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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드맥스 Jun 27. 2024

나는 영어공부하는 사람

- 게으른 사람의 영어 공부 이야기

나는 어쩌다 보니 오랫동안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영국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영어가 필요는 하지만 시험 같은 압박은 없고, 더 이상 공부를 하는 부담은 느끼고 싶지 않아 태평하게 공부 중이다. 별일이 없으면 영어공부를 하고 있긴 한데, 공부라는 게 또 별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프리토킹 레슨을 하는 정도이다. 


프리토킹이다 보니 딱히 숙제도 없고 일상 수다를 떠는 정도라 특별히 공부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말하자면 본인 하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사실 부담을 갖고 열심히 해야 맞지만 워낙 게으름에 무뎌지다 보니 아, 이거 지난번에 말할 때도 틀렸었는데 이번에도 틀렸네 하며 웃어넘기고 말아 버리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게으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랑비에 옷 젖듯 지금의 나는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또 프리토킹 어쩌고 하며 이렇게만 설명하면 나의 영어 수준이 엄청 대단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이런 방식의 영어 공부는 약 5전부터였다.

당시 남자 친구가 영국으로 2달간 출장 가게 되었고, 같이 가자  제안했다. 나는 프리랜서였는데 마침 그 타이밍엔 프로젝트도 없고 남자 친구의 흑심이 간곡했으므로 겸사겸사 영국에 같이 가게 되었다.


어차피 남자 친구는 평일에 일을 해야 하니 이왕 가는 김에 나도 어학원이나 다니자 싶어 약 7주간 British Council에 등록했다. 그 어학원은 정해진 입학 기간 같은 게 없어 레벨테스트 후 해당 레벨의 수업을 아무 때나 시작해서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끝내도 문제가 없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월 초 두 달 간격의 커리큘럼이 있긴 했지만 책이 있어서 못 배운 부분은 혼자 공부를 하던지 스스로 감수하고 본인 시간에 맞춰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나는 딱히 고민이 없었다.


한국에서 미리 온라인 레벨테스트를 하여 Pre Intermediate 레벨에 등록하고 7주간 주 5일 두 시간씩 공부하는 시간표를 짰다.

알파벳부터 외워야 하는 단계는 PRE A1 레벨에서 시작하고, 헬로 하와유 암 파인 땡큐 앤듀? 하는 정도만 하면 A2 레벨이라 보면 될 것 같다.

그나저나 나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영어학원을 전전하던 사람이었는데 왜 A2레벨을 받았나.

그동안 아주 그냥 대충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단 뜻이겠지.


*참고 : British Council English levels for adults

            -  A0/A1 English (Beginner/Elementary)...

            - A2 English (Pre Intermediate)...

            - B1 English (Intermediate)...

            - B2 English (Upper Intermediate)...

            - C1 English (Advanced)...

            - C2 English (Proficient)


어학원에 한국인은 나 하나였다. 삼삼 오오 친구들끼리, 엄마랑 딸, 남매나 자매 이런 식으로 같이 오는 경우가 많고 summer school class 같은 경우엔 방학을 이용해 초중고 학생도 많이들 공부하러 왔다.

아무래도 유럽에는 영어를 쓰는 국가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가까운 영국을 선호하지 싶다.

내가 속한 반엔 이탈리안 소녀 2명, 프렌치 할머니와 일곱 명 정도의 아라빅 친구들이 있었다.

기초회화 중심의 수업이어서 짝을 지어 연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처음 본 사람과의 역할놀이 공부는 너무 어색하기도 하고 영어 레벨이 낮아 손짓발짓해 가며 설명하느라 쉽지 않았다. 어차피 아는 사람 하나 없고 7주 후엔 집에 가야 하니 이판사판이다 싶어 무작정 보긴 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 친해지면 저들처럼 창피해도 까르르 웃어가며 재밌게 공부할 수 있겠지. 이리 창피하진 않을 게야.

이탈리안 걸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 봤는데, 몇 살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내가 중년의 나이를 밝히니 당황하는 눈치들이었다. 그들은 19, 20살이었다. 좋겠다.

소녀들이 다시 영어공부를 언제 시작했냐고 물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시험 봐가며 주요 과목으로 공부했다고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내 실력은 A2였으므로.

ㅎㅎ 그냥 제대로 기억이 안 난다며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다고 대충 말하고 얼버무렸다.


늦은 오후에 있는 영어교육 실습생들의 프리 레슨에도 참여해 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 친구들도 사귀었으며, 매일 간단하게 교환 일기도 쓰다 보니 얼레벌레 7주 코스가 지났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부한 느낌이다.

