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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위 Sep 03. 2024

[무위적 사유] : 애쓰지 않고 성공하기

feat. 무라카미 하루키 


https://ppss.kr/archives/80593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작법을 통해 바라본 애쓰지 않고 성공하는 방법론에 대해 논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삶의 태도는, '애쓰지 않는 삶', '무위적' 삶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애쓰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속세에서 동떨어져 자연과 함께하는 유유자적한 , 무욕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타고난 본연 그대로의 욕망을 따라 살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애쓰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살아갈 때 에서야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동물적 야수성으로서의 회귀. 는 애써 욕망하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그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서부터 등장합니다.



어느 날 그는 사람 없는 야구장 관중석에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나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를 ‘에피파니(epiphany)’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말 뜬금없습니다. 개연성과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꿈이란 것은 사실 이런 것입니다. 아무 이유 없는, 일종의 계시와 같은 것. 우리가 백날 전날 기도하고 노력해 봤자, 욕망은 그런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욕망은 의지로써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쇼펜하우어가 말했습니다.


욕망은 그냥 "생각 없이" 살다가, 문득 마주치는 것입니다.  


하루키가 남들과 달랐던 점은, 애쓰기를 애쓰지 않고 자신의 본능을 알아차릴 수 있는 태도, 즉 자신의 직관을 감지하는 더듬이가 남들에 비해 유난히 예민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 간다’는 것보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정보 과잉 시대에 필요 없는 콘텐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머릿속이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빼야 할까요? 하루키는 그 기준은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기준을 갖고 가슴 설레는 기쁨이 찾을 수 없는 일이라면 미련 갖지 말고 깨끗이 몰아내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버릴수록 더 많은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보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머릿속에 그려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이야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지고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유롭게 쓸 때 나만의 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110쪽)



이보다 더 정확하게 노자의 담론을 풀어낼 수 없습니다. 그가 설명하는 작법 하나하나는 노자의 삶의 태도를 빼다 박아 놓았습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보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어떠한지를 되돌아보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애쓰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때의 내가 되어 자유롭게 존재해야 글이 써진다는 그의 설명은 제가 말하는 성공론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 하고 생각을 굴릴 때 정말로 행복합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한 경험은 없습니다.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7쪽)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by 무라카미 하루키 中




꿈은 '감정 상태'에 답이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기준을 갖고 가슴 설레는 기쁨이 찾을 수 없는 일이라면 미련 갖지 말고 깨끗이 몰아내라고 말합니다. 



그가 글감을 저장하는 방식 또한 100% 직관에 의존한 방식입니다. 그는 글감을 따로 적어둔다거나 하지 않고 머릿속에 저장합니다.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잊어버릴 거라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니 그냥 놓아두라.


우리가 꿈을 찾는 방식 또한 그가 글감을 찾는 방식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꿈은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직관의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찾는 과정에 있어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몸에 힘을 줄 필요가 없는 이유. 즉 애쓸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 머릿속에 남지 않고 어차피 잊어버릴 거라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쓰지 맙시다. 그냥 놓아둡시다.



‘작가의 블록’은 번아웃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루키는 소설을 써온 35년 동안 단 한 번도 슬럼프를 겪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비결로 자유로움을 꼽습니다.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을 때는 쓰지 않고, 오직 쓰고 싶을 때만 소설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는 글을 쓰는 일조차 애써 노력하지 않습니다.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을 때는 쓰지 않고, 오직 쓰고 싶을 때에만 소설을 쓴다는 것입니다.


즉, 글을 쓰기 위해서 억지로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그 자체로 '무위이 무불위'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애쓰지 않는 이유는, 꾸준하게 글을 '쓰기 위함'입니다.

노자가 '무위'하라고 하는 것은, '유의' 하기 위함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자연스러운 우리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방향성을 정해야 할 뿐입니다. 방향성 또한 우리가 애쓰지 않을 때에 정해지는 것이겠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 우리 내면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는 명민한 안테나를 곤두세워둔 채 편안하게 어린아이와 같은 태도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애쓰지 맙시다. '무위이무불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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