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의 지난날-2]시골에서의 생활의 단편
알 수 없이 버려진 듯 보호되고 있었다.
아직 더 자야 하는데, 나를 흔들어 깨우는 진성이 외삼촌은 고등학생이다. 국민학교 4학년의 눈에 그는 엄청 어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성이에게도 갑작스레 찾아온 먼 조카를 일일이 챙겨가며 학교 가는 것이 여간 성가신 게 일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나? 해가 아직 뜨지도 않은 겨울의 6시인데, 왜 이렇게 다들 일어나서 분주한 것인지? 외삼촌은 학교까지 가려면 1시간 반이나 걸리는데, 그마저도 한 번에 가는 것이 아니라 걷고 버스 갈아타고 하여야 된다는 사실을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건강한 냄새 가득한 아침상은 그 당시 나에겐 힘든 아침 숙제였다. 어느 것 하나 맛있게 넘기기 어려운 반찬들이라, 맨밥을 물에 말아 욱여넣기 일쑤였다.
괜찮다는 외삼촌을 마을어귀 버스정류장까지 꼭 데려다주곤 하였다. 외삼촌이 떠나고 나면 나를 챙기는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 떠들고 노는 동네 아이들도 따지고 보면 먼 친척들이라고 하는데, 말 한마디 건네는 녀석들이 없었다.
나무작대기로 더 작은 나무토막을 쳐올려서, 그걸 또 쳐서 날린 뒤, 어디까지 날아갔는지? 걸음걸이로 그걸 재고, 그다음은 아직 더 추리를 해봐야 저 놀이의 규칙을 알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쟤네들은 아주 진지했고, 승부욕이 불타올라있었다.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걸 보면, 중요한 일임에는 분명한 듯했다. 저 작은 나무토막이 날아가는 게 그렇게나 중요하다니 말이다. 특히나 덩치도 작은 광수라는 녀석이 덕재한테 달려들 용기를 불어넣을 만큼 대단히 중요한 상황인가 보다.
웅크린 채로, 한나절을 구경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밭으로 산으로 나가셔서 빈집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채, 무엇을 위한 시간인지 모를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제외한 다른 우리 가족들이 뭔가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내가 알기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외삼촌은 돌아왔고, 할 말도 없이 주변을 맴도는 나는 그에게 귀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나를 떼어내기 위해 뭐라도 던져줘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진성이 외삼촌은 창고로 가서 먼지가 잔뜩 앉은 썰매와 막대 두 개를 찾아와 던져주었다. 썰매의 바닥에는 진열대를 만들고 남은 쇳조각을 잘라서 날을 만들어 못을 박아 고정되어 있었다. 두 개의 막대는 한쪽 부분은 친절한 듯 불친절하게도 잡으면 까슬까슬하여 불편하지만, 이 부분이 없으면 잡지도 못할 것처럼 짚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반대편은 못을 거꾸로 박은 다음 대가리 부분을 뜯어낸 채로 날카롭지는 않으나 얼음에는 박힐 수 있는 정도로 다듬어져 있었다.
이것만 내어주면 뭘 하나? 어디서 타야 할지도, 누구랑 타고 놀아야 할지도 알려주지 않은 그 밤에 , 나는 이 썰매 세트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았다. 그밤에 얼마나 오래 만지작 거렸으면, 이제는 못만 바라보면 아직도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누가 나에게 왜 여기에 있는지 한마디 해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