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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대 Nov 23. 2024

창헌류 3단으로의 여정

김재훈 태권도 본관, 보스턴에 심사를 보러 가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가을 단풍이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큼 빨리 지나가버렸다. 나에게 겨울이 찾아왔다는 순간은 도장의 바닥이 차갑게 느껴지는 때부터다.

겨울이 시작되고 그때부터 한참 뒤인 올해 10월 초로 3단 심사자로 선정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승단을 한다는 것에 대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간이 멀기도 했거니와 3단이라는 상징성에 비해 나 자신의 동기부여가 다소 주춤해지고 있던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향후 진행될 수련 프로그램은 다소 다른 방식이다. 늘 여러 번 듣고 유추해야만 하는데 설렉트 프로그램이라고 들리면 'selected'의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특별수련기간이라고 하여 기존과는 다른 집중훈련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피스'동작이라고 들린 'pierce'동작을 유추해 내는 것은 내 몫이다. 창처럼 곧바르게 질러 마지막에 목표물을 관통하여 부순다라는 의미가 맞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우선 영상으로 3차례 심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기존에 알고 있던 3단 품새들을 보다 수준 높게 단련해야만 했다. 운동이란 것을 오랜 기간 하다 보면 새로운 동작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게 마련인데, 창헌류의 수련과정은 되돌이표 같다는 느낌이다.


했던 동작을 무조건 여러 번 한다고 늘리는 만무다. 한국말을 40년 넘게 쓰고 쌀밥을 몇 톤이나 먹었다고 해도 내가 한국어와 밥 짓기의 전문가가 아니듯 이러한 과정은 마음부터 깨 부숴야 했다. 지겹다고 생각하여 중도포기하는 사람들이 딱 많을 만한 그 시기인 것이다. 물론 첫 번째 승단을 하면 도복이 바뀌고 띠의 색이 바뀌는 큰 변화가 생겨나기 때문에 자부심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게 된다.


내 느낌의 통계로 봤을 때 10명 중 단 1명 정도가 단의 세계에 입성한다. 그리고 2단 수련과정에서 힘이 빠져서인지 어려워서인지 개인의 사정 때문인지 여러 가지 그만둬야 할 명분을 내세우고 이들과 내적 갈등을 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은 그 1명을 다시 10명이라고 했을 때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쨌건 가장 큰 관문은 넘었으나 2단과 3단의 사이는 사실 그보다도 더 적은 듯하다.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수련기간이 필요하며 그만큼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또한, 내 경험상 이것은 스스로의 명분도 만들어야 하고 그 다짐으로 행위로 나타나져야 하는 고독한 시간이다. 성인 태권도장은 무도를 수련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들과 단톡방을 만든다거나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나는 선뜻 그런 제안을 하기도 받아들이는 것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을 보고 내가 도장을 다니고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하나의 다짐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어떤 무술이라 할지라도 창시자는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또한 그 과정에서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태권도의 기술이라는 것도 앞에 나를 상대해 줄 수 있는 누군가와 몸을 부딪혀 가며 만드는 것이고 이에 대한 열띤 토론과 개선과정을 거쳐야 하는 연구개발 과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도라는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깊은 내면적 성찰과 깨달음을 얻은 후에서야 이를 명명할 수 있는 하나의 유무형적 형태로 정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단이 높아질수록 고립되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창헌류는 더 많은 대련과, 이에 버금가는 내적 수련의 범위와 깊이가 방대하기 이를 데 없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성향대로 시작은 했지만 2단을 넘어서는 과정은 그 개인의 취향이나 능력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창헌류가 알려주고자 하는 진실의 문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나 다름없는 3단 수련의 과정은 사범의 일방적인 지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혼자서도 이루어 낼 수 없다. 선구자는 이를 다 생각하고 고려하여 평생에 이루어야 다다를 수 있는 그 끝으로 가는 길을 뒤따라오는 이들이 방황하거나 실족하지 않게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다는 위안이 들었다. 이미 취미생활이나 건강의 목적이 아닌 함께 이 길을 가면서 고민했던 사형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떤 분야를 골몰하다 보면 나와 같은 길을 갔던 스승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스승의 스승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당시에 같이 수련하던 사람들은 뭘 먹고, 입고, 생각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좌절했을까. 그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급기야 홀린 듯 그 현장에 가보고야 마는 것이다. 여행을 갈 때에도 여행지의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하고 가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들린다. 연초까지만 해도 보스턴은 미국 어딘가에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먼 곳이라 생각했다.


