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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위 Sep 03. 2024

지금 내 시간은 03시 14분 (2)

도덕경과 함께 걸은 20대 청춘기

오늘도 클럽에 왔다. 홍대 9번 출구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온갖 향수 냄새가 뒤섞여 내 말초신경을 슬슬 간질이기 시작한다. 까맣게 탄 피부 위로 새겨진 타투가, 형형색색 물든 여러 색깔의 마포자루가 흔들리며 줄 서있다. 까맣게 친구가 기다리는 상상마당 앞으로 갔다. 친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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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안을 괜스레 쓱 한번 훑어보면서 오늘도 한번 들이대볼 여자가 있나 간을 본다. 새벽 2~3시가 되면 온갖 사람으로 스테이지가 가득 차버린다. 앞다투어 여자의 뒷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이 보이지 않는 어깨싸움을 벌인다.     


클럽에 올 때마다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항상 혼자온다. 마른 몸집에 키도 작다. 안경을 꼈고 매우 평범한 모양새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파를 훑어내는 그의 곁눈질과 몸짓은 내가 중딩 때 매점 앞 구석탱이에서 몰래 담배를 양아치스럽게 목을 쭉 내밀고 빨아대던 형들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게 뭔가 양 끼 있는 모양새로 이 여자 저 여자 탐색한다. 상당히 본능적이고 전략적이다. 음흉스럽게 이쪽 애한테 붙었다가, 거절당하면 바로 다음 사람으로. 다음 사람으로. 

    

내 모습도 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딱 봐도 친구랑 놀러 온 것 같은 사람들은 시선에서 거둔다. 너무 키가 크고 세 보이는 사람도 뭔가 무섭다. 적당히 취해서 살금살금 흔들고 있는 사람. 그런 뒤태를 목격하면, 그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최대한 일단 가까이 붙어본다. 슬금슬금 흔드는 몸 위로 잠깐 잠깐 몸이 맞닿는 순간의 반응을 살피다가 그렇게 점점 두 육체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러다가 내 손이 그 사람의 골반 위에 올라가도 될 만큼 서로의 마음의 합의가 도달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귓바퀴를 지그시 눌러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해본다. 사실 나도 관심 없고, 너도 관심 없는 얘기다. 대화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다.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추게 되는 순간에 도달해야 내 갈증이 풀린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나 그 사람이나, 그 이상의 뭔가를 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을 떠나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하고, 서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그렇다 쳐도,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일은 내게는 너무 큰 노동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나에게 충분한 정도로 뭔가라도 하는 날이면, 집에 돌아오는 길은 나쁘지 않았다. 오늘 하루 잘 즐겼다는 나름의 만족감과 충족감이 든든하게 했다. 그런 날이 한 달에 한두 번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노는 것이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한 두 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패배와 거절의 연속이었다. 내가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 재빠르게 내 이목구비를 구석구석 훑던 눈이, 다시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건조하게 던져낼 때, 부자연스럽게 구겨진 떨떠름한 웃음을 볼 때,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사라졌던 여자애가 내가 사준 진토닉 잔을 손에 든 채 다른 남자와 키스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     


이상하게 내 기억을 차지하는 것은 그런 기억들이다. 그런 기억에는 알 수 없는 쾌감이 있다. 나의 모습을 깎아내리는 것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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