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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멀끔 Jul 16. 2024

죽여버리고 싶은 내 인생 13대 빌런들 2

대책 없는 어리광 삐침의 망나니, 잠색히 (1)

잠색히.


타입: 질척빌런


프롤로그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잠색히를 주저 없이 생활 속 제1의 성가신 악질 빌런으로 꼽을 것이다.


이 잠색히는 대책 없는 개망나니요, 어리광쟁이에 시도 때도 없이 지 멋대로라 나를 성가시게 하고 종종 당혹스럽게 하는 제1의 질척빌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엄청나게 큰 일을 벌일 정도로 크리티컬 한 막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줏단지 모시듯이 어르고 달래지 않고 대충 취급한다면 이내 거미줄처럼 복수의 마수를 뻗쳐 전반적인 나의 모든 생활요소들을 다크 하게 질식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성심껏, 잘만 대해준다면 뜬금없을 정도로 더없이 달콤한 보상을 해주기도 한다.

이럴 때는 정말 잠느님이고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 잠느님은 그 불가사의한 왜 그런지 설명도 잘 못할만한 마력으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가슴 졸이던 생각들을 한순간에 담대함으로 대할 수 있는 배짱을 주고,

우울한 감정에 지배당했을 때 뜬금없는 당당함을 욱여넣어 주며,


온 세상이 가볍고 홀가분하게 보이며,

무슨 일을 하든 초롱초롱한 몰입을 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불가사의한 내성 버프와 치유력으로 이 험한 세상, 여타 빌런들에게 대항할 수 있게 해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 인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지 멋대로이며 예민 보스이고 종잡을 수가 없다 것이다.


그리고 한번 수틀리면 잘 풀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카노사가 교황에게 무릎 꿇고 애원하듯 빌어도 눈하나 깜짝 안 하고 다음 날 모든 일들에 대해 어글장을 놓는다.


솔직히

아니 일이 바쁘다 보면 좀 소홀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세상 모든 만물들이 자기 편한 대로만 어떻게 매일 같이 살 수 있는가.


오랜만에 칼퇴를 해도 그 이후 얼마 안 되는 퇴근 후 휴식 시간인데 유튜브 좀 한번 늦게 까지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잠색히와의 약속된 시간을 어기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많아봐야 30분, 1시간 정도?


내가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좀 같이 사는 세상 이해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통근 시간 빼고 애들하고 놀아주고 밥 먹는 시간 빼면 정말 얼마 남짓 되지도 않는 시간, 좀 약간의 미련이 남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잠색히는 그딴 거 용납하지 않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비비안리보다도 더 새침한 질투쟁이에 삐침의 화신이다.


어 유튜브 보다 30분 늦었어? 응.. 계속 봐 그럼.

.. 아니야 미안. 인제부터 정말 집중해서 잘할게. 낼 출근해야 되니까 빨랑 맘 풀고 자자.

아니야. 유튜브 계속 봐.

.. 아니야 인제 잘 거야. 진짜 오늘 바빴는데 딱 30분 좀 늦었다.

응 걍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고 싶은 대로 실컷 봐. 바이바이.


그러고서 차갑게 등 돌리고 떠난 자리에는 공허한 갑갑함과 지루함, 초조함만 횡댕그래 남는다.


이건 나중에 유튜브를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떠나간 잠색히의 빈자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게 된다.


그뿐인가.

그냥 순순히 떠나는 것이 아니다.

억하심정으로 온갖 구석구석 짱 박혀 있던 심연의 하이에나 같은 고민 빌런들을 어둠 속에서 소환하고 시종일관 텅 빈 그의 빈자리에서 이것들이 난장판의 유희를 즐기게 하고서는, 총총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다음 날은 더 가관이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기분을 가라앉게 하고, 딱히 인과관계를 따질 물증은 없지만 온갖 일들을 수틀리게 해 놓고, 그동안 주었던 모든 축복과 에너지들을 싸그리 압수해 간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니 지가 그렇게 떠나 놓고선 시도 때도 없이 본격적으로 집요하게 질척대며 성가시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잠색히의 처절한 앙심의 복수인 것이다.


어젯밤은 그렇게 구걸을 하고 용서를 빌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놓고선, 정작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커피를 들이켜면서 화를 내고 쫓아버리려 해도, 세수를 하면서 달래도 보고, 잠깐 화장실에서 순간 타협을 해보려 해도,    


이 잠색히는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목덜미부터 뒤통수까지 철퍼덕 덮어 끌어안고 끊임없는 질척댐으로 사람을 진을 빠지게 한다.


회의 때도, 중요한 대화를 할 때도, 스터디에 집중해야 할 때도 아 쫌 지금은 아니라고!! 절규를 해도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진짜 내가 그렇게 뭘 엄청난 걸 잘못한 거냐.

이 정도의 징한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무슨 패륜을 저지른 거냐.


따지고 보면 잠시의 유혹에 빠진 건 내 잘못이긴 하지만, 다시 발 빠르게 돌아가서 진심을 다해 어르고 달랬는데 매몰차게 떠나가 버린 건 본인 아닌가.


게다가 다음날도 이 잠색히의 기분이 풀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유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별 짓을 다해도 그냥 어느날 본인 맘이 좀 수그러들어 풀릴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려야 한다.  


솔직히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잠색히만 조금만. 조금만 더 너그러웠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하루의 시간을 내 맘대로, 계획대로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고작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본인을 등한시하는 게 괘씸했다면,


자신하건대 건설적으로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했었을 것이며, 고요한 나만의 시간에 자기 계발도 폭발적으로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퇴근하고 밥 먹고 차 떼고 포떼고 하면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남짓이다.

잠색히는 그딴 거 알 바 없다.


7시간을 오롯하게 풀로 자신에게 할애해 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삐쳐버린다.


그렇다면,

이 사상 최강의 스몰마인드 쫌탱이 같은 10대 소녀 감성 같은 잠색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폴레옹처럼 피나는 수련을 통해 스스로를 초인화 시켜서 4시간만 자고도 생기 넘치는 생활이 가능하도록 당당하게 잠색히와 맞서 굴복시키는 것. 처음엔 좀 힘들겠지만 성공만 한다면 나는 엄청난 시간적 여유와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둘째는 평생의 동반자라는 마음으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어린 딸을 보살 피듯 진심을 다해 아껴 보듬고 캐어해 주는 것이다. 좀 억지스럽고 갑자기 제 멋대로인 때가 있다 해도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빠짝 긴장하여 얇은 와인잔 같은 이 소녀감성 녀석이 깨지지 않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정성을 다해주는 것이다.


물론 소소한 몇몇 행복은 포기해야겠지만.. 그것이 순리라면 잠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순종하고 섬세하게 섬기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했다.


아 잠깐. 이거 쓰다보니깐 벌써 열한시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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