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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백하 Jun 26. 2024

<너와 나>보다는 <비상선언>이 낫다

정치 사기꾼의 영화

  내게 누군가 <비상선언>이라는 영화를 좋아하느냐 물으면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비상선언은 적어도 <너와 나>보다는 나은 영화이다. 왜 그런가?


 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소재에서 정치를 표백시킨 결과물이 <너와 나>라는 영화라고 주장한다. 일단 나는 이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故 이선균 배우를 주연으로 한 한국 영화 <악질경찰>을 제외하면 영화에서 세월호란 소재가 다뤄질 떄 정치적 맥락이 배제된 적이 없었다. 이것은 너와 나라는 영화도 예외가 되지 않는 중요한 사항이다.


 어떠한 영화 평가를 할 때 감독의 인터뷰를 계속해 인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냐 하면 배격되는 걸 넘어 무시돼도 상관없다 하겠다. 그럼에도 어떠한 논지를 전개하는 데에 있어 쓸 수 있다면 나는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적당히 윤활유로 쓰는 경우가 가장 많겠으나 너와나는 좀 다른 경우다. 여기서는 감독이 영화에서도, 영화 밖에서도 동일한 사기극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잡고 그것으로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함은 필연적으로 소수성을 담보로 하는 것이며 동시에 반드시 정치성 역시 띄게 된다. 무슨 동성애는 지극히 당연한 건데 여기에 무슨 정치가 있냐는 질문이 있겠다. 조현철 또한 "나한테는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라며" 비슷한 어휘를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저 말 앞에 하나 붙은 발화가 있다. "이게 남성과 여성의 사랑 이야기였으면 질문이 나왔겠냐고." 이 발화는 그 자체로 사회적인 이슈를 꼬집는다. 정치적인 영화라는 것을 조현철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비슷한 질문이 나온다면 여기는 한국이지 어디 서유럽, 미국이 아니라는 짧은 대답으로 끝내겠다.


 그리고 차기작으로 5.18과 4.3을 다루겠다고 조현철이 말한 바가 있다. 이 맥락에서 나는 조현철이 세월호 참사를 국가 폭력이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정치의 시각을 기본적으로 깔아두고 간다.


 너와나와 그 사건에 대한 정치성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는 이전에 작성한 글을 참고해주시길...

https://brunch.co.kr/@pollination/11


 여튼 결론은 다음과 같다. 너와 나는 분명히 세월호와 관련된 정치적 맥락 위에 놓인 영화이다. 이 영화가 정치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너와나가 비상선언보다도 못한 영화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단 비상선언 역시 노골적으로 세월호를 다루는 영화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가자. 너와 나에서 친절하게 안산역을 짚어주고 수학여행을 짚어준 것처럼 비상선언도 친절하게 교복을 입은 학생을 보여주고 영화 결말부에서는 항공 사고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항구를 보여준다.


 비상선언은 모 정부 당시 있었던 사고에 대한 일종의 대체적인 역사를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 정부는 당시 정부가 보여줬던 대처에 비하면 매우 우수한 것으로 가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까지 있겠다. 항공기 재난 속에 놓인 정부라는 이야기 속 가상의 정부를 통해 이랬으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종의 추모의 접근. 이 자체는 괜찮은 시도라 본다.


 모 평론가가 '전체주의적'이라고까지 비난한 마지막의 승객들의 희생 시퀀스. 어줍짢은 사회 실험을 보는 듯하기도 해 그 본질이 완전히 파괴돼 보이기도 하나 사실 여기서 사용되는 방식은 너와 나에서 두 소녀가 쓰인 방식과 유사하다. 소수자로써의 유가족, 그리고 사망자.


 영화는 재현 영상이나 모형으로 착각될 정도로 줌을 당긴 오프닝으로 시작해 뉴스 화면을 연상시키는 비행기 전체를 비추는 부감으로 사건의 막을 내린다. 생존했다는 기내 승객들의 모습은 마치 환상과도 같아 이것이 대안으로서의 성격만을 띌 뿐, 항구에서의 비극, 즉 현실에서의 그 사건을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두 영화는 결말에 있어서 다른 길을 걷는다. 비상선언에서의 반동 세력을 보자. 일본 자위대가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다. 종합하자면 바람직한 정부에 대립하는 어떠한 보수 세력의 편린들이다. 영화 내에서 묘사되는 여성 정치인은 실존하는 어떤 정치인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실존 인물이 생각나는 비주얼.)


 반동인물과 세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 사건은 영화가 만들어낸 '대안적 환상'과는 달리 처참한 죽음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영화 말미의 항구에서의 추모는 그 자체로 엄청난 정치적인 요구가 될 수밖에 없다. 추모를 하시게 그것이 그들과 맞서 싸우는 방법이니...


 반면 너와나는 완전히 반대이다. 어떠한 정치적 요구도 요구하지 않는다. 비상선언과 똑같은 정치적 전제를 깔아놓고는 '내가 너를 사랑했으니 너도 날 사랑할거야.'라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확장시켜 이 사건이 완전히 종결됐다는 듯이 끝을 맺는다.


 이런 식으로 끝내면 그 사건을 가져왔음부터 문제가 된다. 정치를 배제할 수 없는 사건을 들고 와서 그 정치적 시각에 기초한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뚝? 이건 막말로 개죽음에 대한 묘사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연출 자랑, 상징 자랑... 이건 평단에 구애하는 몸부림이자 노골적이고 역겨운 사기이다.


 <비상선언>은 누가 뭐래도 실패한 영화다. 영화 후반부의 이야기는 너무 무리한 감이 있고 결국 절대 다수의 관객들에게 오히려 혼란만을 안겨준 영화이다. 대중성의 문제가 아니라 엄밀하지도 기발하지도 못한 구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진보 성향의 그런 사이트들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찾아가보니 개뿔이나 거기서도 제대로 된 호응 한 번 받지 못했다.


 나는 두 영화가 깔아둔 정치적 의식에 찬동하는 사람이 아니고 두 영화의 이야기에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도 딱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태도는 평가할 수는 있다. 비상선언이 단지 실패한 영화일 뿐이라면 너와나는 사기꾼의 영화거나 상상 이상으로 나이브한 성격의 영화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둘 중 어느 쪽도 곱게 보지는 못하겠다.



(2024년 5월 30일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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