를 넘어섰다. 수업 내용도 복잡해졌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후회는 잠깐이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로 이루어진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언어와 학습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었지만, 노력하는 만큼 나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ESL 수업을 계속 들어야 했다. 나에게는 영어 수업이 두 개나 있는 셈이었다. 하나는 일반 영어 수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ESL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어 실력을 따라잡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수업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일반 영어 수업에서는 주로 소설과 시를 읽으며 분석하고, 글을 쓰는 것이 중심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부터 현대 단편소설까지, 그 당시 나에게는 난해한 단어와 복잡한 문장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은유와 상징을 분석하라’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그 질문을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한편, ESL 수업에서는 문법과 실용적인 영어 표현을 익히며 내가 놓치고 있는 기초를 보완하려 노력했다. ESL에서는 발음 연습, 단어 테스트, 일상 회화 등 실용적인 주제들이 다뤄졌지만, 반복적인 내용에 지치는 날도 많았다.
이중의 수업을 받는다는 것은 마치 기초와 고급 단계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ESL 수업이 안전한 피난처처럼 느껴졌다.
ESL에서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있었고, 실수를 해도 덜 부끄러웠다. 반면, 일반 영어 수업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영어가 서툰 학생처럼 느껴졌고, 수업 내내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고등학교 생활이 이어질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영어가 너무 어려워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벽처럼 느껴졌고, 매일 공부하는 것에 점점 의욕을 잃어갔다.
그때 내게 유일한 위안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방과 후 집에 오면 나는 책 대신 애니메이션을 틀고 앉아 하루 종일 그것에 빠져 지냈다. 일본어는 전혀 몰랐지만, 애니 속 대사를 들으면서 한국어 자막을 읽는 것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일본어 소리와 의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매일 듣다 보니 귀가 열렸던 걸까? 재미로 보던 애니가 어느새 나에게 언어의 패턴을 익히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ESL 수업에 있는 일본인 친구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아듣게 된 것이 놀라웠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연스럽게 익힌 단어들이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일본인 친구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들리는 게 맞는 걸까?"
하지만 그 신기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언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친구들과 진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수많은 걱정이 스쳤다.
"내가 괜히 말 걸었다가 틀리면 어떡하지?"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언어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동안 영어를 공부하면서도 항상 실수할까 두려워 주저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몇 마디만이라도 전한다면, 그 순간이 첫 소통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일본어로 배운 몇 마디를 꺼내 보았다. "おはよう (오하요 –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자 그들은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 밖의 따뜻한 반응에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언어는 완벽해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