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 경숙이
어린 시절, 나는 60 가구 남짓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아온 동네라서 이웃끼리 서로의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았다. 간밤에 누구네 아버지가 고주망태로 들어와 누구 엄마를 때렸다더라, 공장에 다니는 누구네 딸이 얼마를 보내왔다더라, 누구네 할머니의 생신이 내일모레 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면 한 시간도 안 되어 온 동네에 퍼질 정도였다. 하다못해 그 집에 수저가 몇 갠 지까지 알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이 동네로 우리 가족이 이사를 온 것은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이 동네에서 30분 걸어가야 하는 학교로 전근을 하셨다. 나는 이곳에서 네 살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대전으로 이사 갈 때까지 10년 넘게 살았다.
우리 동네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우리 아버지이고 다른 한 분은 내 친구 경숙이 아버지였다. 한 동네 살다 보니 경숙이와 나는 은연중에 경쟁 상대가 되었다. 성적은 물론, 옷차림, 심지어는 도시락 반찬까지도 서로 견제하며 비교했다. 겉으로 대놓고 다투진 않았지만, 서로 마음속 깊이 경쟁의식을 품고 있었다. 시험 성적이 나오면 내가 몇 등 했느냐보다 경숙이보다 잘했는가 못했는가가 더 궁금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경숙이는 이과를, 나는 문과를 선택했다. 우리 동네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가는 국립대학교에 우리는 나란히 합격했다. 경숙이는 가정교육과에 입학했고, 나는 사학과를 선택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묘한 경쟁심이 남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경숙이는 바로 중학교 가정교사가 되었다. 반면 나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대학원에 진학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경숙이보다 네가 훨씬 공부 잘했는데, 경숙이는 선생이 되고...”
아버지의 말씀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지만, 나는 사학과에 간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기에
“아버지, 저는 사학과 간 것 후회하지 않아요. 사학과 안 갔으면 정서방 못 만났잖아요.”
이 말은 아버지를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진심이었다. 나는 사학과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였음을 지금도 확신한다.
세월이 흘러 4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경숙이와의 경쟁이 나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길로 나아갔고, 나는 그 길에서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며, 그 선택이 나를 오늘의 나로 만들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 선택은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