그리고 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공부 한 세월이 무색하게 나의 영어 능력이 A2였다는 사실도 당황스러웠지만, 고작 현지 어학원 회화 7주 코스의 결과가 비교도 안될 만큼 더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 효과적이라 느낀 이유는 말문이 트였기 때문이다. 못하는 영어로라도 더듬더듬 두려움을 극복하고 알고 있는 단어들을 기본 형식에 맞춰 조합하여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뭐 어렵냐고 생각한다면 직접 해 보시라 말하고 싶다. 백날 머릿속으로 알고 있고 4지선다는 맞춰도, 막상 하고 싶은 말을 즉석에서 말할 땐 가장 기본적인 문법조차 틀렸기 때문에 나는 A2였다.


어학원 로비에는 간단한 비스킷과 티가 준비되어 있어 쉬는 시간에 티타임을 가지며 모르는 사람과도 얘기를 하기 좋았다. 거기서 당시 영어교육 실습생이었던 현재 나의 영어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영어로 떠들어 대는 게 얼마나 효율적인 영어학습인지를 깨달았으므로 떠나기 직전 그분에게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밝혔다. 로비에서 티를 마시며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고 선생님의 대답은 OK였다. 선생님의 이메일을 받아와 구체적인 수업 시간이나 비용을 이메일로 정했다.

선생님은 자격 취득 전인데도 용돈 벌며 teaching training 할 수 있어 좋고, 나는 쉽고 저렴하게 네이티브 선생님과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 (선생님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몇 개월 후 자격시험에 통과했다)


개인 레슨 전 선생님이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영어공부의 목적과 목표, 원하는 공부 방식, 취미, 관심사 등등의 질문이었다.

나는 영국에서 친구를 사귀고 싶고, 그럴 때 일상 대화를 큰 고민 없이 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힘들게 공부를 하기는 싫었으므로 특별한 교재없이 선생님과의 일상 대화를 통해 내 틀린 문장들을 고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간단하게만 말하는 건 괜찮지만, 깨진 문법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간략한 인터뷰 이후 프리토킹 영어 레슨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은 입을 떼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3분 분량의 자기소개를 미리 준비해서 읽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했다.

한국말로도 어려운 그 자기소개를 무려 3분 분량으로 준비하라니... 다시 성찰의 시간이 돌아왔다.

- 아, 나는 모국어도 모자라는구나.


애초에 회사에서 업무를 위한 소통이 아니라면,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경험치가 너무 낮았다. 그냥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제대로 하는 것은 달랐다. 취직용 자소서나 써봤지, 처음 보는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는 경험이라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있기는 했을까.

애초에 친구 사귀기 목적의 영어공부인데, 이래선 한국말로도 친구를 사귈 수 없는 상태였다.

어린아이 같이 최대한 단순하게 내가 요즘 제일 관심 있는 것, 가장 하고 싶은 것 등을 짧은 단위 문장으로 만들어봤더니 할 말이 좀 생겼다. 그렇게 꾸역꾸역 첫 수업을 마쳤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모국어가 아닌 이상 성인이라면 일단 모국어로 내 생각 표현하기부터 훈련되어야 제2 외국어가 쉬울 것 같다. 


처음엔 영어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입이 안 떨어지니까 시키지 않아도 수업 때 할 말을 미리 준비해 갔다.

우선 하고 싶은 말을 틀린 영어로라도 어떻게든 종이에 적어 가져가거나 외워갔다.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거냐, 저런 거냐 다시 확인하고 문장을 문법에 맞게 고쳐주며 내 얘기에 대한 질문을 했으며 내가 대답을 하면 선생님은 또 고쳐줬다.

처음엔 영작 자체가 너무 어려워 각종 번역기를 사용해 보기도 했는데, 번역기로는 일단 의도하는 문장을 만들기가 어려웠으며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내가 만든 문장이 아니니까 당연히 영어공부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단순하고 짧은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답인 것 같다.

내가 내린 결론은 영어 능력이 바닥이어도, 아무리 창피해도 내가 얘기하고 싶은 얘기를 교정해 줄 수 있는 선생님과 무작정 자주 말하는 것이 영어회화의 비법이다.

말하기 레슨 경험이 쌓이면 실제 능력치와 별개로 자신감이 생겨 마구마구 떠들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떠들면서 문법 교정이 많이 되고 자연스럽게 듣는 귀도 생긴다. 스스로 말하면서 본인의 발음도 듣게 되고 선생님 발음도 들으니까 차이를 반복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pronunciation, intonation and accents도 공부가 된다.


7주간의 어학원을 통해 얻었던 자신감이 어마 무시 했었는지 겁이 없었는지.. 나는 반년 후 결혼과 동시에 영국으로 이사를 와 버렸다. 아직도 영어공부는 지속 중이다. 코로나 이후로는 온라인으로만 레슨을 받는데 이제 선생님과는 친구가 되어 레슨이 마치 친구랑 화상채팅 하는 느낌이다.

나는 너무나도 태평해서 게으른 영어 공부를 했지만, 그래서 지속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가며 쓰다 보니 다시 자극이 된다. 영어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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