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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10시간전

수술실이 궁금하다고요?-1

어쩌다 수술실간호사  25년 차입니다.

아침 8시 2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완료는 곳.



이곳이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수술실이에요.

25년 전 간호대학교를 졸업하고

발령받았던, 병원 내에서도 특수파트 수술실.

대학병원 입사가 확정되었지만 수술실 외 다른 부서는 원하지 않았어요. 대학교 다니면서  병원 실습 나갔을 때 수술실을 꼭 가야겠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제가 원하 부서 티오가 날 때까지 웨이팅 하기로 결심했어요.


학생 때는 매 학년 2학기때 병원 실습을 나가게 돼요. 실습 나가기  '가관식'을 하게 되는데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며 직업윤리에 맞는 간호사가 될 것을 맹세하고 선서를 다 같이 복창하고 서약하는 의식이에요.

간호사 실습복과 캡, 명찰을 받고 간호사가 되기 전 간호학생으로서 실습에 충실하게 임하겠다는 대외적으로는 선언, 나 자신에게는 각오이자 신념이기도 해요.

학교에서 맞춰준 실습복과 간호사 캡, 명찰을 처음 달고 실습 나간 날을 25년이 흐른 지금도 아직 잊을 수가 없어요.

병원마다 실습지로 지정된 각 부서를 로테이션하면서  실습을 하게 되는데요

병동,  중환자실, 응급실, 수술실, 신생아실 등등 실습하면서 느낀 점은

'간호사는 전문직이라 배웠고 프라이드가 강한 직업군이고 그에 걸맞은 에티튜드를 교수님들과 선배들,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다져왔는데 현실과 이론은 이렇게 갭이 크구나'는 거였어요.

병동 실습을 첫날 첫 부서로 배정받았어요.

처음 그 낯선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전달이 잘 될까요.

모든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복잡하게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덩그러니 혼자 서있는 저의 시간만 멈춘 듯했어요. 아무도 저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학생! 다른 사람들 지나다녀야 하잖아.

한쪽 벽에 붙어서 observation 해요."

"네,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실습온 간호학생인데요~선생님"

"알고 있어요. 바쁘니까 오리엔테이션은

나중에 줄게요. "

"정신없는데 학생들이 또 바뀌었어.

새로 올 때마다 이것도 일이야 일 , 안 그래? 휴~"

하며 옆에 다른 간호사에게 푸념을 늘어놓아요.

잠시 후, 간호사 스테이션에서는 큰 소리가 들려요.

"내가 이래서 병원이 싫어! 뭐 하나 해결은 안 해주고 기다리라고만 하니 언제까지 있어! 나도 일하러 가야 한다고. 결과 설명해 준다고 기다리라는 말만 몇 번째야! 의사 니들만 일하냐고! 당장 오 라그래!"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 돼요.

회진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응급이 생기면

우선 순위데로 처리하느라 늦어져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말만 몇 번째냐고!"

나에게 짜증스러운 말투로 푸념을 하던 간호사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체념한 듯 자기 일만 해요.

"뭐야! 이젠 대답도 안 하고 듣지도 않아? 어떻게 할 건데!"라며 간호사를 향해 삿대짓을 해 데는 그 사람을 보면서

첫날부터 간호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간호사 잘못도 아닌데 저렇게 다그친다고?'

'나였다면 이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무조건 사과해야 할 일도 아닌데 저 사람들은 내가 고개 숙이지 않는 것에 저렇게 화를 내고 있어'

저 한 사람의 계속되는 일방적인 불만토로와 고성에 병동에 다른 환자들도  술렁거리는 분위기지만

정작 간호사들은

'저런 보호자 한두 번 겪어봐?'라는 식으로

각자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놀라웠어요.

잠시 후 CS팀 담당자들이 나타나 익숙한 듯 그 보호자를 달래서 상담실로 들어가며 그 소란은 일단락되었죠.

첫날의 파장이 너무 컸는지

이대로 난 간호사가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실습 내내 했던 것 같아요.

한 달 병동 실습 후

수술실로 로테이션돼서 실습이 또 시작되었어요.

병동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보호자들과 직접접촉이 없고 환자들도 수술실로 입실, 퇴실할 때만 응대를 할 뿐 바로 마취상태로 들어가니 직접적인 감정노동에 시달릴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 여기야.

난 수술실 간호사가 되어야겠어.

스크럽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따라가야 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니까. 내가 부족해서 못해서 욕먹는 건 인정하고 참을 수 있어.

내가 더 많이 경험하고 노력하면서 점점 발전하고 좋아질 수 있잖아.

전문적인 간호사로서의 일 외에

사람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매일 매번 참아가면서 견뎌야 한다면  나 그건 못할 거 같아.'

이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수술실 실습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스크럽 (소독 간호사라고 해요) 선생님들의 수술 준비에서부터 수술 중 스크럽 하는 모습, 수술 마무리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노트에 빼곡하게 채워 나갔어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형편없는 솜씨지만 그림도 그려서 메모하고요. 수술실 실습이 끝나면 수술 케이스별로 케이스 스터디해서 콘퍼런스 준비를 해야 했어요.

