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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람들 - 1

by 박진영


좋은사람들은 내가 사는 빌라 이야기다. 아무래도 이곳의 이야기는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서 숫자를 달았다. 이곳은 내 다섯 번째 집이다.


'좋은사람들'은 내가 사는 빌라 이야기다. 아무래도 이곳의 이야기는 더 하게 될 것 같아서 숫자를 달았다. 이곳은 내 다섯 번째 집이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장성의 시골집이 첫 번째고, 스물 하나에 자취를 했던 집이 두 번째다. 그 사이에 잠시 안산에 머물 때 살았던 고시원이 있는데, 그건 집이라고 할 수 없다. 그곳은 내가 잠시 갇혔던 공간으로 회상하곤 하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 뻔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라 굳이 그것을 이야기하는 데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굳이 그것을 이야기하는 데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이건 요새 내 생활과 시간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패턴이다. 그리고 요새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튼 세 번째 집은 그냥 두 번째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모험처럼 떠나본 집이다. 어차피 월세를 살던 때라 굳이 한 곳에 오래 머물 필요도 없었다.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사람은 월세를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재력이 충분한 것도, 떠도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 돈도 나가지 않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전세를 택해서 살고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살게 된 네 번째 집이 전셋집이었다. 학부 3~4학년과 대학원 시절을 보냈던 집.


살았던 집에 대해 떠올려보니 할 말도, 기억하고 싶은 일들도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집의 이름은 앞선 순서대로 각각 태양빌, 정광하이빌, 푸른빌라다. 첫 번째 집은 시골에 있는 단독주택이었던 터라 이름은 없다. 그냥 '덕골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섯 번째 집이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좋은사람들'이라는 빌라다.


광주에 있는 건물에, 광주에서도 외진 위치라 전세 사천에 제법 넓고 편하게 살고 있는 집이다. 사치스럽게도 함께 사는 사람과 같은 층에 두 개의 방에 전세를 놓고 살고 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에는 내가 자취하면서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좋았던 집이라 제법 신났었다. 하지만 이 집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제법 흥미로운 문제들이 있다.


흥미로운 것, 에 그치는 것은 그 문제들이 아직 내 삶을 침투해 들어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윗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경찰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성격이 완만하고 소심한 탓에, 범법은 당연히 삼가하고 위험한 곳이나 문제가 있을만한 장소에는 가지 않고 사건에도 참견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위층의 소음은 조금 결이 다르다.


가장 먼저 경찰을 부른 건 내가 아니라 함께 사는 여자친구였다. 위층의 소음은 다툼인데, 아마 남녀 연인이 사는 것 같다. 뭔가 집어던지는 소리, 쿵쿵 뭔가를 때리거나 부수는 듯한 소리. 그리고 남자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 이게 층간으로 전해져 오는 주요한 소리다. 그 소리가 제법 크고 살벌한 탓에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위층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가령 폭행사건이나 살인사건 같은 게 벌어질까 봐 걱정했었다. 가장 발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한 건 여자친구였는데, 경찰에 위층을 신고한 것이었다.


내가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신고 현장을 처음 맞아본 터라 반쯤은 긴장하고, 반쯤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경찰을 기다렸다. 창문너머로 빨갛고 파란 불빛이 깜빡였고 경찰이 왔다며 조금 흥분한 투로 귀를 기울였다. 머지않아 위층은 조용해졌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신고자에게 연락해 어떻게 조치했는지 알려준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괜히 위층이 경찰과 통화하는 우리의 소리를 듣고, '아래층이 신고했구나'하고 알아 해코지라도 할까 봐 나름 긴장했다. 나는 이렇게 쫄보다.


