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이 함께 하는 모임이 있다. 네 명은 한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이고 나와 친구 한 명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전학을 왔다. 모두 결혼 후 서울에 와서 생활하게 되어서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가끔 여행을 떠나자고 말은 하지만 아이들 키우고 각자 살기 바빠서인지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함께 여행을 갔던 일들이 까마득하게 기억될 정도로 가지 못했다. 여섯 명 모두 가기가 쉽지 않으니 이번에는 갈 수 있는 사람만이라도 일단 떠나기로 했다. 두 명의 친구는 몸이 아프거나 집안 사정으로 함께 가지 못하고 네 명만 가기로 했다.
여행지는 강원도 고성으로 정했다. 반포 전철역에서 만나 과일과 라면 등 군것질거리를 사는 데도 모두가 깔깔거리며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신나 했다. 항상 지나다니는 터널인데도 ‘강원도는 터널 지나는 맛이지’하며 터널까지 소재로 수다를 멈출 줄 모르는 친구들 때문에 운전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가는 길에 회를 먹기 위해 동명항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 수산물 가게도 식당도 한가롭다. 북적거리며 사람 구경하는 맛도 있지만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음식 맛을 음미하면서 먹으니 더욱 맛이 좋다.
친구가 예약해둔 리조트에 들어서니 바다가 바로 코앞에 있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어느 방을 가든지 파도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것이 바로 바다와 내가 일심동체로 함께 있는 것처럼 가깝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커피는 경관이 멋있고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마시자고 한다. 호텔에서 주는 커피도 마다하고 바다정원이라는 까페에 갔다. 도착해보니 9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까페는 10시가 되어야 영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여기 와서 마시기 위해 서두르면서 누구 하나 시간 확인도 안 하고 왔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 ‘나이 먹었네’ 하며 그것조차도 아침부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까페는 이름 그대로 넓은 백사장과 바다를 정원으로 두고 각양각색의 꽃들과 소나무 숲을 까페로 사용하면서 커피와 음료수, 베이커리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멋지게 꾸며둔 곳이다. 한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주변도 돌아보고 사진도 찍었지만 이럴 때는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다음을 기약하고 우리는 고성에 있는 라벤다 정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도 방송에서 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장소로 보일 정도로 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 5월 말에서 6월이 되어야 꽃이 피고 축제도 그 기간에 한다고 한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왔으니 누구를 탓하랴! 뒤돌아 나오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가게로 향했다. 라벤다 꽃을 이용한 제품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향수와 비누도 구매하고 라벤다꽃이 그려진 모자를 써보며 위안해 본다. 다행스럽게 커피와 음료는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라벤다 꽃을 못 보고 가는 섭섭한 마음과 바다정원에서부터 마시지 못했던 커피라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달래지는 기분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송지호 관망 타워를 가보기로 했다. 관망 타워는 송지호에 날아드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생태학습관과 조류박제전시관, 송지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외전망대,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 타워 등을 갖추고 있다. 호수도 넓고 둘레길도 잘 되어 있어서 조금만 걸어 보기로 했다. 걷다 보니까 모두 기분이 좋아져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되돌아가기가 아쉬워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걷는 중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표시가 되어 있는 길을 따라 걷자 했더니 너무 멀다고 한다. 중간에 있는 길을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라며 그쪽으로 가자고 우긴다. 이럴 때 시골에서 살았던 배짱이 나온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길이 없다. 예전에는 길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한 친구가 앞장서 간다. 하지만 그 길은 온통 대나무 등이 덮어져 있어서 한 발자국도 디딜 수가 없다. 그럼 에도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면서 앞으로 당차게 전진을 한다. 가다가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뚫고 뚫어 논둑길로 내려선다. 험한 길을 지나면서도 언제 고생을 했냐는 듯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 수십 년을 잊고 지냈던 논둑길을 걸어 볼 수 있게 했다며 좋아한다. 어렸을 때 모내기를 할 때는 새참을 머리에 이고 갔던 일, 논에서 거머리에 물려서 혼비백산했던 일, 동생을 업고 엄마에게 젖 먹이러 갔던 일, 그 시절에는 아이들이 술 심부름을 했다. 그중에도 막걸리를 거의 날마다 사 와야 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어찌나 무섭던지 막걸리 주전자를 홀짝홀짝 마시며 다녔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논둑길을 언제 또 걸어보겠냐며 어렸을 적에 고향에서 살았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다. 논둑길로 오다 보니 또다시 길이 없다. 공사 하다 완공을 하지 않은 채 둔 길이라서 이정표가 없다. 다시 길을 찾아 헤매다가 제대로 된 길이 아닌 혼자서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찾아 나올 수 있었다. 혼자라면 무섭기도 하고 겁도 나고 힘들었을 테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길이라 즐겁게 추억거리를 또 한 페이지 만들었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냥 쉬다 오자고 떠났던 여행이라서 시행착오도 있었는데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발길 가는 데로 다니면서 실컷 웃고 떠들면서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듯 여유롭게 소꿉친구들과 함께한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줬다. 모두가 말한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이제부터 일 년에 적어도 두 번은 떠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