3번의 영상심사를 마치면서 1년간의 특별프로그램을 마치는 시점엔 나의 동작들은 좀 더 힘이 있었고, 절제가 되어 있었다. 2단 시절보다는 말이다. 쉽게 얻어지지 않는 무언가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들고 마침내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러 가는 비행기를 타고야 말았다.


도장에서 함께 떠난 동료들은 Alberto, Thomas, 그리고 Richard였다. 우리는 실제로 서로를 그렇게 부르고 난 Daniel로 불렸다. 3단 심사는 나와 Thomas, 1단 심사는 Richard가 본다. Alberto는 순수하게 발현된 창헌류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으로 함께 보스턴행을 결심했다. 물론 하버드대학의 모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 우리를 도착 첫날부터 smithsonion 천문연구실에 데려가 준 것도 Alberto였다.


오래된 도시인 보스턴은 그 역사나 도시가 품은 지적 자원들을 고요히 숨긴 채 너무나 평온한 채 수백 년을 지내왔다. 창헌류의 유산이 간직된 성지에 어울리는 도시였다. 겸손하고 학구적이고 세련됐다. 그리고 배움과 나눔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미 높은 수준에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버드의 교정 투어를 신청한 탓에 본의 아니게 그 프로그램이 입학설명회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생각보다 하버드는 타 지역의 사립대보다 비싼 대학이 아니었다는 것도 놀랐지만, 교정이 너무 아담하다는 사실에 한국의 큰 대학들을 상상했던 내가 약간 속물같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도시 전반에 기숙사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이 도시가 하버드를 비롯한 MIT와 보스턴대학등의 명문대학교들이 어떻게 그런 학습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학교가 아닌 도시가 학생을 키워내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온 마을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올랐다.


기대하던 첫 일정날 오후에 방문한 김재훈보스턴 본관은 1층에 멋진 크로스핏 짐을 지나 2층일부와 3층을 사용하고 있는 오래된 빌딩에 위치하고 있다. 말로만 듣다가 실제의 장소에 가 보는 경험은 늘 새롭고 설레지만 이런 경험자체가 너무도 오랜만이라 신기할 따름이었다. 너무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쓴 것도 사실이다. 이미 오후수업이 한창이었고 도복으로 환복 후 수업에 참여했다. 도장매트가 깔린 수련장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태극기에 경례를 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군대 시절 행정반이 생각나긴 했지만 한국보다 더 태권도에 대한 예의범절을 기본으로 가르치고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해 나가면서 한국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본관의 분위기에 괜스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대략 50~60명이 한 수업에 동시에 참여하는 것도 멋졌지만, 내가 비로소 이 조직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첫 번째 인상이었다. 어떤 것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인간이기에만 가능한 일이다. 짧은 시간에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다소 무모할지도 모르는 근원에 대한 탐구심이다. 농경시대로 인해 수렵의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먹을 것이 저장되고 나니 여러 가지 탐구를 하기 시작했다.  도구를  만들어 보고 실험을 하면서 더 나은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 냈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지 않는다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 마냥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위해 인간은 기꺼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어딘가로 가고자 한다. 그 끝에 다다르면 보물이 있을 것도 아니지만 그 길에 던져놓은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커리큘럼은 동일한 시스템이기에 따라 하기에 수월했다. 50주년 기념행사와 맞물려 전 세계 지관의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무척 고무적이었다. 10년 20년씩 수련을 하면서도 각각의 해석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이다. 그분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최초의 태권도 원형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공통된 미션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매력들을 간직하고 있다.

짬을 내어 방문했던 보스턴 미술관은 소장품의 규모와 수준이 크고 높기로 유명한 곳이며 살바도르 달리의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감동도 훌륭했지만 김재훈 태권도의 창헌류를 눈앞에서 본다는 것은 유리관이 아닌 눈앞에서 살아있는 보물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총 관장님은 하루에 4번 정도의 정규수업을 직접 주관하신다고 들었다. 많게는 100 명가까지 수용이 가능한 광활한 도장의 규모도 규모이지만 연세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동작과 순간적인 파워를 겸비한 시범동작을 시연하고 계신 총관장남의 숨결 하나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 관장님이 늘 전하는 얘기 중에 첫 번째  레퍼토리는 청년 김재훈이 최홍희 장군을 처음 만난 장면이다.

