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시간은 03시 14분

도덕경과 함께 걸은 20대 청춘기

by 김무위

침대에 누웠다. 방안에서 오늘도 가슴이 답답하다. 그만하고 싶다. 또 다시 상념이 몰려온다. 도대체 언제 이 상념의 끈질긴 발악을 끊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또다시 물밀듯이 밀려올 때 였다. ‘틱..... 틱.......’ 오늘 따라 시계 초침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려왔다. 어쩔 수 없이 시계를 향해 시선을 쏟아냈다. 지금 시간은 3시 14분이다. 3.14? 어디서 많이 본 숫자다. 너무 익숙하지만 불편한 이 숫자.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숫자의 행방을 밝혀내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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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밤바다

여수밤바다

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여수 밤바다.

아... 아...


장범준 목소리도 아련하게 같이 들려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두려움. 밤바다를 생각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두려움의 기억이 반사적으로 뇌리에 은근하게 스미기 시작한다.

바닷물이 내 머리를 적시고, 피부를 적시고 혈관을 따라 움직이는 혈액마저 차갑게 잠식해가던 그 때의 기억,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조교들의 윽박지르는 소리에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의식이 꿈 깨듯 잠시 박동했다가 다시 아득해지기를 반복했다.


밀물에는 내 젊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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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에는 나의 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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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절궈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암흑 너머의 랜턴 빛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들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이 사람이 살아는 있나, 기절했나 점검한다. 랜턴 빛에 적나라하게 비춰지는 하얗게 질린 얼굴들과, 푸르딩딩한 입술들을 앙다물고 버티던, 부릅뜬 눈들이 반짝인다. 부릅뜬 눈에는 수면을 갈구하는 혈액들로 실핏줄이 곤두서있다. 그리고 그 좁디 좁은 혈관 속에 스며든 혈액마저 숨막히게 잠식해오던 추위란 존재는, 정말 냉정했다. 무심했다. 우리를 죽이겠다는 의지란 것 조차 보이지 않아서 더 차가웠다. 거기에 저항하는, 정말 어리석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수 십개의 젊음이 약동하는. 지독히도 추웠던 포항 앞바다. 약전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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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에 완연하게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에도 알 수 없는 쾌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치 몇 시간을 공들여 세워 놓은 도미노를 한번쯤은 톡 하고 건드려 무너뜨려 보고 싶은 유혹. 그리고 끝끝내 유혹을 참지 못하고, 톡 하고 건드리는 것에서 모자라 시원하게 발로 뻥 차 버릴때의 쾌감이라고 할까?

호기롭게 전문직 시험에 도전하겠다며 청춘을 방안에서 쏟아내놓고도, 정작 시험 전날 공부를 손에서 아예 놔버린채 팽팽 놀다가 , 시험 당일날 시험지를 바라보며 아득해지는 느낌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속으로 ' 와.. 진짜 나 좆됐구나..' 되뇌일 때 느껴지던 알 수 없는 묘한 쾌감과 일탈감. 그렇게 내 인생이 꼬여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반복된 실패들이 뭔가 내가 의도한 실패들인 것 같다고 자각하게 되었을 때에 혹여나 내가 실패감 그 자체에 중독 된 건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새벽 03시 14분에 떠올리던, 3월 14일 포항 앞바다의 기억은 마치 그런 종류의 중독성과 쾌감이 있는 기억이다. 다시 잠을 청해본다. 그래도 등이 후끈후끈하다. 자꾸만 답답하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삑.... 삐익.... 기계마냥 반복되는 호각소리에 맞춰 펄떡거렸다. 뜨거운 햇볕 아래, 산소를 갈구하며 말라가는 물고기처럼 몸부림 쳤다. 55번. 그게 내 이름이였다. 후덥지근한 내 방안 위로 계속해서 그 때의 기억이, 중간 중간 끊긴 필름처럼 드문드문하게 숨쉬며 피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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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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