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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먼파워 Aug 29. 2024

사랑, 그 다름의 인정

기념일을 기억 못하는 남자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그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공부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그의 동태를 살피느라 혼란스러웠다. 그가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점심때가 지나도록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속에는 서운함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라는 의심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때마다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거야.’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초침이 째깍째깍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나의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더디게 흘렀다. 그는 여전히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고, 나는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괜한 상상을 거듭했다. ‘생일 축하한다.’는 그 한마디가 너무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내 마음을 모르는 듯 그저 공부에만 열중해 있었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언제까지 모르나 보자.’ 그렇게 결심하고,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와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두 마음이 계속 싸우고 있었다. 차라리 시간이 빨리 흘러가 버렸으면 싶었다.      


저녁이 되었을 때, 그는 더 늦게까지 공부를 하겠다며 나더러 집에 가라고 했다.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서운함과 실망이 밀려왔다. 내 생일을 기억해주기를 바랐던 작은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결국,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내가 먼저 ‘오늘 내 생일이야.’라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가 내 생일을 알아주길 바랐다. 사귀기 시작한 후 처음 맞이하는 내 생일이니만큼 그가 꼭 기억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의 마음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의 관심의 크기를 재보느라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은 하늘만큼 커 보였다가, 또 어느 순간은 아예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태도에 나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내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전히 내 마음을 모르는 그가 야속해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제 내 생일이었어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는 깜짝 놀라며 당장 만나자고 했다. 기념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일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의심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연애를 하면서 나는 그의 모든 관심이 오로지 나에게만 향하기를 바랐다. 그의 마음속에 온통 내가 가득 차길 원했고, 그가 무엇을 하든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공부와 사랑, 두 가지 모두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자신의 계획대로 시간을 안배하며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이런 태도가 나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며 그를 바꾸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랑도 중요했고 그의 목표 달성도 중요했다. 바꾸려고 할수록 나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졌고 나에 대한 그의 마음까지 부정하려고 드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 안 바뀐다. 

역시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마음뿐이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안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축하받고 싶으면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말을 하자.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짓은 더는 하지 말자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사랑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이해와 배려를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대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내 기대와 그의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사랑은 단순히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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