“아래막기 한번 해보라우”


무언가 고급 기술을 보이고 싶었던 태권도 청년은 스승의 말대로 아래막기를 보여주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게 아니지, 허리를 더 틀라우”


하며 직접 보였던 시범은 오직 총 관장님의 기억과 이를 전해 들은 우리에게 상상으로 남아 있는 장면이다. 그때 온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총 관장님의 소감은 글로도 직접 남기시기도 했다.

보스턴 본관 첫 수업을 들어가자마자 아래막기를 하고 있는 타이밍 나에게 오셔서 ‘아래막기 한번 해봐’라고 하신다. 순간 등이 쭈뼛하고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만 전해 들었던 전설의 장면이 지금 나에게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그 말씀을 똑같이 하시면서


“이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더 빠르고 강하게 해야지……그래…. 옳지…. 좀 더 해봐”

“아참, 자네가 군포에서 질문 많이 하고 맨날 연구한다는 그 친구인가?”


  우리 지관장 님께서 부디 좋은 말만 해 주셨기를 바랐지만 한 명 한 명 다 기억하고 알고 계신다는 말이 진짜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보스턴 도장의 100명 정도의 인원의 이름을 정확하게 다 부르신다. 그리고 얼굴과 이름의 매칭이 아닌 그룹별 시연을 할 때 그들의 레벨에 따라서 최대한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배치를 매번 판단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다. 한마디에 모든 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돈되는 모습이 특수부대의 훈련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긴장, 절제, 절도, 예절, 열정이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첫날은 같은 승단심사를 보는 동료들과 인사하고 가볍게 그룹을 지어 돌아가면서 품새연습을 했다. 서로 보완해야 할 부분들을 알려주고 함께 가면서도 또한 경쟁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옆동료와 속도를 맞추지 못해 서두르다가 실수를 연발했다. 솔직히 말하면 교만한 게 굴다가 코가 납작해진 격이다. 한수 보여주마라고 생각하는 것이 들킨 것 만 같아 살짝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고 내가 이곳의 멤버라는 소속감에 뿌듯할 따름이었다.


첫날 저녁 교외로 나가 총 관장님이 추천하시는 '보스턴 소고기 맛집'을 갔다. 벤으로 약 30분 정도 이동했을까 빌딩이 사라지고 미국식 특유의 주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밤이 되면 돌아다니는 사람도 그럴만한 장소도 없다는 건 한국의 밤거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적막한 풍경일 것이다. 10인 테이블에 나눠 앉은 풍경은 사뭇 연회를 떠올리게 했는데 생각해 보니 어쨌건 승단심사와 함께 50주년 행사가 진행 중인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스타트에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옆에 앉은 외국인에게 말을 붙여봤다.


그의 이름은 'Michael' 맥주를 무척 좋아하게 생겼는데, 점잖을 빼고 앉아 있어 한 병을 아껴가며 먹는 중이었다. 보스턴 토박이였고 감자와 오징어 요리가 나오자 이게 진짜 보스턴음식이라고 엄청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사전 조사해 보니 보스턴은 랍스터와 클램차우더가 유명하다던데 얼마나 맛있냐 물어봤더니 솔직히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럼 진짜 보스턴이 대표할 음식이 뭐냐 했더니


 'It's Dunkin Donut'.


 어쩐지 공항을 내리자마자부터 매장이 보이더라니 시애틀에 스타벅스가 성지로 탄생되기 한참 전인 1946년 커피와 도넛을 적셔먹는 유행이 창시된 바로 그곳이 보스턴의 퀸시였다. 조크인 줄 알았더니 역사적 사실을 말한 것이다. 보스턴 사람들은 농담을 잘 못하는구나. 노잼이 매력인 곳. 도 닦기 딱 좋은 곳.  그래서 학문이 발달되고 무도의 성지인가.... 나의 뇌피셜은 제멋대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엉터리 분석에 신나 있었다.


한편, 메인메뉴 선정타임이 돼서 어여쁜 웨이트리스께서 굳이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뭘 먹을 거냐고 물어보길래, 나 또한 굳이 생선을 골랐다. 추어탕집의 돈가스 같은 건가 보다고 생각을 했다가 어지간한 미국 레스토랑에 고기와 생선을 같이 파는 이유가 고기를 안 먹거나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김재훈 총관님께 죄송하지만 전 연어를 먹겠습니다.라고 생각하고 소심한 반항을 저질렀다. 옆에 앉은 Richard가 한점 떼어서 주면서 서로 food sharing을 했다. 긴장을 해서인지 Michael이 노잼이라 그런지, 아님 던킨도넛의 이미지가 지배한 탓인지 솔직히 맛을 음미하기엔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고 본다.  스테이크보다는 역시 숯불이 맞는 것이다. 고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벤조프로필렌과 일산화탄소등의 발암물질을 함께 먹어줘야 강해지는 것이다.


