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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츠나 Jun 24. 2024

#1 시아버지 밥상, 그 행복함에 대하여

캐나다 시댁 급식충 맏며느리가 저예요


위이이이잉- 빵을 굽느라 달궈졌던 오븐이 식는 동안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부엌을 채웠습니다.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딸아이는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우워우워 합니다. "비행기가 아니라 오븐이지. 할아버지가 빵을 구웠지!"하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빵! 쿠킹! 쿠킹!"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온 가족이 하하하 웃음을 터뜨립니다.



캐나다 맏며느리는 급식을 먹는다


저와 남편, 아이는 캐나다에 와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은 시댁에서 지냅니다. 시댁에서 지내는 동안 삼시세끼는 시아버지가 해주십니다. 친남동생 표현을 빌자면 저는 시아버지가 주시는 급식을 먹는 '급식충'입니다. 시아버지 급식에는 이제 돌을 몇 달 지난 제 딸아이 이유식도 포함돼 있습니다. 전세계에 저만큼 행복한 급식충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메뉴는 플레인 사워도우빵과 사과 시나몬 사워도우빵, 새우오일파스타, 후식은 루바브딸기크리스프와 얼린 블루베리요거트입니다. 오늘 저에게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 있었는데, 시아버지는 진지하게 저한테 그게 왜 기쁜 일인지 묻더니 저녁을 파티처럼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직도 모유 수유 중이라 술을 못 하는 저를 위해 화이트와인을 넣은 파스타를 접시에 가득 담아 건네며 가볍게 제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완벽한 행복이 앉아있는 식탁


오븐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자 집 전체가 고요해졌습니다. 으음- 하는 맛있는 소리와 우와우와하는 딸아이의 옹알이만이 부엌을 따스하게 채웠습니다. 순간 토독토독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려옵니다. 창밖 연못에는 오리들이 몸을 움츠리고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보던 완벽한 가족의 식탁에 들어와 앉아 있는 듯합니다. 어느 것도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완벽한 행복입니다. 이런 행복이 내 것이라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울컥 나오려는 순간이 몇 번이고 지나갑니다.



글을 쓰기로한 까닭은


행복한 기분이 생각이 되고, 생각은 글자의 형태로 마음에 떠오릅니다. 제 인생 가장 불행했을 때의 습관입니다. 괴로운 마음을 글자의 형태로 바꿔 남의 것인양 바라보면 그 기분이 조금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한 마음을 글자로 바꿔보니 멀어졌다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두 번 행복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글로 옮겨두고 싶어졌습니다.


행복한 순간이 너무 빨리 지나쳐 지나갈 수 없도록 옷자락이나마 붙드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붙들어둔 행복을 보시는 분들께도 조금 나눠드릴 수 있다면, 세 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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