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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Jul 09. 2024

소설가 지인이 생긴다는 건 3

‘소설 많이 읽지 말라’는 작가 친구 

  소설가 지인에 대한 관심은 소설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끔은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한다. 소설가들이 남긴 소설 잘 쓰는 법 강의, 웹소설가 데뷔 30일 완성 등과 같은 유튜브 콘텐츠를 클릭해 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설을 읽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신춘문예 작가들의 신작, 문학상 입상작들을 찾아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문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원초적인 궁금증을 해소해보려는 시도다. 

 ‘이 정도는 써야 평단의 호평을 받는구나’, ‘이 정도 섬세하게 써야 하는구나’와 같은 감을 잡아보기 위해서.


  개념서를 보기도 전에 기출문제부터 들여다보는 수험생의 얄팍한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반성도 조금은 한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잘 썼다고 생각하는 소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볼 수밖에 없다.     


  단편 십수 작품을 읽고 든 공통의 감상은 ‘단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라는 것이다. 

  겉면에 우둘투둘한 생채기 하나 없는 ‘잘 빚은 도자기’ 같은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장치, 인물, 배경, 스토리들이 정제된 이야기가 많았다. 

  때론 너무도 깔끔한 무균실에 들어온 것 같은 낯선 감정이 들기도 한다.


  소설을 쓰는 어떤 규칙과 공식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보기도 한다. 

  기승전결이 너무도 확실하다. 모든 인물과 복선들이 아주 정교하게 배치돼 독자들의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킨다. 설계도가 있는 정교한 건축물 같다는 느낌도 들고, 스타 작가의 장르물 드라마 대본 같다는 생각도 든다. 



  2023년 이효석 문학상 대상 수상작 ‘애도의 방식’. 

  한편의 웰메이드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기 전 거대한 관계도를 그려놓고 치밀한 계획단계를 거친 후 작품이 집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결국 나도 이렇게 해야 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 


  심사평도 “딱히 단점을 찾기 어렵다”라고 호평하고 있다. 소설 초년병에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풀 메이크업 정장을 아나운서의 도도한 눈빛이 그려지는 작품이었다.(이 작품이 별로였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님.)

  

  정리해보자면 요즘 작품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처음 기획단계부터 많이 읽혀야 한다는 일념하에 기획된 넷플릭스 시리즈 한 편을 본 느낌이 들었다.     

  

  학창시절 읽었던 한국 현대 소설들과 요즘 작품들이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런 완벽함조차 이뤄내지 못한 내 질투심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아직 소설에 대해 무지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틴에이저 시절에 내 안에 자리하던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를 나누고, 언더만이 순수 문학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일까. 소설 십여 권 읽고서 든 얼치기 감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직접 느끼고 보고 경험한 실체있는 감정과 상념을 글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허구’라는 소설의 요소를 간과한 탓도 있다. 내 것만을 쓴다면 역사소설, 추리소설, 판타지 등 수많은 허구 이야기들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에세이와 소설을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세이가 내 감흥들을 쓴다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강박은 소설과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가령 윤종빈 감독은 경험이 투영된 <용서받지 못한자들>을 데뷔작으로 올렸지만, <범죄와의 재구성>과 같은 장르물로 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좀 더 여러 작품들을 넓은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소설 쓸 의향이 있다면 요즘 작품들 읽으면서 흐름을 잡되 너무 많이 읽지는 않기를 추천. 네 안에 다 있을거야. 이야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소설에 대한 고민이 깊어갈 즈음 소설가 지인 B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기존 작품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표절 시비를 의식해 다른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B는 “(그렇게 읽다보면) 자꾸 단편 위주로 읽게 되고 독사가 분석이 됨”이라며 응원했다. 


  역시 선배는 그냥 선배가 아니다.       


  소설 쓰기는 객관식 아니라 주관식 서술 평가다. 기출문제를 보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다. 오히려 산 속에서 사람들과 차단된 채 절대 고독 속에서 수련하다 득음에 이르는 것처럼.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해야 새로운 무엇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마음 가는대로 써내려가 지는대로, 개요도 없이 설계도도 없이 그냥 시작해보기로 했다. 


  물론 장르 영화 같은 명품의 우아함은 없을지 모르지만 홍상수 영화와 같은 의식흐름의 자연스러움은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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