둘째 날은 하버드 대학 교정을 투어 하는 시간을 가졌다. 창업자인 존 하버드 목사의 동상의 모델은 사실 진짜인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발부분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설 때문인지 구두촉이 황금처럼 빛나며 사진 찍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지나쳐갔다.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시설 중 미술관은 유명화가들의 진품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러나 다소 들쭉날쭉한 작품들의 큐레이션의 기준이 궁금하던 차 쓰여있는 설명을 보니 이해가 갔다. '이 작품은 하버드의 몇 년도 졸업생이자 현재 은행총재인  누구, 대기업 오너 누구, 정치인 누구, 사회독지가 누구, 펀드창업자 누구 등 미국의 상류층에 위치한 동문들의 기증품이었다.


하버드의 기금은 전 미국 대학 중 1위로 23년 기준 494억 달러이다. 한화로 70조 정도이니 학생들을 위한 등록금과 인프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리라. 성공한 선배들의 덕은 그저 부담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유산으로 이어지고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당연시하는 전통이었다. 존경심이란 것은 그렇게 이해할 때 느껴지는 것이다. 남이 설명해서 알려주는 존경은 일종의 세뇌와 우상화이지만 미술관을 지어 무료로 명작을 관람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버드대학의 위상을 알려주는 이것이 마케팅이고 진짜 교훈이 아닐까 하는 의미로 다가왔다.


본관에서의 세미나는 계속 이어지고 주말이 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그러나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화환이나 선물등이 쌓여있는 것이 아니라 수련생만 바글바글 있었다. 50년의 역사와 전통으로 이곳에 구성원이 된 이들이야 말로 이 행사에 걸맞은 꽃이요 선물이었을 것이다. 총 관장님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으신다. 간간히 오랜만에 뵌듯한 손님들과 인사도 하시고 일상적인 담소를 나누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승단심사는 고단자부터 진행되었다. 당연히 한국의 지관장 님들이 대부분 참여하는 5단 심사가 너무 궁금했다. 다행인 것은 전체 세미나에서 사전 시연은 필히 진행되었기에 실제 우리 군포 관장님의 품새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의 스승이 스승의 스승 앞에 있으니 스승의 2승이 되는 건가. 저 단계까지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수련을 해 왔을까. 또한 고민을 하고 동작을 다듬기 위해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 하나하나 분해해 가며 '빠르고, 세고, 정확하게'를 추구했을 것인가. RED SOX 시즌이 시작되면 티켓값이 수백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경기장 앞에 김재훈 태권도장은 수련생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창헌류 리그이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들 사이에서의 메이저리거요, 스타들인 그들의 품새는 사실상 돈을 주고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누구에게나 열려는 있지만 사실상 회전문인 셈이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일부이고 그 로비를 지나 수많은 층을 올라가는 보스턴 미술관처럼 각 층마다 둘러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을 각 층마다 반복해야 한다. 그 창헌류라는 건물의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도 안되고 지체해서도 안된다. 어쩌면 그 층에서 영원히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정확히는 반드시 올라가야지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각 층을 이해하고 여러 차례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다른 느낌이 들 수 있다.


