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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화

by 박진영



세상에게 거는 기대가 크지 않기 때문에,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쉽게 감동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삶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비겁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대를 걸어보고, 그래서 실망도 해보고, 쉽게 감동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기대를 세상에게, 또 사람에게 걸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방식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좀 더 나은 사람을 바라보는 게 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나는 쉽게 감정적이다. 마음이 좋은 날에는 기대를 하고 싶다가도, 마음이 나쁜 날에는 역시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날씨를 타기 이전에, 사람 자체적으로 각자 날씨를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 오늘 왜 이렇게 저기압이냐고 묻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날씨와 각자의 기압을 가지고 있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 역시 감정적인 사람이다. 감정은 오류를 낳지만, 순간의 진실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후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의 판단이 옳았다/틀렸다 는 해석이 나오더라도 그건 그 순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찾아낸 진실이지, 그 순간의 진실이 아니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에는 그것이 옳았고/틀렸고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순간은 영원하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세상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면서 바라본다. 무리에 섞여 있어도 어느 순간 대화하고 싶은 상대가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될 때, 쓸쓸함을 느낀다. 쓸쓸함을 느끼면 집에 돌아오고 싶어진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나 자신과의 대화이다. 그 누군가와도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간절히 나 자신과 대화하고 싶어진다.


해가 저물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듯, 나도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아쉽게도 나에게 자아는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고, 내려놓기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슬픈 일이면서 동시에 다행인 일이다. 나는 결코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볼 수 없고, 나는 결코 나 자신을 버릴 수 없으며, 나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자살도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행할 수 있는 행위다. 내 삶을 절실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고통을 느낄 수도 없거니와, 그런 초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도 없다. 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함께 떠나는 것이다. 내가 떠나는 날에도 나는 나와 함께 한다.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단지 쓸쓸함을 느낄 뿐이다. 그럴 때는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 어떤 날에는 '나'를 위로해야 할 때가 있고, '나'를 다그쳐야 할 때도 있으며, '나'를 사랑해줘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에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 쓸쓸함이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에는 다시 '나'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시인은 책상에서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한 시인이 말한 적이 있다.

책상은 말을 고르는 곳이고, 문장을 정리하는 곳이며, 시인은 걸으면서 시를 쓴다고 말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의미와 맥락은 비슷했던 것 같다. '나' 자신과 대화를 하더라도, 대화할 거리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것을 보고, 또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느끼고 난 후에 나는 나에게 다시 돌아와 나를 마주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대화하는 일이 막막하고 또 두려워질 정도로 대화를 피하지는 말자.


쓰기는 나와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다. 생각은 쉽게 휘발되지만, 그것을 문자로 적어놓으면 그것은 남아 다시 복기된다. 앞문장이 뒷문장과 대화를 나누고, 앞문단이 뒷문단과 대화를 나눈다. 쓰면서 틀렸음을 알게 되는 건, 어떤 순간의 나와 다른 순간의 내가 만나는 순간이다. 나와의 대화에서는 작은 불꽃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나를 지지하며 앞으로 밀기도 하고, 나를 부정하며 뒤로 밀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로 치매를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생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삶과 생은 다르다. 둘 다 거창한 말이지만, 생활과 삶이 다르듯, 그 둘도 그렇다.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렇게 쉽게 휘둘리고 또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우리가 똑똑해졌다고 생각하지만, 훨씬 멍청해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를 잃어가고 있다. 잊어가고 있다. 타인의 말을 통해 생각조차 외주를 맡기고 있는 모습을 나는 자주 목격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나/시간을 온전히 마주하는 방법은 거울도, 타인도 아니라 오로지 백지다. 소리를 내어야 한다.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 안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내 방법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나의 방식이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게 거는 기대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많은 것을 기대할 것이다. 계속해서 실망하고, 계속해서 더 큰 것을 기대할 것이다. 크게 기대하기 때문에 감동할 일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래야 한다. 적당한 두께의 쓸쓸함을 가져야 한다. 내가 나로 돌아와 나를 보살필 시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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