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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위 Aug 17. 2024

[무위적 사유]:  서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과의 서열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미묘한 바이브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구분되는 행동 양식, 즉 "예절"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젊은이들에게 상당 부분 불합리하게 적용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이 "예절"을 빌미로, 사회적 서열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이들 때문입니다. 이런 부류는 나이가 주는 권력적 이점을 마음껏 누리면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하려 합니다.



이런 이들을 상대할 때 제가 유지하는 태도를 여러분께 공유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고개는 숙이되 허리는 굽히지 않는 태도입니다.


우리보다 나이, 직급 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고개를 숙여 그에 맞는 사회적 예의범절을 지킬 줄 알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리까지 굽혀 인간적인 존경을 담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사회에서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역학, 즉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관계의 시작 단계에서 이미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을의 지위를 강제적으로 차지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을 차지하게 되는데요,


이런 관계의 프레임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사회가 부여하는 '나이'에 대한 관념을 완벽히 깨뜨려야 합니다.


저는 단연코 저보다 나이가 적다고 해서 혹은 많다고 해서 저보다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상대방이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사회적 판단 자체를 최대한 유보하려 합니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라는 인식조차 제 기준에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 다음의 생각들을 한번 거쳐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이런 사회적 판단을 하는 이유는 생물학적 본능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낯선 환경에서 만난 개체가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를 빠르게 판단 내릴 수 있어야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본능이 현재의 인류에게도 공연히 남아있으며 아직까지도 매우 중요한 본능입니다. 관계의 우열을 빠르게 판단 내릴 수 있는 생물학적 안테나가 민감한 사람들이 정치에 능하고 사회관계에 능하며, 생존확률 더 나아가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대 전제는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글 속에서 만난 사자가 만약, 절대 부술 수 없는 아주 단단한 원료로 만들어진 감옥 울타리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원시적 뇌는 즉각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사자는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에 우리를 해칠 위험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본능이 작동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습니다. 이 본능의 스위치를 즉각 꺼버릴 수 있습니다.


2024년 현대로 돌아와 봅시다. 술자리에서 만난 이가 나이를 빌미로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 할 때, 어쩔 수 없이 우열을 감지하도록 만든 생물학적 시스템의 스위치를 꺼버리려면, 동일하게 상대를 '절대 부술 수 없는 감옥'. 즉,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없는 위치'에 존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방과의 적절한 심리적 거리감'을 두면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항상 심리적으로 타인의 영향권 밖에 있기 때문에 굳이 우열을 가려 나의 생존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보다 강하고 약하고 가 뭐가 중요합니까? 어차피 우리는 서로에게 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판단을 최대한 유보할 수 있으며, 관계의 역학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늘 초연하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어떤 이름표도 의미도 붙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연물을 인식하듯 세상을 바라보는 노자의 '무위'의 지혜가 여기에서도 작용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인 겁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영원한 타인이자 외부인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당신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당신 존재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런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상대방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술자리와 같은 자리에서 손 아랫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에티켓 ex) 술 따라드리기, 고개 돌려서 마시기 등의 주도법을 철저히 지키지만 인간대 인간으로서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상대를 대합니다.


나보다 30살, 4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까마득한 직장 선배 혹은 윗어른에게 뜬금없이 휴일에 무슨 일을 하며 취미생활을 하시냐는 질문을 '진심으로' 합니다. 마치, 또래의 친구에게 하듯이 말입니다. 저는 그냥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데 혹시 침착맨을 아냐고 묻습니다. 불면증이 있으시면 침착맨이 삼국지 얘기를 하는 유튜브 영상이 있는데, 그게 진짜 불면에 최고라고 하면서 그 영상을 권하기도 합니다.


상대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선합니다. 관계에 있어 '우위'라는 것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나이', 혹은 '지위'가 부여하는 관계의 서열에서 벗어나 저를 뭔가 동료 혹은 친구 때로는 아들 같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과도하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가 부여한 에티켓은 제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나'를 위한 것입니다. 상대방을 리스펙 해주는 나 자신에게 약간 취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에티켓이라는 것이 제 게하는 역할은 딱 그 정도입니다.


이런 마인드로 상대를 대하다 보면, 되려 나이를 앞세워 관계의 역학을 장악하려는 상대마저 이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물론 끝까지 우위를 점하려 하면서 꼰대짓하는 부류는 언제나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그냥 거리를 두면 됩니다. 어차피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인 것입니다. 이미 관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존재하면서 타인이라는 존재에 깊게 몰입하지 않고 거리감을 두기 때문에 굳이 영향을 많이 받지 않습니다.




 '무위'하는 사람. 즉, 사회가 부여하는 관념을 벗어던지는 사람에게는 늘 사회적 이념을 재정립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자유를 누리시면서 관계의 부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상 김무 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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