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톤 도전기: 상편
첫 참가한 해커톤에서 대상까지.
도파민 넘쳤던 구름톤 in JEJU 10기,
디자이너는 무얼 했을까?
[1] 해커톤은 왜?
[2] 구름톤을 위한 준비
[3] DAY 1: 설레는 시작
[4] DAY 2-1: 제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
[5] DAY 2-2: 제주도 알뜰 여행 플래너, 제주 장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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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톤 in JEJU 경험이 궁금한 참가 예정자에게
해커톤 참가를 고민하고 있는 디자이너에게
디자이너의 해커톤 후기가 궁금한 모두에게
해커톤(hackathon)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의 직군이 팀을 이뤄 제한 시간 내 주제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공모전이다. IT 기업에서는 이런 다양한 직군의 협업이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스타트업에서는 이렇게 한 팀으로 구성되어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스쿼드 팀(Squad team)으로 일하는 조직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협업은 에이전시의 UX UI 디자이너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커리어 전환을 준비하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에이전시에서도 프로젝트마다 기획, 개발 팀과 협업은 했지만, 스쿼드처럼 완전한 한 팀이 되어 작업한 적은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디자인’ 에이전시에 근무했기 때문에 완성도 있는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 팀원들과 협업한 경험이 더 많았다. 고객사나 외주사의 기획, 개발팀과도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회의하고 소통하긴 했지만, 각각 팀별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 작업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직군과 한 팀이 되는 팀워크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해커톤은 내 디자인 실력을 검증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디자인 과정에서 누군가의 컨펌이 필수였고, 사수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커톤에서는 보통 디자이너가 한 명뿐이라, 모든 디자인 결정은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제한된 환경에서 나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해커톤을 진행하는 짧은 시간 동안, 지금까지 쌓아온 실력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 예상했고, 이를 통해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보완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구름톤 in JEJU는 카카오와 구름이 주최하는 해커톤인데, 제주도에서 3박 4일 동안 교육과 강연, 해커톤까지 진행된다. 구름톤 후기를 찾아보니 교육 프로그램도 궁금했고, 첫 해커톤. 제주에서 경험해 보면 더 재밌겠단 생각으로 지원을 결심했다.
참가자는 총 30명을 선발하고, 그중 디자이너는 6명 선발된다. 10기 디자이너 경쟁률은 정확하진 않지만 16:1 쯤으로 기억한다. 심사는 구름의 현직 디자이너분께서 해주셨고, 지원서를 꼼꼼히 보시고 결정하셨다고 한다.
참가를 위한 지원서에는 아래와 같은 6가지 항목이 있는데, 나의 지원서를 바탕으로 답변 작성 팁을 공유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참여 동기 내 소개와 함께 해커톤을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인트로처럼 작성
2. 최근 제주도가 직면한 사회 문제 자료를 바탕으로 직접 경험한 내용까지 이어지게 작성
3.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고 싶은 서비스 기대효과와 함께 서비스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정리
4. 협업을 위한 나의 장점 가치관과 경험을 연결
5. 구름톤을 통해 어떤 성장을 기대하는지 참여 동기와 달리 좀 더 상세하게 3가지로 나눠 작성
6. 진행한 프로젝트 한 가지 설명 소제목으로 주제를 한눈에 보여주고, 비핸스 작업물 URL 첨부
참가자 선발 후, 첫날 있을 자기소개 PT를 위해서 본인을 소개하는 노션을 작성해야 한다. 디자이너로서 나를 표현하는 시간인 만큼 진부하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소개 노션의 예시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구성으로 커스텀했고, 발표에 재미를 더할 수 있는 간단한 부적 그래픽도 만들었다.
구름톤을 충실하게 즐기겠다는 나의 각오를 표현하는 이 부적을 지니고 왔다는 스토리로, 나를 재밌게 각인시켜 줄 수 있는 소개를 준비했다. 다소 오글거려도 임팩트를 주는 데엔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이후 팀빌딩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근래에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아이맥으로만 작업했던 터라, 해커톤에서 나의 구형 맥북이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래서 최대한 쾌적하게 잘 쓸 수 있도록, 지울 수 있는 모든 메모리를 싹 비웠다.
