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남녀 Sep 18. 2024

사랑의 총량

馬主授業: 경주마 다프네



외동. 나누어야 했던 적 없는 두 사람이 산다.

내 것을 덜어 남에게 주는 일은 내가 원할 때만. 남으로 인해 내 몫이 줄어드는 경험도, 내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내어 놓아야 하는 상황도 없었던 삶. 나와 남편에게 "공유" 혹은 "나눔"은 "포기" 혹은 "양보"로 느껴졌고, 심지어 그 경험조차 별로 없었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받았고, 우리만이 받았으므로.


​"저래서 외동은 못 쓴다"라며 손가락질받을까, 내 새끼 행여나 밖에 나가 욕먹을까, 아니면 사실 자식 잘 못 키웠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누구보다 엄격했던 부모. 아이의 마음에 벽이 서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단념하지 않았던 매서운 훈육 덕분인지 많이 들었던 말이라면 "장녀예요?" 남편 역시 비슷하다. 말 안 되는 응석, 과보호의 흔적은 없을지 모르나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왜 그게 티가 나지 않았겠으랴. 결정적으로 우리는 나눔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다행히 이 둘이 같이 잘 살고 있는 이유라면 서로에게 주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원해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델피니라는 못난이 망아지 하나를 그리 끌어안고 살며 참 편했다. 보러 가는 것도 피니만, 간식도 피니만, 예뻐하는 것도 피니만, 심지어 걱정도 피니만. 내가 가진 사랑의 전부를 피니에게만 주는 것은 매우 쉬웠다. 그러다가 다프네가 온 것이다.


피니와 다프네를 대하며, 외동으로 살다가 어느 날 동생이 생기게 된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또옥같이 사랑하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자잘하게 둘의 우열을 나누는, 혹은 그렇게 "보이는" 일들은 넘쳤다. 동생의 존재만으로도 박탈감을 느낄 언니에게 더 많은 사랑을 부어야 해, 아냐, 분명 가족이 되었음에도 항상 뒷전인듯한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동생에게 더 많은 사랑을 부어야 해,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었겠으나 저울질 끝에 택하는 것은 항상 언니였다.

피니는 너무나 아픈 손가락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바싹바싹 태우며 휴양과 복귀,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던 지난날들의 결과 피니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의사표시는 또 왜 이렇게 확실한 건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하도록 두지 않는 "외강내유"의 응석받이에게 사랑을 더 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다프네는 참 손 가는 것 없는 아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걸 알아서 잘했다. 뛰라면 뛰고 쉬라면 쉬고 타고나길 순한 성격에 언니가 옆에서 자신에게 화를 내건 말건 큰 눈망울에 시샘 한 번 서리지 않았던 프네를 보며 나는 신기하고 고맙고 대견했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그런 아이에게 확실히 마음이 덜 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그리 맞을 수가 없었다. 울지를 않으니, 심지어 옆에서 고래고래 울고불고하는 애 옆에 그리 조용히 있으면 그 아이는 절대 봐지지가 않는다.

숨만 쉬어도 뭉클한 델피니와, 아무 말 없이 알아서 잘하는 게 점점 일상처럼 느껴지려고 하는 다프네 사이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해 경각심이 들기 시작했다. 경주마로서의 능력에 대한 기대까지 한 몸에 받는 프네를 보며 나는 델피니의 예를 떠올리며 프네의 모든 것이 절대 당연한 게 아니고 정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잘 키워 나가야 할 어린 말이라는 사실을 끝없이 상기했다. 지금까지 프네 덕에 우리가 운이 너무 좋았던 거라고, 정말 그 꼬맹이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은 피니에게 더 쓰이는 식이었다.





지지난 주말 다프네가 3등으로 선전을 하며 경주를 마친 뒤 우리는 여느 때처럼 프네의 진료기록을 확인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경주 직후에 별 이상이 없어도 일주일 동안은 매일 진료기록을 체크한다. 부상이 꼭 직후에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쉬이 놓을 수가 없어서다. 그러나 괜찮은 것 같았다. 별다른 업데이트도 없었다. 그래서 안도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프네의 앞다리 무릎에서 골편이 발견되었다. 다리에 부종과 열감이 생겨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발견한 사실이다. 골편이라니. 골편이라니? 현 상황상 수술만이 유일한 답이었고, 수술 후 장기간 휴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실적으로 와닿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가장 처음 든 궁금증은 "꼭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가"였으나 프네의 경우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수술을 기정사실로 놓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끝없이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그 어린 망아지가 수술이라는 큰 일을 겪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행여나 잘 못 되면 어떡하지, 반짝반짝 빛날 준비를 하며 예쁘게 커가던 작은 망아지가 꽃도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이렇게 경주 세 번만에 꺾여버리는 게 말이 되나. 기가 막혔다.


​남편의 심란함, 아버님의 황당함, 우리의 머릿속에 끝없이 반복된 말이라면 아마도 "대체 왜" 혹은 "어떡해".




사랑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가 보다. 어느 망아지든 받아 마땅한 사랑의 양이 있다. 프네라고 그 그릇이 작을 리 없다. 언니에게는 콸콸 넘치게 부어댔으나 동생의 그릇은 항상 조금 비어있었다. 이제 프네가 받을 차례다. 프네는 이번 주 금요일 수술을 받고, 약 2주간 회복기를 거친 뒤 장수목장으로 내려가 휴양을 할 예정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골편이 발견된 부위가 비교적 수술이 용이하고 예후도 좋은 곳이라는 점. 골편제거술 자체가 수술 치고는 아주 어렵거나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위로가 된다. 단지 이 모든 과정이 프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만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복이 올 수도 있다고 믿어보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화"라는 것을.


주말 내내 아이들을 보러 갔다. 프네가 어쩌고 있을지 마음을 졸이며 다가갔는데, 항상 그렇듯이 발소리에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모습이 의외로 괜찮아 보이는 것이었다. 다리도 퉁퉁 붓거나 아파서 절뚝일 줄 알았는데 외견상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아마 일단은 염증 치료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테지만. 자신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전신마취를 하고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하겠지. 갑자기 차에 실려 생전 처음 보는 목장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도 모를 거다.


​장수를 또 가게 생겼네, 둘이 웃어버렸다. 그래도 언니는 옷차림 가볍고 날씨 견딜만한 여름을 골라 내려가곤 했는데 동생은 한 겨울 내내 가 계시겠다니 우리 이제 큰 일 났다.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추운 그곳에 열심히 들락거리려면 옷을 단단히 껴 입어야 할 판이다. 누구 말 따나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 마구간이라 하니.


​이제 우리 둘째에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해 줄 기회가 왔다.

사랑. 듬뿍, 사랑.






힘내 프네









2021. 12. 20.

작가의 이전글 경주마를 구매하는 가장 황당한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