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호 Nov 19. 2024

사랑은 서로를 보듬을 때
진짜 사랑이다

부부란 무엇일까. 서로를 사랑하기로 맹세하고,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삶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처음의 설렘과 다짐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부부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등을 돌리기도 한다.      


어느 지역의 복지관에서 갈등을 겪는 부부들을 대상으로 10회기의 관계회복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마지막 회기에는 리마인드 웨딩과 같은 부부 사진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사진작가로서 이 촬영을 맡았다. 촬영장소로 가는 길, 내 마음은 복잡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배경지는 주로 1인 촬영용이었다. 배경지가 좁아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다 담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큰 배경지를 가져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1인 촬영용 배경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촬영 당일, 10쌍의 부부가 교육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먼저 촬영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부부 한 쌍당 15분씩 시간을 드릴 겁니다. 조명이 두 번 반짝이면 다른 포즈를 취해주세요. 멋진 포즈를 미리 생각해두시고 자연스럽게 행동해주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모두 어색한 미소만 띤 채 나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첫 번째 부부가 배경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불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자, 두 분 더 가까이 서주세요. 배경지 안으로 들어와야 사진이 예쁘게 나옵니다. 어깨를 붙여보세요. 아니면 남편분이 부인 뒤로 가셔서 안아보셔도 좋아요.”     

남편은 머뭇거리며 부인을 뒤에서 살짝 안았다. 순간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함이 화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조명이 두 번 반짝이면 다른 포즈로 바꿔주세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색하게 웃었고, 부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남편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다른 부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불편한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촬영이 진행될수록 어색함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카메라 셔터음과 조명 불빛 아래, 부부들은 점점 자연스러운 모습을 찾아갔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포옹하고, 손을 맞잡았다. 어느새 사진 촬영은 단순한 작업을 넘어, 서로의 벽을 허물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부부까지 촬영을 마쳤을 때, 나는 작은 뿌듯함을 느꼈다. 사진은 단순히 이미지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담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며칠 뒤, 복지관의 담당 사회복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한 부부가 교육 초반에는 이혼을 결심하고 온 상태였어요. 그런데 사진 촬영 후에 서로 다시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진을 찍으면서 스킨십도 하고, 웃다 보니 왜 함께 살기로 했는지 다시 떠올리게 됐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이렇게 깊이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랑은 서로를 보듬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사랑은 완벽한 순간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다시 손을 맞잡는 것이다. 때로는 좁은 배경지 안에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랑은 우리가 서로를 보듬을 때 그때야 비로소 진짜 사랑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