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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위 Sep 12. 2024

지금 내 시간은 03시 14분 (3)

지금에 와서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클럽에서 한창 불태우다가 지쳐서 오늘도 여자와 아무런 썸씽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집 가는 첫 차를 타기 위해 터덜터덜 한적한 홍대 새벽 거리를 걸어나올 때 였다     

그때 항상 같은 자리에서 항상 같은 기타를 들고 추운 겨울 새벽에도, 혼자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채 펭귄마냥 가만히 서서 버스킹을 하던 남자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하던 노래에 정말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때쯤 길거리에는 술에 취해 이상한 자세로 널부러져있거나 울부짖으면서 부축을 받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너무나도 밝게 빛나야 할 청춘들의 에너지가 가득 넘치는, 예술적 자유가 넘실대는 그 공간에는 이상하리만치 알 수 없는 방황과 혼란, 불안함 같은 공기가 존재했다. 그건 아마 내가 그랬기 때문일거다.     

이런 생활이 너무 재미있고 좋으면서도, 이 방탕한 생활을 주변에 공유할 수 없어 홀로 숨겨야했다.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내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 때문에 늘 그 순간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불안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더 슬펐던 이유는 그냥 패배해서였다.     

난 거기에서 거의 매일 밤 패배하다시피 했다. 짝짓기 경쟁에서 도태된 수컷이 느끼는, 생물학적 인간 남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성질의 패배감에 이상하리만치 중독되었다. 그렇게 어린 청춘의 마음에 생채기가 조금씩 조금씩 가슴시큼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한없이 가벼워져야 했다. 마치 편의점 매대에 있는 물건 고르듯 빠르고 거칠게 다음 상대로, 또 다음 상대로 아무 생각없이 넘어가야 했다.


사랑을 하고 이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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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의 첫 만남을 거기에서 시작한 덕분에, 내 연애는 20대 내내 영 시원치 못했다. 늘상 삐걱거렸다. 찐따마냥 쭈뼛대면 매몰차게 거절당할 거라는 것을 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연애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길바닥에서 스스로 깨우친 것처럼 적당히 가벼워지면 나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연애를 지속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은 가능했을 지라도, 그것은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니였다. 나는 나를 보여줄 용기가 없었다. 내 찐따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여자가 도망갈 것 같았다.     

그 때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사랑이였고, 관심이였던 것 같다. 한창 아무 생각없이 연애를 해볼 수 있는 좋은 나이에 뭐가 그렇게 생각이 많았고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건지, 나는 사랑을 쏟는 것이 무서워, 그저 육체성을 탐닉했다.      

육체성의 세계는 간단 명료했고, 어느정도 예측 가능했으며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보편법칙이란 것이 존재했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이 간단 명료하길 바랬던 거다. 너무 불안했고 너무 혼란스러웠으니까.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더더욱 그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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