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평행성이라는 행성 하나가 있다. 지구와 아주 똑 닮은 행성이다. 그러나 닿을 수 없다. 평행. 평행이란 무엇일까. 천 년, 만 년, 억 년이 지나도 닿을 수 없는 것. 지구는 평행성을 꿈꾼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되고 만 년이 되어도 지구는 닿을 수 없는 곳, 그곳을 간절히 꿈꾼다. 운명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더라면 만날 수 있었을까. 펑하고 충돌해 활활 타오를지라도.. 그곳을 꿈꾼다. 아-주 간절히. 지구는 하루도 빠짐없이 평행성을 그리고 있는데 평행성은 그걸 알까. 지구는 안다.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 지구와 평행성은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평행성은 지구를 떠나 아주 멀리 우주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원래의 운명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평행성이 떠나기 전 날, 지구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외면한 것일까. 자신을 두고 떠나버릴 그 행성을 과연 외면하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미 떠날 걸 알고도 하나 된 것일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하나 되어도 하나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하나가 되었을까. 평행성은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렸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지구는 아직도 평행성을 사랑하고 있다. 가슴 깊숙이.
태양에서 세 번째로 가까운 행성은 이렇게 말했다. “평행성... 다시는 당신을 기억 속에서 꺼내지 않겠소.”
그 행성은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아파서 병들고 몸져누운 그날도 여전히 그 이의 생각을 하였다. 아프진 않았다. 기억마저 아프진 않았으니까. 그 행성은 절대 그이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그냥 그이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조용히 눈물을 훔칠 뿐 원망이란 없었다. 사랑의 끝이 어떻든 원망하면 안 된다 생각하였다.
지금 평행성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산산조각이 나 형체마저 사라졌을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는 사랑한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아-주 간절히.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존재를 사랑한다. 있길 바라며. 몇 억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구는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행성을 그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더디고도 빠르게 흘러가는 지구의 시간 속에서 그는 기억을 되살리며 하루하루를 버텨 왔다.
꺼내고 또 꺼내 닳고 해져버린 기억, 그 기억 속에는 평행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