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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누구에게나 지면은 필요하다.

by 박진영

2024.12.1. 일.


누구에게나 지면은 필요하다.

이렇다 할 나만의 지면을 가진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틈틈이 쓰고 또 올려왔었다. 최초의 기억은 중학생 때 시작했던 블로그이고, 그곳에 나 스스로도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마구잡이로 써 나갔던 것 같다. 그때 시작한 것이 전공까지 이어졌고, 대학원까지 가게 됐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 동안은 습관처럼, 또 의무감에 뭔가를 읽고 써왔었다. 그리고 올초에 나는 학교를 떠났고, 운이 좋게도 바로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이 된 후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쓰고 읽는 일을 멈추었다. 그만두지는 않았다. 그만두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실상 그만둔 것과 다른 것은 없었다. 쓰지 않고, 읽고 있지 않았으니까. 나에겐 의무적으로 써 내려가야 할 어떤 과제도 없었고, 어딘가 나의 글을 원하는 지면도 없었다. 일을 하고, 또 생활을 이어나가다 보면 하루는 넘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는 지나간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지고, 무언가 해내려는 열망 없이도 해는 넘어간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스터디는 있었지만, 이래저래 일 년 가까이 내 소설을 내지 않고 시간이 흘러갔다. 일 년이 그렇게 흘러갔다는 게 신기하다. 비참하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마음은 아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갈 수 있음이 신기하다. 물론 이런 해가 거듭되면 어느 순간 비참해질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 없이 산다고, 글을 쓰지 않고 산다고 모두가 비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은 비참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쓰지 않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때, 다시 쓰게 될 거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때는 그 말을 흘려들었는데, 쓰지 않고 한 해를 거의 다 보내고 나를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는 나는 아니다. 혹시 누군가 바라는 나 또한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나 써야 한다, 누구나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삶의 방식이지 생의 필수요소는 아니다. 읽지 않고 쓰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실격되는 것도 아니다. 실격에는 각자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쓰고 읽는 것이다. 세상 읽고, 세상을 쓰는 것. 나를 읽고, 나를 쓰는 것. 세상을 잘 읽는 것, 세상을 잘 쓰는 것.


삶에 치이다가도 멈춰서 무언가를 읽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내가 읽어야 하는 것은 책뿐만이 아니다. 텍스트는 책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텍스트가 있다. 보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르다.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 또한 다르다. 생각 없이 살아도 살아는 진다. 하지만 살아온 삶이 무척이나 짧게 느껴질 것 같다. 인간이 감각하는 세상과 삶에도 해상도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온전히 보려고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해상도는 다를 것이다. 결국에는 초점의 문제다. 초점을 맞추는 데에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를 것이고, 초점을 어느 어느 곳에 뒀었는지에 따라 같은 시간을 살아도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쓰고 읽는 것은, 삶을 향유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삶의 형식이기도 하다. 나는 오랜 시간 그것을 내 삶의 방식으로 선택해 왔고, 나는 올 한 해 동안 그것을 놓고 살았다. 물론 모든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만나는 것들이 많이 있었고, 처음 살아간 시간들 또한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것은 반복되고, 또 어떤 것은 다시 찾아오고, 그렇게 계속 굴러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세상의 끝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또 삶의 어떤 부분들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 삶을 논할 때는 역시 죽음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죽는 것을 고민할 때, 잘 살아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두가 각자의 지면을 가졌으면 한다. 단순히 짧은 토막글로, 본인의 순간적인 감정들로 채워진 언어가 아니라, 조금 길게 써나가고, 또 고민해 나가는 지면이, 또 그런 지면들을 읽어나가는 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백지를 바라보는 시간 동안 우리의 생각이 정리가 되었으면, 감정들이 조금은 다듬어졌으면,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찾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쓰려고, 어떻게든 읽으려고 가을에서 겨울 동안 힘을 썼다. 비록 많이 읽지 못하고, 많이 쓰지 못했지만, 그래야겠다는 마음만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고 더 많은 것을 고민할 수 있었다.

지난여름, 6월에, 어디에든 무언가를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브런치를 신청했다. 한 달이 지난 7월쯤 써보려고 하다가, 좀처럼 말이 떨어지지 않아 쓰지 못했다. 그리고 12월이 되어서야 첫 글을 남긴다. 단순히 낙서를 하는 노트로 사용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지면이 필요하다는 건, 단순히 낙서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읽을지도 모르는 어떤 발표지면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군가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성실하지 못하게 된다. 쓰지 않게 된다. 그런 건 일기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일기 이상을 쓰고 싶다.


살면서 발견하는 어떤 지점들을 읽어내고, 또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 그 문장들이 의미가 생길 수 있을까. 확신은 서지 않지만,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싶다. 다음 글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글이 될 수 있는 생각들을 적어나가 보고 싶다. 이곳에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은 여섯 달이 걸렸지만, 정작 이 글을 써내는 시간은 삼십 분뿐이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늘 시작이 어렵다. 첫 번째 스파크가 어렵다.


시작해 보겠다.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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