그렇게 일이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경찰이 가자마자 싸움은 다시 시작했고, 다른 날들도 빈번히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자친구는 두 번쯤 더 신고하다가, 이번에는 나에게 하라고 했다. 세 번쯤 출동한 경찰이 심드렁하게 사건을 처리하기도 했고, 계속 같은 번호가 찍히는 것도 좀 걸렸던 모양이다. (그 사이에 아래층인지 위층인지 누가 몇 번 더 신고해서 경찰이 오기도 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112를 눌러 우리 집 주소를 말하고 경찰에게 위층의 상황을 전달했다. 경과는 비슷했다. 몇 분 뒤 경찰이 오고, 위층은 잠시 조용해지고, 경찰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안 싸울 겁니다. 여자분도 괜찮다고 하네요.'


이제 안 싸우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어젯밤에 싸우는 소리를 들었던 나다. 그래도 요새는 경찰에 신고까지는 하지 않는다. '계속 신고를 해줘야 안 싸운다'라고 주장하던 여자친구도 더 이상 신고하지 않는다. 경찰의 조치가 속 시원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넌지시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싸움이 소리만 클 뿐 경찰에 신고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왜 싸우는지, 어떤 대화를 하는지 다 들을 수는 없지만 가끔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윗집 대화가 들린다. 주로 여자 쪽이 남자 쪽의 화를 돋우고 남자 쪽이 의문을 제기한다. 놀랍게도 물건을 던지거나 내려치는 쪽은 여자다. 남자는 말로하라며 항의한다. 여자는 멈추지 않고, 남자는 화가 나 고함을 지른다. 물론 뭔발 뭔년하는 욕도 함께 섞어준다.


저렇게까지 싸우면서 왜 헤어지지 않을까, 하고 여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쪽과 직접 대화를 해본 것도 아니고, 싸움의 구체적인 이유를 들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상상이다. 나는 둘은 어쩌면 같은 보육원 출신일지도 모른다, 지원자금이나 함께 모은 자금으로 전세를 구해서 주거 쪽으로 서로 묶여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냈다. 여자 쪽이든 남자 쪽이든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줬고, 그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헤어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견도 냈다. 주로 상상하는 쪽은 나였는데, 주로 경제적인 이유 밖에는 상상이 안 됐다.


그러니까, 감정적으로는, 사랑이라는 말만으로는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여자친구가 나에게 따지듯 한 어떤 말 때문이었는데, 그 말은 이거다. 너는 속으로 서운한 것이나 화가 나는 게 있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게 답답하다. 외롭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렇게 살아왔다. 굳이 말을 해서 득 볼 것이 없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말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간다. 그렇게 대부분의 문제를 무난히 지나왔고, 해결이라고 할 수 없었던 때도 있겠지만 잘 마무리하며 살아왔다. 식당이든, 어떤 업체든, 불만 사항이 있어도 잘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계속 컴플레인을 하면서도 그 가게를 찾지만, 또 어떤 이는 앞에서는 아무런 컴플레인도 없고 '잘 먹었습니다' 정도로 대답하지만 다시는 그 가게를, 찾아오지 않는다. 조용히 사라진다. 그게 나다. 나는 어쩌면 관계에 있어서도 계속 그렇게 대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 이후에 위층의 싸움을 생각해 보니, 또 전혀 다른 생각이 났다.

그 누가, 서로를 위해, 저렇게 의견을 피력하며 싸워줄까.


어쩌면 저 둘은 각자 싸워줄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여자가 남자의 화를 돋았을 때, 남자가 조용히 듣기만 했다면 여자는 남자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고함을 질렀을 때, 여자가 남자에게 응수할 수 없었다면 여자는 두려워 남자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그러한 싸움이 둘의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끈끈히 묶어주는, 또 서로를 더 긴밀히 연결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또한 내 상상이다. 언젠가 위층에서 유혈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반년 넘게 그런 일은 없었고, 둘은 가끔 손을 잡고 외출을 한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 왜 계속 만나냐, 불행에서 벗어나라, 는 식으로 말하겠지만... 그래, 사람도 쉽게 바꾸고 쉽게 이혼하고, 쉽게 손절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게 현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좌우지간 그런 관계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헤어지지 않고 함께하는 인연도, 유대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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