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확립하는 것,
나의 욕구가 세상의 흐름과 어긋나지 않는 상태, 이 둘이 서로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어우러져 가는 지점에 도달하는 데 있어 가장 현실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 책은 말한다. 그것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 구절이기도 하고,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자기감정 인식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감정 인식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거의 대부분은 뇌과학적 실험과 최신 뇌과학 연구결과에 대한 최신 이론 및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갖는 반전이고, 나름 나에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자발적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보이지 않는 틀을 관조하며 진정한 자기를 되찾아 돌보는 시간을 통해 타인과 적정 거리에 건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알고, 그것을 실천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해서 이처럼 뇌과학적 지식으로 알지 못했다.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개인적인 관조가 사회에 얼마나 변화를 이끌며, 그것의 영향력에 대해서 개인적인 취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할까? 그러나 이 책에서는 나의 감정을 인식하고 나를 관조하는 일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일임을 최신 뇌과학 이론으로 과학자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과학적 이론들의 비밀의 문들을 하나씩 하나씩 열어줌으로써 내가 하려고 하는 이 일이 얼마나 합리적이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뇌의 [측두-두정 접합부]에 대한 생소함이랄까?에서 출발했다.
TPJ라 하는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었는데, 이것은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측두엽, 촉각 정보를 처리하는 두정엽, 시간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이 만나는 경계선에 위치하면서 외부 환경에서 오는 시각, 청각, 촉각 정보를 공유하면서 행위 주체감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한다. 내가 뭔가 행동을 할 때, 나의 시각, 청각, 촉각의 정보를 통합하여 그 주체가 바로 "나"라고 하는 인식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의 뇌에 어떤 한 부분이 그 세 영역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통합하여 "나"라는 인식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놀라웠다. 물론 나라는 인식은 TPJ와 같은 이런 외부감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만 않는다. 나라는 "자기감"은 외부감각 신호(TPJ)와 함께, 내부감각신호(뇌섬엽)를 통해서 형성된다.
책의 초반부는 고무손 실험으로 시작한다. 처음에 실험 자체의 생소함으로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짜 고무손을 마치 자기 손처럼 느끼는 착시를 더 많이 보이는 사람은 내부 감각 신호보다 외부감각 신호에 의존하는 사람이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저자가 책의 초반부에서는 고무손 실험을 제시했는지, 이 실험을 통해서 마지막에 내릴 결론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외부감각 신호에 기초한 가지 감보다 내적 감각 신호에 더 민감해야 할 이유를 하나씩 하나씩 설명해가면서 마지막에 자기감정 인식을 살짝 던지고 여운을 남기고 마무리한 저자의 의도, 저자의 성격까지도 혼자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처럼 힘을 쫘악 빼고 이론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을 볼 때, 저자 김학진 교수님(고려대 심리학)은 평상시에 관조의 힘(?)을 키우려고 노력하시고, 실천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뇌과학에 대한 이론들 중에 꼭 알아야 하는 몇몇 용어와 기능들이 있어서 정리해 본다.
우리의 뇌는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가장 최적화되었다. 그러한 뇌의 최적화된 기능을 "알로스테시스"라 부른다.
알로스테시스: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효율적으로 예측, 예방하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환경을 활용하는 생체 기능으로, 신체 항상성이 깨지는 것(불균형) 감지되면 그때서야 움직여서 복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서 미리미리 더 효율적으로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매우 정교화고 복잡하게 움직인다. 그러한 알로스테시스의 기능들로 인해 우리들은 이 험난한 세상에 자신들이 원하고 소망하는 삶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알로스테시스가 너무 작동하면, 즉 알로스테시스의 과부하가 되면, 흔히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등등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알로스테시스는 우리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회피행동과 접근행동을 끊임없이 한다. 알로스테시스의 핵심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상"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보상은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최대한 일찍 예측해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사건으로, 우리뇌(알로스테시스)는 그러한 보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찾아내 학습하고 직관으로 저장한다.
그러한 직관들이 저장되어 있는 곳이 바로 복내측 전전두피질이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수많은 접근-회피 간 갈등의 해소 경험들이 누적되어 자동화된 직관적 가치들이 저장된 곳으로 편도체(부정적 정서)와 측핵(쾌감)에서 올라오는 정보(접근-회피)들을 중재하며, 최고의 생존전략 기술들을 저장한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오직 나에게만 의미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화폐의 저장소로, 자신의 경험들을 재료로 특정 대상의 신체 항상성 유지를 위한 효율성과 예측성, 영속성을 기준으로 기여도를 계산한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타인의 칭찬이나, 돈, 등등의 보상들을 생물학적 가치로 환산하여 판단한다.
문내측 전전두피질은, 살다 보면 복내 측 전전두피질에 저장되어온 직관적 가치들이 오류가 나타내거나, 충돌하여 수정이 필요할 때가 온다. 그때 사용되는 부분이 바로 문내측 전전두피질이다.
문내측 전전두피질은 신체 내부 신호와 외부 환경 신호간의 균형점을 유지하는 알로스테시스 기능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데, 문내측 전전두피질은 타인보다 자기 자신 혹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타인을 생각할 때 신호가 증가하는 자기 참조 영역이며 외부 자극에 집중할 때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휴식 중에 신호가 증가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핵심 영역이다. 아울러 자율신경계의 효율적 조절을 반영하는 심박변이도와도 밀접하기도 하다.
이러한 문내 측 전전두피질은 외부 환경에서 벗어나 신체 내부에 집중하는데 필요한 신경회로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위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외부 환경에서 주의를 거두어 내면으로 돌릴 때,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그리고 자율신경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려고 편도체와 소통할 때 공통적으로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활동이 증가한다. 그러므로 격한 감정을 유발하는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 균형점을 회복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외부환경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단절 상황에서 자기감정과 신체에 오롯이 집중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이런 시간은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복잡한 외부 환경 자극들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중요하지 않은지 신체 신호를 기준으로 정리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재미있는 내용중에 하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정보를 처리하는데 각기 다른 신경학적 회로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엄마가 자녀를 판단할 때는 자신을 판단할때 사용하는 뇌영역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엄마들이 왜 그렇게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하는지 신경학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엄마의 뇌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놀라운 모성애를 가능케 하기도 하지만, 때론, 이점이 자녀를 구속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수도 있다. 자녀의 문제를 마치 자신의 문제처럼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자녀 중심적으로 행동하거나 자녀의 사생활까지 통제하거나 자신이 갖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만큼은 아쉬워하지 않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정욕구"...이것만큼 끈질기고 질기디 질긴 것이 있을까 싶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신체 항상성 유지를 위해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이러한 타인(사회)에 대한 인정욕구를 기반한다. 이러한 점에서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과 무관하게 진정 내가 원하고 즐기는 바를 순수하게 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타고난 본성은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그 본질과 다르게 변화하고 왜곡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타인의 기대를 기대하거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아닌지?
내 행동과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그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인정욕구"에 대해 깊이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자신을 이해하는 데 굉장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행복은 찰나의 경험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절제의 시간을 오래도록 쌓는 노력일 수밖에 없다. 행복은 그 경험을 향해 다가갈수록 도리어 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단념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어깨를 잡아채며 느닷없이 선물처럼 안긴다."(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