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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위 Aug 27. 2024

지금 내 시간은 03시 14분

도덕경과 함께 걸은 20대 청춘기

침대에 누웠다. 방안에서 오늘도 가슴이 답답하다. 그만하고 싶다. 또 다시 상념이 몰려온다. 도대체 언제 이 상념의 끈질긴 발악을 끊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또다시 물밀듯이 밀려올 때 였다. ‘틱.....  틱.......’ 오늘 따라 시계 초침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려왔다. 어쩔 수 없이 시계를 향해 시선을 쏟아냈다. 지금 시간은 3시 14분이다. 3.14? 어디서 많이 본 숫자다. 너무 익숙하지만 불편한 이 숫자.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숫자의 행방을 밝혀내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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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밤바다               

여수밤바다          

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여수 밤바다.          

아... 아...     


장범준 목소리도 아련하게 같이 들려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두려움. 밤바다를 생각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두려움의 기억이 반사적으로 뇌리에 은근하게 스미기 시작한다.      

바닷물이 내 머리를 적시고, 피부를 적시고 혈관을 따라 움직이는 혈액마저 차갑게 잠식해가던 그 때의 기억,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조교들의 윽박지르는 소리에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의식이 꿈 깨듯 잠시 박동했다가 다시 아득해지기를 반복했다.      


밀물에는 내 젊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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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에는 나의 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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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절궈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암흑 너머의 랜턴 빛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들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이 사람이 살아는 있나, 기절했나 점검한다. 랜턴 빛에 적나라하게 비춰지는 하얗게 질린 얼굴들과, 푸르딩딩한 입술들을 앙다물고 버티던, 부릅뜬 눈들이 반짝인다. 부릅뜬 눈에는 수면을 갈구하는 혈액들로 실핏줄이 곤두서있다. 그리고 그 좁디 좁은 혈관 속에  스며든 혈액마저 숨막히게 잠식해오던 추위란 존재는, 정말 냉정했다. 무심했다. 우리를 죽이겠다는 의지란 것 조차 보이지 않아서 더 차가웠다. 거기에 저항하는, 정말 어리석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수 십개의 젊음이 약동하는. 지독히도 추웠던 포항 앞바다. 약전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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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에 완연하게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에도 알 수 없는 쾌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치 몇 시간을 공들여 세워 놓은 도미노를 한번쯤은 톡 하고 건드려 무너뜨려 보고 싶은 유혹. 그리고 끝끝내 유혹을 참지 못하고, 톡 하고 건드리는 것에서 모자라 시원하게 발로 뻥 차 버릴때의 쾌감이라고 할까?      

 호기롭게 전문직 시험에 도전하겠다며 청춘을 방안에서 쏟아내놓고도, 정작 시험 전날 공부를 손에서 아예 놔버린채 팽팽 놀다가 , 시험 당일날 시험지를 바라보며 아득해지는 느낌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속으로 ' 와.. 진짜 나 좆됐구나..' 되뇌일 때 느껴지던 알 수 없는 묘한 쾌감과 일탈감. 그렇게 내 인생이 꼬여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반복된 실패들이 뭔가 내가 의도한 실패들인 것 같다고 자각하게 되었을 때에 혹여나 내가 실패감 그 자체에 중독 된 건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새벽 03시 14분에 떠올리던, 3월 14일 포항 앞바다의 기억은 마치 그런 종류의 중독성과 쾌감이 있는 기억이다. 다시 잠을 청해본다. 그래도 등이 후끈후끈하다. 자꾸만 답답하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삑.... 삐익.... 기계마냥 반복되는 호각소리에 맞춰 펄떡거렸다. 뜨거운 햇볕 아래, 산소를 갈구하며 말라가는 물고기처럼 몸부림 쳤다. 55번. 그게 내 이름이였다. 후덥지근한 내 방안 위로 계속해서 그 때의 기억이, 중간 중간 끊긴 필름처럼 드문드문하게 숨쉬며 피어 오른다.     

생활반에서 만났던 책 한권도 떠오른다. 노자의 도덕경. 그 때 만난 책 한권이 내 인생을 바꿨다.     

그때 내가 느꼈던 해방감이란, 참 잊을 수 없는 느낌 중 하나다. 최재천 교수님은 책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뒤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책을 덮고 바라본 창 밖의 세상은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나무들은 왜 거기 서 있는지, 새들은 왜 이른 새벽부터 지저귀는지, 나는 왜 사는지 가지런히 설명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최진석 교수님의 책을 통해 노자를 만난 이후, 세상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였으며, 내 인생 또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 되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들이 왜 거기에 존재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가 늘상 뜬 구름 잡는 소리라고 여기며 쓸데 없는 것으로 여겼던 삶에 대한 고민들이 매듭지어지기 시작했다.     


선과 악에 대한 개념, 강함과 약함이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등 이 세상의 그 어떤 사상 혹은 생각들도 더이상 나를 구속할 수 없었다.      

     

단지 '안다'는 것과 직관적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냥 단순히 아 이런 거구나. 하고 배우고 넘어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였다. 충격적이면서도, 흥분감과 고양감이 뒤섞여 있었다. 이전과는 완전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은 느낌 마저 들었다. 감탄스러웠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있다면 내가 그때 느꼈던 자유의 맛을 독자들도 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을 쓰는 일이 노자가 나에게 준 유일한 사명이였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나를 구속하는 한 가지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내가 태어난 본연의 나의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나의 영적 스승의 유일한 가르침이자 내 스스로에게 늘상 다짐하는 사명이다.


나는 군에서 만난 노자의 사상을 통해 이 세상을 재해석하였고 그 뒤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에 ‘조언’의 형태를 띈 무언가를 내놓는 사람들은 늘상 조심해야 한다. 특히나 ‘책’이라는 형태의 도구는 상당히 지적이고 신중해 보이는 매체다.


그럼에도 내가 쓰는 글은 상당히 반지성적이고 수준이 낮다. 본인이 내뱉은 말에는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작가로서의 사명을 지게 하고 싶지 않다. 는 상당히 이기적인 생각을 하며 산다. 그래서 이 책을 본격적으로 여러분께 보이기 전에, 고백 하나를 하고 싶다. 이 책은 순전히 내 재미를 위해 썼으며 여러분께 그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냥 재미로 읽어달라. 그래야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현 시점에서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펼쳐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일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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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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