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씨 Jul 25. 2024

떨지 않고 발표하기

"우리한테 이야기하듯이 말해보세요"

  내가 남들 앞에서 말할 때 긴장을 한다는 걸 알아챈 건, 초등학교 때부터다. 학창 시절, 자리에 일어서서 대답할 때도 앞에 나와서 말할 때는 더욱 말할 수 없이 긴장되고 떨렸다. 고등학교 3학년 '차렷, 경례' 두 마디를 해야 하는 부반장을 맡았을 때, 매 수업시간 너무나 신경이 쓰여서 학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해야 하는 일이 없었던 전업주부 생활이 지나고, 재취업을 하겠다고 나간 교육장에서 했던 자기소개시간은 그 전날부터 긴장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의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목소리는 물론 손까지 떨렸다. 발표가 끝나고 나서도 진정이 되지 않았고 집에 가서야 한숨을 돌렸다. 사춘기 딸아이까지 앞에 세워놓고 PPT시뮬레이션을 수십 번을 해봤어도 현장에서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취업을 하겠다고 나선 오리엔테이션 즉석 자기소개 시간엔 더 가관이었다. 마이크가 주어지자 마이크에 진동이 온 듯 어찌나 떨리던지, 다음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길 때 반대편 손으로 붙들고 전해줘야 할 지경이었다. 이 나이에, 남들 앞에서 해야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떨고 있는 내가 창피했다. 세월이 흘러도 어쩜 대중 앞에서 발표를 할 때 떨리던 습관은 그대로인지, 짜증이 났다.



'별 수 있나. 배워야지'

나의 특기인 ‘배움’을 이용하기로  했다. 현직 아나운서가 강의하는 스피치 강좌를 신청했다. 발성이나 제스처도 도움이 되었지만 긴장을 푸는 방법을 배우는데 집중했다.


목과 어깨 근육 긴장 풀기
안면 근육 지압하기
양 뺨 부풀리기
입술 풀기
입술 오므리고 돌리기
구강 마사지
똑딱 소리 내기


맹연습을 해봤지만, 이걸로는 부족한 거 같아 또 다른 스피치 강사님의 강좌를 수강했다.

대기업 임원들 스피치 강의에도 나간다는 강사님이 추천한

 '발표전 긴장 푸는 법'은 세 가지였다.


1. 깊은숨 들이마시고 내쉬기

2. 입술 부르르 떨기

3. 양쪽 귀를 잡아당기기


교육 프로그램 수료식 자기소개 프레젠테이션이 있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숨을 쉬며 입을 부르르 떨고 귀를 마구 잡아당기던 여자'를 보았다면 바로 나다. 멀쩡하게 생겨서 혹시라도 걱정시켰다면 죄송하다. 이상해 보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교육장까지 귀가 멀쩡한지 확인하며 동작을 반복했다. 하필, 교육장은 왜 이리 크고, 수강생들은 또 유독 왜 이리 말주변이 좋은지. 수강생들 중엔 현직 강사들까지 대거 포함되어, 나는 거의 자포자기했다. 매도 먼저 맞았으면 좋았으련만, 발표는 왜 또 거의 맨 뒤인지..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내려놨다.



이런 내 상태를 알아챘는지, 우리 팀원 중 한 분이 말을 건넸다.

그냥, 우리한테 이야기하듯이 말해보세요


이상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러면 되겠구나'하면서 모든 게 ‘괜찮다’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발표하면서 떨던 나를 향해 말해줬던 지인들의 응원의 한마디들이 스치듯 생각이 났다.


그래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믿어보자'

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이 호명 됐을 때, 잠시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이름을 말하며 시작했다. 그리고 PPT화면을 보면서 나의 지인들 앞에서 이야기하듯이 말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발표내용을 외워서 말할 땐 그렇게 긴장되더니, 다 내려놓고 이야기하듯 말을 시작하자 여유까지 느껴졌다. 두서가 없었지만 PPT화면을 보며 설명을 했고, 청중들의 반응을 봐가며 즉석 해서 생각나는 것들을 추가로 말하기까지 했다.


이 프로그램은 ‘글쓰기'가 목표였지만 나는 '말하기', 정확히는 ‘떨지 않고 말하기' 목표를 달성했다.



“강사님처럼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나의 질문에 어느 강사님이 답을 해주신 적 이 있다. 그건 '자존감이 높아지면 저절로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군가 나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해주면, 그럴 리 없다며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는 잘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는 말을 직접 글로 썼으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표가 끝나고 팀원들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강사의 자질을 타고났다며 호들갑스럽게 치켜세워주는 분까지 계셨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격려와 칭찬에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던 나는,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당신은 재능 있고 유능하며 혼자가 아니다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는 적어도 그러하다.

https://youtu.be/ZQUxL4Jm1Lo?feature=shared

TED-Ed   -Elizabeth Cox- [가면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작가의 이전글 청춘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