예술품을 바라보고 감상하고 느끼는 것은 지식과 정보의 차원이 아니다. 기술자는 조각상의 소재와 연식과 가공방법과 보존상태등에 정확한 스펙을 분석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초 품새를 접할 때 우리가 동작을 외우는 것은 그러한 정보의 차원이지만 점차 같은 품새를 반복할 때마다 느낌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작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동작과 그다음동작이 이어지는 예술품의 가치에서 이해해야 한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층에서 굳이 떠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건물의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간다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건물관리인이신 김재훈 총 관장님은 그래서 수시로 꼭대기 층부터 로비까지 내려오셔서 쓰레기도 줍고 바닥도 직접 닦으시고 궂은일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창헌류라는 박물관 안에 소중하게 간직된 가치들은 이곳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갖고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난 어쩌면 회전문을 통과하지 않고 돌아 나갈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저 로비에 있다가 한두 층 정도 설렁설렁 둘러볼 요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난 어떤 책임감 같은 걸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깐. 창헌류를 하는 성인태권도장에 내 돈을 내고 운동하러 오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으니깐. 3단을 수련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마음을 다시 고쳐먹게 된 기회가 된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은 누구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창헌류 3단을 도전하려고 하는 과정을 겪고 마음을 잡게 되는 과정에서 내가 계승자로서 자격심사를 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무나가 아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되고 선택받은 자 중에 한 명이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어느덧 싹트게 될 수밖에 없다. 지도관장님과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오직 수련에 관련된 문답이 오갈 뿐이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이 따라온다. 나의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보스턴미술관, 하버드 미술관과 김재훈태권도장은 물론 외형은 다르지만 그 속성면에서 닮아 있는 것이다. 박물관 미술관의 유물과 작품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어쨌건 지나간 것들이고 다시 어떤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물론 특정 작가등의 브랜드로 마케팅을 할 수는 있지만 유물 그 자체로 가치가 전부이다.


그러나 창헌류라는 무도는 예술품으로서 가치도 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로 사람을 해치는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강력한 백신으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현재진행형으로 계승되고 있는 중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유물이 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Living treasure' 이신 총 관장님은 우리가 씨앗이 되고 나무가 돼라 하신다. 그래서 널리 퍼뜨리고 전파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승단심사를 진행한 순간은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지만 실수가 없지도 않았다. 머릿속에는 '고수처럼 보이고 싶다' 이 생각이 날 지배한 나머지 깨끗하게 비워내지 못했다. 그 과정이 고스란히 지관장 님들과 총 관장님을 포함한 심사위원들의 눈에 선하게 다 드러나 보였다는 것은 이 심사가 동작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서 전달되는 피심사자의 마음가짐, 태도까지도 본다는 것이고 그걸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오히려 진정성 점수를 덜 받았을 것이다. 과욕을 부리는 것이 3단 심사의 최선일 수밖에 없는 것이 3단이 된다는 것은 이제 겨우 창헌류의 메인 전시층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작에 여유가 생길 수가 없고 그것은 여유가 아니라 관절이 떨어져 나갈 듯한 스피드와 파워까지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밖에는 안된다.


3단 심사는 끊어지거나 부러질 듯이 이를 악물고 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버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랬다. 그다음 다듬어 나가는 과정을 배우게 되고 나머지는 스스로 깨달아 교정해 나가야 한다. 그 루틴을 배운 것 같다. 힘을 쓰는 것도 파워를 최대한 내보기도 하고 끊어서 천천히 정확히 해보기도 하고 힘을 빼고서 빠르게도 해 보는 방법을 고민한다. 글이나 영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과정은 오직 도제식으로 사범과 제자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수련시스템의 장점이자 정통성이고 마케팅이다.


많은 이들에게 전파된 인기 있고 수익성 좋은 화려한 무술들은 많다. 심지어 콘텐츠로서 소비되는 요즘의 종합격투기의 세태는 무도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영역이다. 콜로세움 경기를 보기 위해 돈을 내고 입장하는 로마시민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노예검투사는 아니지 않은가.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MMA는 뿌리에 대한 철학 없이 관원모집을 위해 화려함만을 내세운다.


군포지관의 신입관원은 성인이 되어서 태권도를 선택하는 이유에 대한 인터뷰를 꼭 진행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어릴 때 배워둔 태권도를 다시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배우지 않은 사람이 태권도를 처음부터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고 경기를 나가기 위해서라던가 호신술을 배우고 싶어서라고 하지 않는다. 하던 것을 한다가 정답이다. 태권도는 결국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스포츠경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무도를 시작하는 준비가 된 셈이다. 도라는 것은 내면의 수련을 통해 외부세계에 선한 영향을 끼치기 위함이다.


