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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주행시험장(10)

바다에서 올라온 뜻밖의 손님

by 좀 달려본 남자

바다에서 올라온 뜻밖의 손님 돌고래


9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근무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동해 바다의 유난한 짠내와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물빛, 그리고 멀리서 우직하게 배를 조립하던 현대중공업의 크레인들입니다. 돌아보니, 그 모든 게 내 청춘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닷가’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현대차 울산공장에선 지금은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돌고래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름날, 시험차를 몰고 바닷가 근처 도로를 달리던 운전자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일이 있었어요. 앞에 뭔가 검고 큰 게 시험로 옆에서 파닥대고 있다는 건데, 자세히 보니 그게 소형차 한 대 크기의 ‘돌고래’라는 겁니다. 아니, 돌고래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몰라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가 뭐든, 그 바다 생명체는 아스팔트 위에서 힘겹게 숨을 쉬며 죽어가고 있었기에 마음이 급해졌죠.


급하게 달려가 보니, 정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운전자와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다 모여서 이 뜻밖의 손님을 한참 구경했어요. 누군가는 "이거 진짜 돌고래 맞나?"라고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바닷물을 양동이에 가득 담아와 돌고래 몸에 조심스레 붓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어떻게든 그 생명을 지켜내려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함부로 옮기지도 못한 채 구청의 담당 공무원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물을 뿌리고 또 뿌렸어요. 물론, 그동안 모든 주행시험이 중단됐습니다. 그분께 우리는 몇 번이나 “빨리 와줘서 고맙다. 돌고래를 꼭 살려달라!”라고 당부했어요.

그런데 한 달 후, 지역신문에서 정말 충격적인 기사를 봤습니다. 상상도 못 했죠. 안타깝게도 그때 구조되었던 그 돌고래가 불법으로 장생포 횟집 여러 곳으로 팔려 갔다지 뭡니까. 뒤에서 돈을 챙긴 그 담당 공무원은 수산자원보호법 위반으로 체포됐고요. 돌고래가 바다로 건강하게 돌아가기를 모두가 간절히 빌었던 그 마음이, 한 순간에 배신당한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차라리 신고하지 않고 모른 척 바다 어딘가로 임의로 돌려보내줬더라면 살았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지금도 그 돌고래만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서늘합니다.


"좀 달려본 남자는 현대자동차 연구소 엔지니어로 34년 동안 -40℃에서 50℃까지, 미국, 유럽, 남미, 중동, 중국, 러시아등 세계각국의 다양한 주행조건에서 실차개발시험을 진행하였다. 그동안의 시험경험들을 1) 자동차주행시험장, 2) 해외기후환경과 자동차, 3) 해외사회환경과 자동차, 4) 자동차엔지니어, 5) 미래모빌리티로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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