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잡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백하 Oct 14. 2024

체리향기 – 벽으로 감정 묘사하기

映畵 이미지 1.

 벽이라는 것은 단절을 묘사하는 데에 유용한 사물이다. 당연하지만 유리는 여타 사물과 달리 유리만이 가진 투명함이라는 성질을 가진다. 그러므로 유리로 이뤄진 유리벽은 벽 너머 물체를 볼 수 있는 투명성을 보장하나 동시에 단절을 표현할 수 있다는 특수성을 가진다.

 다음은 영신 키아로스타미의 명작 체리향기다. 


#1

 자살을 결심한 한 남자는 자신의 자살을 도와줄 이를 찾고 있다. 그가 원하는 자살 조력이란 밤에 수면제를 먹고 한 구덩이에 들어가 있을 테니, 자신이 죽었으면 나가는 걸 도와주고 죽었으면 흙으로 덮어달라는 내용이다.

  남자는 경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비원은 벽으로 들어가고 남자는 흙더미를 바라본다. 결국 흙 속으로 들어갈 자신의 처지를 미리 봤다는 듯.


 자살을 결심한 남자는 경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나 동시에 벽으로 유리돼 있는 상태이다. 흙먼지로 뒤덮인 유리벽 너머는 죽음의 영역이라 볼 수 있다.

 

 유리벽을 빙돌아 한가지 경비원에게 말을 건낸다. “혹시 나랑 드라이브할 생각이 있느냐.” 알다시피 드라이브라는 건 자살을 도와달라는 죽음에 관한 제안이다.


 남자가 유리벽 앞에서 맴돌았음에서 인물이 자살 조력을 부탁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음이 묘사되었다.


 경비원의 거절로 드라이브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자 남자는

 다시 흙먼지의 세계로 돌아간다.

 

#2

 아프간에서 온 유학생에게 남자는 자살 조력을 제안하나 유학생은 자살이 꾸란에 제시된 죄악임을 들어 제안을 거절하고 그에게 자살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유학생은 자신의 친구가 오믈렛을 했다며 같이 식사하자고 남자에게 제안한다. 남자는 자신은 계란 요리가 싫다며 그의 청을 거절한다. 이때 유학생과 남자의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는 아직 이승에 남을 생각이 없다.
 

 그렇게 남자의 공간은 황무지로 떠난다


#3

 본인의 직장인 박물관에 가는 노인은 남자에게 자살하지 말 것을 강권하나 그럼에도 병원비를 이유로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노인을 박물관에 내려주고 갈 길을 가던 남자는 무언가를 문득 생각해내고 다시 박물관으로 향한다.

 남자는 유리창 너머 매표소로 노인이 일하는 곳을 물어본다. 유학생이 질문의 주체였던 #2와 달리 이번에는 주인공이 문답의 주체가 된다. 또한 삭막한 바깥 풍경 대신 순서를 기다리는 밝은 인상의 여성이 남은 여백을 차지하고 있다.

 

#4

 #4에서 묘사되는 유리벽은 #1과 유사하다. 하지만 남자의 태도는 다르다. 공간을 단절시키는 유리벽을 돌아 말을 건넨 첫번째 장면과 달리 유리벽과 수직으로 마주본다. 그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남자는 노인을 불러내 한가지 부탁을 더 얹는다. 혹시 내가 자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돌 몇 개를 더 던져달라고.


 이처럼 유리벽을 통해 인물의 태도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체리향기>는 유리벽 뿐만 아니라 주변의 풍경이 바뀐다든지 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니 이러한 방식에 주목해 보면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


(2024년 2월 26일에 작성됨.)

매거진의 이전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새로운 시대의 문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