그리고 13인치 화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맥북으로 작업하는 습관을 들였고, 참가 전까지 생각나는 제주 사회 문제나 서비스 아이디어는 틈틈이 기록해 두었다.
먼저 랜덤으로 정해진 조로 앉아 행사가 시작됐다. 조마다 다른 직군 플레이어와 대화해 볼 수 있게 구성됐고, 아이스브레이킹 타임 후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4일 연차를 내고 오신 직장인부터 대학생, 취준생, 직무전환을 희망하는 분들 등 지원자격에 제한이 없다 보니 소속과 연령대도 다양했다.
플레이어분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니, 다들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계셨다. 이런 멋진 분들과 함께할 생각에 더 설레는 순간이었다. 나도 구름톤을 계기로 좀 더 여러 활동들을 해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같은 조에 앉은 개발자님들과 중간중간 이야기도 나눴는데, 아주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나는 개발자와 사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처음이었고, 생각해 보니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디자이너와의 교류만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할 때도 개발 지식은 디자인에 관련 있는 부분만 최소한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백엔드 개발자님들 간의 대화는 정말 외계어 같았다.
그리고 깃허브가 뭔지, 잔디가 뭔지, (내가 아는 잔디는 협업툴 Jandi 뿐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코드들까지... 모두 생소한 화면들이라 신기했다. 개발자님들은 이렇게 코드를 공유하고 피드백도 하며 공부하는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가장 유익했던 세션은 구름의 디자인 시스템을 소개하고 QA 했던 시간이었다. 지난 기수까지 했던 실습은 중단돼서 아쉬웠지만, 피그마 작업 파일을 상세히 뜯어보며 공부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제일 흥미로웠던 세션은 AI 관련 내용이다. 내가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던 AI를 실질적으로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이 세션을 통해 관심이 생기는 계기가 됐다.
첫날 저녁에 해커톤 주제가 발표되고, 둘째 날 아침에 각자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번 주제는 제주+클라우드+국가지속가능발전목표(K-SDGs)였는데, 딱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밤새 고민했다. 그러다 지원서에 썼던 서비스를 발전시켜 보니 주제에도 잘 부합했고, 마음에 들어 PT를 준비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회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 이 서비스로 어떻게 해결되는지 공감이 가능하도록’ 기획하는 것이었다. 즉 문제인식-해결방법-기대효과가 논리적으로 이어지는지를 계속 검토했다.
그리고 해커톤 시간 내 작업 가능성도 고려하며 서비스 범위를 설정했고, 이후 사업 확장성까지 고려하여 좀 더 매력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그리고 사용자 플로우도 간단히 포함하여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구성했다.
발표는 2분 동안 한 장에 담아서 해야 했는데, 주제를 정했을 때에는 이미 새벽 시간이라 내용을 완벽히 외워서 발표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화면을 보면서 설명할 수 있게 최대한 정보를 알차게 넣었다.
팀은 한 팀에 디자인1, 기획1, 프론트2, 백엔드1명으로 구성된다. 아이디어 발표 직후 곧바로 팀빌딩이 이뤄지는데, 열심히 발표를 준비한 덕분인지 몇몇 분들께서 바로 같이 하자고 제안해 주셨다.
하지만 아이디어 발표 전, 나는 팀원이 거의 정해진 상태였다. 감사하게도 첫날 자기소개 후 저녁에, 개발자님들이 먼저 팀 제안을 주셨고, 그래서 나도 대화할 때 좋았던 기획자님께 같이 하자고 미리 말씀드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먼저 구인할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 팀원들을 보니, 뜻이 맞을 것 같은 분이 있다면 먼저 제안해서 미리 결성하는 전략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 모두 작업 열정도가 끝까지 잘 맞았기 때문이다. 먼저 팀 제안해 준 개발자님들 만세!)
