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살아가는 방법에 관하여
몇 년 후, 저는 노자의 철학이 직관적으로 잘 표현된 책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전적으로 저에게만 그렇습니다. 책 내용은 노자와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물리학자 바딤젤란드가 쓴 러시아판 시크릿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노자의 사상을 제 인생의 가치관으로 채택했고 인생에 관해 제가 고민했던 수많은 철학적 주제들의 대부분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생각만으로 정리하는 것과 실제의 삶을 생각대로 적용시켜 사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실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으며, 이를 실제 삶에 적용시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만난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세계관은 제가 생각했던 개념들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되는지에 대해 상당히 문학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영혼과 마음의 일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설명드리고자 하는 "진짜 나"가 바로 리얼리티 트랜서핑에 등장하는 이 영혼이란 녀석입니다.
영혼은 무위 함으로써 만날 수 있는, 즉 인위적인 사상과 가치체계로부터 완벽히 벗어난,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직관적이고 자유분방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음"이라는 녀석도 존재하는데
이 친구는 우리의 의식적인 생각입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삶의 문제는 대게 이 영혼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합니다.
저 또한 그렀고요.
영혼과 마음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단연코 영혼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온갖 사회의 규칙과 규범들을 학습하고 배워온 덕분에
우리의 영혼이 외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눈치채셨겠지만
여러분이 처음 듣는 개념들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냥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다고 머리로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열정을 따르세요. 당신의 심장이 뛰는 일을 하세요. 여러분의 가슴이 외치는 일을 하십시오.
이런 글귀들 수백 번 수천번 읽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나서, 단 한 번이라도. 정말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주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냥 자기 자신의 본능대로 , 좀 더 과격해지자면 그냥 닥치는 대로, 그냥 내 X대로 살아본 적이 있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말입니다.
저는 노자를 접하고, 한번 진짜 내 X대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역하고 약 1년간을 미친 듯이 클럽을 다녔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제가 그렇게 사람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흥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 첫차를 타고 집 가는 길이면 그렇게 우울하기 짝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대책 없이 사는 내 인생이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밝히기 부끄러워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바로" " 이 부분 있죠? 이게 제 영혼과 마음이 외치는 목소리였습니다.
1. 제 영혼은 이게 진짜 내 욕구는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클럽 즉 새로운 이성들을 그렇게 탐닉했던 이유는,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인 결핍이 있었던 것이죠. 저는 외로웠던 겁니다. 제 진짜 욕구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였던 겁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제가 행복했던 시절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와 함께 섞여 있을 때였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축구하던 기억, 온갖 시답잖은 음담패설하면서 뛰놀던 기억, 군생활 하면서 낄낄 대던 기억, 선후임들이랑 같이 운동하던 기억 등등 말이죠.
그리고 생각해 보면 저는 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유치원 때 앞에 나가서 장기자랑을 하겠다며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 때 축제 준비를 하면서 친구들과 다 같이 춤추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다분히 즉흥적이면서도 과격한 농담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감수성 짙은 글들을 적어놓은 공책들도 있습니다.
2. 한편으로는, 클럽을 다니는 일이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제 마음은 클럽 다니는 나 자신을 매몰차게 타박하고 있었습니다. 인위적인 가치체제에 편승하고 있는 이 마음이라는 녀석은 끊임없이 '사회적 규칙, 사상'을 영혼에게 주입시킵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라고 강요합니다. 지금 이렇게 팽팽 놀 때가 아니고, 취업준비할 때이지 않느냐고, 너 미친놈 아니냐고 질책하고 부정합니다.
만약 제가, 저 때 영혼과 마음의 소리를 읽을 줄 알았다면, 제 인생은 한결 잘 풀렸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저 당시까지만 해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 와서야 비로소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예술적 감수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무리, 마음이 나의 영혼을 가두려고 해도, 절대 우리의 타고난 영혼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영혼은 그 자체로 의지를 가지고 있거든요. 영혼의 목소리를 무시하면 삶의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저는 이때의 경험 이후로,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하여 20대 내내 저를 괴롭혔던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점차 잠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알 수 없이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알 수 없이 저는 항상 우울했거든요. 객관적인 삶의 환경이 나아진 상태에서도 이유 없이 늘 무기력하고 피곤하고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했습니다. 제 영혼이 춤추도록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이건 절대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잘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의지가 고개를 들어 영혼을 통제하려 들 때를 잘 포착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새 글을 씁니다. 저는 특정 주제에 관하여 하루종일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고, 통제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건 깜빡 하는 건 그냥 일상이고요, 저는 10년 넘게 산 저희 집 앞 식당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 할 정도로 일상 속에서 마저 어떤 생각에 빠져 지내는 일이 상당히 빈번합니다. 저는 어릴 때에도 장난감이 따로 필요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원숭이 애착인형 한 마리만 있으면 상상 속에서 몇 시간이고 그 애착인형을 데리고 놀 수 있었거든요. '상상'하고, '생각' 하는 것은 저의 특기이자 취미입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 서술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