스크럽 선생님들 따라다니며 이 수술은 어떤 진단일 때 하는 수술인지, 수술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수술명은 무엇인지, 사용하는 재료 이름은 무엇인지 등등 질문하고  적어가며 자료 찾아보고 도서관과 서점으로 뛰어다니느라 실습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어요.

97년 입사한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어요.

애니콜 핸드폰이 처음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때여서

무전기만 한 핸드폰도 가진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처럼 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던 때가 아니었어서

자료도 직접 찾아다녀야 했고, 케이스 스터디나 콘퍼런스 리포트도 수기로 다 써서 제출하던 때였어요.

그러니 자료 찾고 사진 찍고 부치고 오리고

몸과 손이 바쁠 때였고 과제 제출 하려면

지금보다 시간이 몇 배는 걸린 듯했어요.


그렇게 대학시절을 지나 보내고

간호사 국가고시 패스 후 면허증을 받았어요.

졸업 전 11-12월이 되면 각 대학 병원마다 취업 공고문이 개시돼요.

그땐 간호대학 졸업을 앞두면 대부분의 예비 신규간호사들이 대학병원에 입사하기 위해

시험과 면접을 보러 다녔어요.

지금은 간호대학교 졸업하면 진로가 다양해졌죠.

공무원, 외국간호사, 보건교사, 심사간호사, 노인전문간호사, 방문간호사 등등 범위가  다양화되었어요.

드디어 원하던 병원에 간호사로 취업하게 되었을 때 저는 수술실 발령을 원했고 수술실 아니면 입사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가 없어서 몇 달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웨이팅 하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도 기다리겠다 했어요.

수술실만이 저의 전문적인 간호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그나마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직접 접해보니 제가 생각하고 있던 이상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먼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더 컸지만요.


의사 가장 가까이에서 스크럽을 하다 보니

병동에서 겪었던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시달림 당하는 건 없어도

의사들에게서 시달려야 하는 언어적 폭력과 간호사를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태도와 말투, 그들의 기분에 따라 정해지는 그날의 수술방 분위기, 스타일을 못 맞추거나 실수라도 하면

인신공격이 더해지는 이런 큰 문제들을  뒤늦게

그 집단속에 들어가서야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알게 되었어요.



웨이팅 하면서 개인병원 아르바이트도 하고

받은 월급으로 간호대학 친구들과 배낭여행도 다녔어요. 취업하면 3교대로 만나기도 여행 가기도 어려울 거라며 취업 전 친구들과의 마지막(?)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느긋하게 발령을 기다렸어요.

그해 3,4월 두 달 웨이팅을 하고

수술실 티오가 생겨 5월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신규입사를 하게 되면 수술실에 있는 전체과를 로테이션하면서 스크럽 업무를 익히게 되고

3년 차 때 티오 있는 과에 픽스가 돼요.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비뇨기과

안과, 이비인후과, 구강외과, 심장센터, 산부인과까지

메이 져과는 6개월 정도 스크럽을 배우고 마이너과는 3개월 정도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요.

신규 스크럽이 되면 항상 지적받는다는,

'요즘 애들은 인사를 안 해!'

하루종일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던 때였는데

그조차도 인사를 안 하는 버릇없는 신규로 찍혀서

움을 당했던 기억이 나요.

이유라도 알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처음 스크럽 들어가는데 가르쳐 주지도 않고

"너도, 당해봐야 알지~나도 욕먹어 가며 어렵게 배운 걸 왜 다 알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욕먹어가며 배워야 안 잊어버리고 계속 기억에 남는 거란다."라고 말하는 선배도 있었어요.

최근 몇 년 전부터 태움이란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고  일로 목숨까지 끊는 경우도 생겨서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 집단 태움에 대한 인지를 하고 문제점을 많이 부각하고 있지

97년도 당시에는 내가 얻고 배우려면 참고 견뎌야 하는 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알고 버틴 것 같아요. 왜? 선배들도 신규간호사 때는 그들의 윗 선배들한테 그렇게 배웠으니까 계속 대물림되는 거였죠.

근래에 알았어요.

제가 선배들로부터 매번 혼나고 인격폄하발언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일로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

요즘 말하는 '태움'이란 것을요.


수술실 간호사.

의학드라마나 영화에서 그 보다 더 멋있게 보일 수 있을까요.

늘 현실과 이상은 양날의 검과 같은 듯해요.

처음 수술실 간호사로 입사해 1년 동안 모든 과 트레이닝받고 제가 원하던 정형외과 티오가 생겨

정형외과 액팅간호사로 배정이 되었어요.

그때부터가 저의 정형외과 스크럽 25년을 채울 수 있게 한 시작이었죠.

정형외과 주임간호사를 거쳐

지금의 수간호사까지,

-다양한 성향을 가진 신규 및 경력직 후배들을  교육하는 프리셉터로, 때로는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의 정서적 지지자로, 바쁠 땐

스크럽 액팅업무로, 다양한 행정 업무 등등-

업무범위가 늘어난 만큼 일도 많아졌지만

25년째 근무할 수 있었던 이유,

스크럽간호사로 더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


그건 바로

나이와 상관없이

제가  쓰임이 많을수록

꼭 있어야 할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 믿음이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면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앞으로 스크럽 간호사로서 저의 직장생활은 계속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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