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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멀끔 9시간전

죽여버리고 싶은 내 인생 13대 빌런들 3

성모인가 쌩양아치인가, 애증의 그 이름. 잠느님 (2)

지난 편에서 잠색히 욕을 하도 해서 나름 미안한 맘에 그 와중에도 일곱 시간을 꾸역꾸역 채워서 잤건만,


오늘도 이 자식은 뻔뻔하게 오후 두 시부터 뭘 또 더 달라고 들러붙었다.


아후.. 대책 없는 색히. 몰 얼마나 더 챙겨줘야 하는 거야.


이 잠색히의 빌런력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점이다.


나름 미안하다고 충분히 각 잡고 어쩌다 주말 같은 때 막 열 시간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줘도,


그럼 땡큐 이러는 게 아니라 어라, 이렇게 해줄 수 있는 거였어? 하면서 더 더 많은 시간으로 상향 평준화를 시켜 되려 뻔뻔하게 요구를 한다.


이럴 바엔 진짜 독하게 나폴레옹처럼 너 임마 앞으로 4시간에 니가 적응해 이러고서 오뉴월 개 잡듯이 후드려 잡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문득 우리의 추억이 생각난다.



돌이켜 보건대 내 인생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답이 없다 했을 때 다시 나를 일어서게 해 준 것은 그 어떤 조언이나 위로도 아닌 이 잠색.. 아니 잠느님이었다.


정말 어떡하지 가슴 졸이며 그냥 가만히 있는 것조차 힘들었을 때, 이걸 어떻게 풀지 도대체 답이 안 나올 때 이 애증의 잠느님은 말도 안 되는 순식간의 마법으로 나에게 담대한 뚝심과 배짱을 주고 느닷없는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현실이 너무 가혹할 때, 리셋을 하고 싶은 도피욕이 생기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으나.. 잠느님은 그 비슷한 것을 해준다.

이것이 잠느님의 궁극의 필살기다. 세미 리셋 같은 큐어.


어제까지 정말 지옥 같이 느껴지던 상황을 잠느님은 한방에 별거 아닌 에피소드쯤으로 치환시켜 버린다.


물론 공짜는 없다.


불건하게 술이라는 꼼수를 써서 억지로 잠느님을 강제 소환한다던지, 적당히 대충 누워있는 시간만 때우자는 마인드로 그를 대하면 아주 냉소적인 티끌의 적선만 해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묵살하고 노예처럼 일방적으로 막무가내로 길들이기에는 사실 빌런 타이틀을 달기에도 숙연해지는 마더 테레사이자 안식의 마리아 같은 면모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몰빵해 버리면 대책 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쌩양아치 같은 면모도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이 잠이라는 녀석을 잠색히도 아니고 잠느님도 아닌 내 인생의 파트너로 생각하기로 했다.


좀 까칠하고 호불호가 강한 파트너지만..

어쨌든 좋든 싫든 평생을 함께 해야 하고, 나름 중도를 지키되 성의 있는 신의를 표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확실한 피드백을 주는 녀석이기도 하니.


어쩌면 이 잠색, 아니 잠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더 절제를 하지 못하고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인생이 유한하기에 우리는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본능적 긴장을 하듯이,


잠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의 짧디 짧은 남은 유한한 시간을 더 최선을 다해 값지게 보내고자 하는 욕망과 텐션을 유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잠은 내 시간을 강탈해 가는 날강도가 아니라 내 행복한 일상의 일부다.

 

지금까지 억지 춘향처럼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마지못해 대했다면, 이제는 진심을 담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기꺼이 너를 부둥켜안고 행복한 동반을 하기로 하자.


세상 모든 슬픔도 고뇌도 번잡스러운 신경 쓰임도 합법적으로 당당히 묵살할 수 있는 시간이자, 


순수한 無로 가득한 고요의 바닷속에, 


태아처럼 평온하게 온몸을 깊숙이 맡긴 채 그 태초의 행복에 마음껏 잠식되어 보자.


잠의 그 장엄한 애정 어린 안식의 품에 푹 안겨보자. 




*다음편 예고

희대의 야바위 빌런.

온갖 감언이설 펌핑은 다해놓고 다음날이면 내가 언제? 통수치고 튀어 생고생 시켜놓고,


담부텀 상종을 안한다고 학을 때고 한동안 있으면 '왓썹두드' 하면서 스믈스믈 어깨동무를 하며 친한척 다가오는 후안무치의 달인..


질척빌런계의 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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