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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먼파워 Aug 20. 2024

사랑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시작된다

제목을 지어줄래?

 그와 나는 대학 시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모범생들이었다. 성적도 좋았고, 그 덕분에 매 학기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2학기 복학생이라 코스모스 졸업 예정자였다. 수업은 1년 선배들과 들으면서 성적은 우리 학년과 경쟁하는 그야말로 깍두기였다. 그래서 우리 학년에서 받아야 할 장학금을 하나 빼앗아가는 우리 학년에게는 밉상인 선배였다.      

   

 그런 그는 나처럼 앞자리 선호파였다. 맨 앞자리는 교수님의 침이 튈 수 있고 뒷자리는 집중이 안 되므로 보통 셋째나 넷째 줄을 선호했다. 그러다 보니 그와 나는 늘 가까운 자리에서 수업을 듣곤 했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대충대충 수업을 듣는 것에 비해 언제나 집중하며 필기를 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당시에 교직 이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적 십 퍼센트 안에 드는 성적우수자만이 들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그날도 필수과목인 교육학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 앉아 있던 그가 나를 톡톡 쳐서 돌아보았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그것은 그가 직접 쓴 시였다.

 “제목을 지어줄래?”

라는 그의 부탁에 순간 당황했지만 곧 호기심이 생겼다. 몇 줄을 읽자 강의가 시작되었고 서둘러 서랍에 넣어두었다.     

 강의가 끝나고 가방을 챙기는데, 그는 또다시 나를 톡톡 쳤다.

 "제목 지었니?”

 난 당황해하며 아직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빨리 제목을 지어줘!”

 라고 재촉했다. 시를 끝까지 읽어보지도 못한 채 제목을 짓는다는 것이 우스웠지만, 성가시게 구는 선배를 골탕 먹이려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제목을 적어 그에게 건넸다.

 ‘사랑하는 홍례에게 바치는 시’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저 장난삼아 적은 그 시 제목이  우리 사랑의 첫걸음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날 이후, 그는 나에게 더 자주 다가왔다.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내게 보내는 관심과 애정이 담긴 시와 편지가 점점 늘어갔다. 가끔은 직접 찾아와 내 손에 편지를 건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편지를 기다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설레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서히 서로의 일상에 시나브로 스며들었고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되어 갔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장난처럼 시작된 제목 하나에서 싹텄다. 우연처럼 시작된 그 순간이 결국 운명이었을까? 나중에 그가 고백하기를, 처음 나에게 건넨 그 시는 이미 나를 생각하며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마음속에 나를 품고 있었다고 했다.


 문득 그 시가 궁금해진다. 그가 내게 처음 건넸던, ‘사랑하는 홍례에게 바치는 시’. 그 시 속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그 시가 우리의 사랑을 어떻게 예고하고 있었을까?

 사랑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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