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의 오늘날-2]급히 찾아온 아침 첫 환자
직원실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건지? 어떤 이야기가 그렇게 웃긴 건지, 궁금하여 직원실을 열어보고 싶을 만큼 시끌벅적하다. 바로 앞 대기실에는 밤새 아파서 끙끙거리며, 치과를 찾은 아저씨 한분이 신경질 적으로 신문지를 넘기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을 적어놓은 신문은 볼수록 더욱 짜증만 나는지, 더욱 페이지 넘김이 신경질적으로 되어간다. 아픈 환자가 병원 문열기 전부터 기다렸는데, 아직도 안 봐주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10시가 되어 진료가 시작되기 전에 직원들이 나오는 경우는 요즘엔 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다. 아마도 그렇게 되면, 또 추가 수당을 줘야 할 테지만, 준다 해도 나오지도 않는 것이 요즘의 젊은 친구들이기도 하다.
전에 우리 치과에서 치료한 상악 제2 소구치가 붓고 손만대도 아프다고 인상을 쓰면서 큰소리로 불평을 호소하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나는 방긋 웃으며 무표정한 인사를 건넨다. 치과치료는 기록도 사진도 다 남기에, 지금 아픈 곳은 우리 치과에서 치료한 적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느긋하게 인사로 응대한다. 환자분들은 실제로 자신이 아픈 치아가 어느 치아인지, 이 치아가 언제 어디서 치료받았는지 모를 때도 물론 있지만, 알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과 치료가 부담스럽게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일단 우기고 조금이라도 할인을 받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그만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파서, 문 열기 전부터 문 앞에 서있었으면, 오자마자 좀 봐주는 게 도리지? 준비할 거 다하고, 시간 되어서야 봐주는 경우가 어딨어!"
"죄송합니다. 그 대신 바로 하나도 아프지 않게 잘 봐드릴게요"
작은 어금니의 어금니 쪽 부분(상악 제2소구치의 구개부)이 쪼개졌서 덜렁거렸다. 잇몸 아래쪽까지 깨져서 내려가서, 뽑아야만 할 것 같다. 무엇인가 깨질 때를 생각해 보면, 금이 쭈욱 내려갈 때는 그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 금이 갈지도 사실 알기 어렵다. 이렇게 잇몸과 치조골 아래까지 깨져버린 경우에는 뽑고 임플란트를 하는 것이 가장 쉽고도 확실한 치료 방법이다.
"아버님, 치아가 뼈의 아래쪽까지 금이 가서 깨져서 덜렁거려요. 이 치아는 못 살리니깐, 빼고 임플란트 하셔야 해요. 오늘 시간이 괜~"
"아니 멀쩡한 이를 왜 빼자고 해~"
이를 뽑자고 말이 나오면, 다음말이 나오기도 전에 말허리가 잘려버리기 일쑤이다. 내가 치아를 부러뜨린 것도 아닌데, 화를 내고 눈을 부라리는 분들도 많다.
함께 사진을 보면서, 금이 아래까지 내려간 것을 보면서도 멀쩡한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본인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이를 빼고 나서 임플란트를 심는 것이 힘들 것 같고, 비용이 나오는 것이 짜증 나기 때문에 내뱉는 작용 반작용과 같은 반응이다. 이제 이런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 그리고 설득시키려고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이미 본인도 아시지만, 받아들이기가 싫을 뿐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치과에 흘러나오는 선율을 음미하는 시간을 4마디 정도의 따라가다가 아버님께 다시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 뽑고 가실 건지? 중요한 약속이나 일이 있으신지? 시간 되시면, 바로 임플란트 준비를 하실지도 추가로 물어본다.
"얼마 드는데요?"
"곧 안내해 드릴게요"
나는 가격에 대한 상담을 전부 상담실장에게 맡겨둔다. 하지만, 어떻게 치료하고 어떤 재료와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될지는 꼼꼼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상담실장은 내가 세운 계획대로 치료했을 경우에 지불하실 비용에 대해 상담실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리고 추가로 궁금한 사항도 차근차근 대답해 준다. 내가 가격을 상담하게 되면, 내가 내 치료 시에 돈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면, 좋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환자분은 많은 진료를 하시는 분으로 1000만 원 이상의 진료비를 내실분이고, 이분을 간단한 충치치료만 할 5만 원을 내실 분이라는 생각이 환자를 만났을 때,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오로지 그 환자분의 아픈 부분이나, 원하는 사항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치과적으로 해결해 드리는 것만을 머릿속에 떠올린 채, 환자들 옆에 앉아 있는 것이 의사다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시간이 안되어서, 다음에 뽑겠다는 아버지를 기어이 체어에 다시 앉힌다. 지금 이대로 가면 밤새 아파서 잠한숨 못 잘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치아 내에 노출된 신경(치수)을 빼내고 1차적인 치료를 해놓아야, 이분은 오늘 편안히 밥이라도 드시고, 일정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님, 근관치료는 보험진료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아니에요. 이거 받고 다음에 뽑으러 올 때까지 편하게 주무시다가 오셔야지요. 얼른 앉아봐요"
한쪽으로 내 몸을 한껏 틀어서, 침이 튀는 나만의 전장에 들어간다. 물이라도 잘 못 삼키면 혼나기 일쑤이므로, 엄청 엄중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분의 가장 심각한 냄새를 맡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치과의사이다. 어깨는 굽어가고 등은 휘어지며, 허리통증을 달고 사는 것은 명예훈장이므로 자랑으로 삼고 있다.
치료가 마치고, 나가실 때는 전에 비해 표정이 많이 달라진다. 통증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진료 때, 치아를 뽑는다는 생각이 조금 무뎌졌기 때문이라.
"다음에 와서 이 뽑을 때는 하나도 안 아프게 해줘야 해~"
너스레를 떠는 아저씨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당연히 그러하겠다는 믿음 주는 연습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음환자를 보기 위해 서둘러 옆 체어로 넘어가며, 차트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