모든 심사가 종료되고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기둥이 위치한 도장의 구조 때문에 두 장의 사진을 나눠 찍어 하나로 합치면서 기둥을 없애는 전문사진사분도 현지 관원이었다. 두 번의 디너가 더 있었다. 마지막 연회는 중식당이었다. 사람들은 젊은 그룹과 올드보이들 그룹이 따로 있으면서도 서로들 다 친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온 이름만 영어인 Richard, Thomas, Daniel, Alberto는 사실 조금 소외된 듯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쉽게 친한 척을 하지 않는 도장의 분위기에 막 적응할 참이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이틀 먼저 온 Alberoto가 소개해 준 보스턴 시내의 호스텔로 방하나에 여러 개의 침대가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용으로 쓰는 배낭여행객을 위한 HI boston이었다. 도난이나 편의시설에 대해 우려했던 바와 달리 너무 아늑했다. 생각보다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고 2층 레스토랑에서 조식까지 제공이 된다. 찬장에 'food sharing'이라고 되어 있길래 열어봤더니 반가운 한국의 참기름과 라면등이 있다.


짧은 기간 만난 룸메들과는 사실상 거의 마주칠 일이 없는 게 침대마다 커튼이 되어 있고 다들 너무 조용히 틀어박혀 있기 때문에 얼굴일 볼 일도 없다. 좌표상 한침대인 내 위쪽 침대를 사용한 Richard 형님도 오르락내리락 사다리가 좀 불편할 수 있었음에도 생각보다 만족하셨다고 하니 보스턴 출장 꿀팁이다. 아무 준비 없이 오더라도 호스텔 자체에서 매일 오후와 저녁에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대단한 것이 아닌 골목투어, 호프집투어, 자전거 투어, 공원투어 이런 식으로 아기자기하고 비용도 무척 저렴하다.


호텔 근처는 주말이 되자 클러버들이 몰려와 줄을 서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때 대한민국 클럽 1세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나는 왠지 무도인이 가게 되면 기를 빨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자. 입구컷을 당할 두려움 때문이 아니고. 게다가 줄도 너무 길고 비싸고, 우리 멤버들도 너무 아저씨고..... 정신을 차리자. 안 본 걸로 하자가 보스턴 클럽에 대한 경험담이다.


지하철을 타고 대부분 시내를 다녔는데, 구글로 연동되기 때문에 시간표도 제법 정확했다. 그러나 오래된 도시라 인프라와 시스템 자체는 한국만큼 잘 되어 있지 않았다. 중국, 일본, 영국, 독일에 가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은 정말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보스턴을 떠나면서 딱히 쇼핑이란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해외출장을 다녀온 아빠와 남편이 빈 손으로 오는 것도 딱히 좋은 그림은 아니라 공항에서 몇 가지 고르기로 했다. 거의 대부분 손이 가지 않는 것들밖에 없어 고민하던 중 클램차우더 캔을 발견하고선 너무 반가운 나머지 몇 캔을 샀다. 캔디류 같은 자잘한 것들도 애들 주려 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정작 도장사람들한테는 선물을 못한 게 아쉽긴 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쿠팡앱에서 클램차우더를 검색해 봤다. 어쩜 공항 면세점보다 싼 똑같은 캔을 팔고 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걸 안 이상 쿠팡으로 주문하면 나보다 먼저 선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와이프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렇다. 한국은 대중교통만 우수한 것이 아니라 이커머스 시스템도 글로벌 탑이다. 없는 게 뭐냐 말이다!


보스턴의 숨겨진 박물관 김태훈 태권도장은 9층 건물이지만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3층까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살아있는 태권도의 성령의 기운을 받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함께 간 이름만 외국인 멤버들은 각각 어떤 감상을 가지고 왔을지도 궁금하다. 내 맘은 한결 편해졌고 후련해졌다. 남자들의 비타민인 인정욕구를 충족한 것도 맞다.


그럼 난 얻었고 이걸로 계산이 끝난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3단까지 올라가는 것도 쉽지는 않았으니깐.

참여자가 아닌 주관자로서 난 이제 제대로 발을 담근 셈이다. 그 자격은 얻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의 능력이다. 나의 관리이자 나 스스로가 성장한 나무가 되어 또 씨앗을 뿌릴 만큼 원대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무도라는 것은 교수님에게 처럼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닌 영역이다. 운동 전공자들은 그럴 수도 있지만 내 목표는 스스로 강해지기 위한 것이지, 교수님께 보고서 점수를 잘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관련된 책을 쓰고 싶다는 목표가 하나 생겼다. 내가 체험하고 배운 창헌류의 기록서 같은 개념이다. 그러기 위해서 창헌류의 이론에 접근해야 하고 논문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누군가 이를 전통과 무도의 계승의 역사로 기록해야 하므로 이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스스로 설정했다. 후기는 마쳤지만 프로젝트는 공식 kick off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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