팀원이 모두 결성된 후 바로 주제 선정을 시작했다. 팀원들의 아이디어가 좋아서 여러 주제가 후보로 올랐다.
우리는 주제 선정 기준으로 이런 사항을 고려했다.
이번 해커톤 주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시간 내 개발 실현성이 있는지
첫날 배운 강연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참신한 아이디어인지
나는 디자이너로서 서비스 결과물을 상상해 보며 아래 기준도 추가로 고려했다.
핵심 기능을 제공하는 UX UI가 매력적 일지
좀 더 재밌는 브랜딩이 나올 것 같은지
회의 결과, 나의 기획 아이디어인 "제주 장바구니" 서비스로 의견이 좁혀졌다. 우리는 팀 빌딩 후에 이어진 비어파티 행사 전후로 짬짬이 만나서 기획을 구체화하고, 각자 역할에 따라 수행할 작업과 큰 타임라인을 설정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디자이너인 내가 해야 할 일>
1. 와이어프레임
최소 기능 플로우로 빠르게 프론트에 넘기기
2. 화면 UX UI 디자인
완료 화면별로 즉각 프론트에 넘기기
3. 브랜딩 및 GUI 디자인
4. 발표 PPT 디자인
기획자에게 내용 틀을 받고, 디자인하기
제주도의 내국인 관광객이 줄고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비싼 물가라는 인식과 실제로 바가지요금을 부과하는 경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성비 있는 제주 여행을 계획할 수 있도록, 제주에서 먹을 메뉴를 가격과 리뷰를 기반으로 비교하고, 미리 담아서 경비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통해 가격대비 만족도 높은 제주 여행을 제공함으로써 내국인 관광객을 유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제주 관광 업체들이 적정 가격으로 좋은 퀄리티를 내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할 것을 기대했다.
해커톤 종료까지 개발이 가능한 범위를 확인하며 구체화된 기획 방향성에 맞춰서, 주요 기능별 화면 레퍼런스와 키비주얼 시각 요소를 벤치마킹했다. 그리고 와이어프레임 겸용으로 Lo-fi 수준의 프로토타입을 목업 제작해서 화면을 빠르게 형상화할 수 있게 작업했다.
<주요 UX UI 전략>
"가성비"의 메뉴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했다.
그래서 배달이나 음식점 예약 플랫폼처럼 '메뉴별 리뷰'와 '상세 정보'를 제공하여 음식점별로 메뉴를 쉽게 비교할 수 있게 구성했다. 그리고 가격 비교를 지도 기반으로 제공하는 숙박 플랫폼처럼, '지도에서 메뉴 가격'을 바로 보여주는 UI를 제공함으로써 가까운 위치나 여행 동선을 기준으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짧은 시간 배포까지 해야 하는 해커톤 특성상 최소 기능을 제공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우선 메뉴를 중심으로 선택하는 플로우로 작업하고, 이후 가격이나 위치값 필터링은 시간에 따라 추가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컨셉과 키비주얼 아이디어>
가제가 '제주 장바구니'인 만큼 영수증을 컨셉으로 했다. 담은 메뉴를 마지막에 영수증으로 보여주면서, 여러 메뉴를 장바구니에 담는 느낌으로 시각적으로도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목업을 프론트 개발자님께 넘기고 화면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던 중, 개발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이 서비스는 메뉴를 기준으로 제공되는데, 음식점마다 메뉴 정보를 다르게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데이터를 유의미하게 가공하려면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이 문제로 인해서 우리는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새로운 주제로 전환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각자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며 긴 회의를 거쳤지만, 결국 첫 번째 주제를 포기하고 새로운 주제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제약된 환경 속에서 데이터의 적합성을 반영한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해커톤뿐만 아니라 실제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다양한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이를 개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려한 기획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문제 속에서 해커톤은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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